[기독일보·선교신문 이지희 기자] 건강한 선교사역은 선교사의 건강한 영성과 건강한 정신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한국선교의 건강성 회복, 선교사 멤버케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시에 '선교사 정신건강'이 중요한 문제로 떠오른 것은 이 같은 이유에서다. 방콕포럼은 올해 '한국 선교사의 정신건강'을 주제로 다뤄 선교 지도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제주 서귀포 켄싱턴리조트에서 열린 포럼에는 해외선교단체 멤버케어 담당자, 선교사 상담전문가, 지역교회 목회자, 선교사 등 총 26명이 참석해 파송 전(Pre-field) 단계, 필드 사역(On-field) 단계, 필드 사역 이후(Post-field) 단계에서의 선교사 정신건강 관리 문제와 해결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들은 또 이 자리에서 '선교상담가 네트워크'(실행위원 백은영·안은숙·이현숙·황정신, 자문위원 이재진·김영옥)를 발족하기로 결의했다.
방콕포럼은 2004년부터 현장 선교사, 선교 동원가, 선교 행정가, 선교학 교수, 지역교회 목회자 등 각 분야 선교 전문가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 시작되어 매년 선교 현장의 당면한 문제의 해결 방안 등을 모색하고 있다. 행사는 방콕포럼위원회(강대흥·김종헌·손창남·정민영·한철호 선교사)가 주최, 선교한국파트너스가 주관하며, 이번이 12번째다.
선교사 정신건강 문제 현황은
방콕포럼위원회는 6일 서울 인헌동 선교한국파트너스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번 포럼의 결과물인 '2015 방콕포럼문'(초안)을 공개했다. 이 자리에는 강대흥 선교사(방콕포럼 코디네이터·Blessing Flowers), 손창남 선교사(OMF), 김종헌 선교사(Frontier Ventures 공동대표) 등이 참여했다.
방콕포럼문에서는 "선교사 정신건강 문제는 이제 선택사항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건강한 선교를 위해 살펴보아야 할 필수적인 영역이 되었다"고 말했다. 선교사 정신건강 현황에 대해서는 "공동체성을 기반으로 하는 선교 구조가 열악한 한국선교 현실에서 대부분 선교사가 자신의 사역뿐 아니라 개인적 삶에 대한 책무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그 결과 선교지에서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스트레스 등 예방 가능한 정신건강 문제를 스스로 점검하거나 해결 받지 못하고, 일부 선교사는 심각한 질병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선교는 이를 방치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참석자들은 또 "최근 현지교회, 한국교회를 크게 혼란케 한 몇몇 선교사의 윤리 문제, 재정 문제 등은 심각한 정신건강의 장애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다"면서 "앞으로도 이로 인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선교계와 교계는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관점이 결여돼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참석자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선교사 상담 전문인력과 상담소, 디브리핑에 대한 의식의 증대되고, 선교사 정신건강 문제를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영역이 확산되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다음은 선교사 정신건강 문제를 논의한 결과를 요약한 것이다.
선교사 사역 단계별 정신건강 문제, 어떻게 대응하나
◈파송 전 단계=선교사 허입 과정에서부터 선교사의 정신건강 상태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허입 과정은 장차 선교지에서 발생하게 될 많은 문제를 방지, 해결하는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 예비선교사 정신건강 관리의 핵심은 선교사로서 건강한 정체성을 가졌는지, 사회 안에서 적절한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등을 살펴보고 돕는 것이다. 방콕포럼 참석자들은 최근 사회 변화가 선교사 지원자들의 정신건강에 더 많은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한 깊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봤다. 또 '선교사로서 어떤 정체성과 건강한 관계성을 가질 것인가'는 허입 과정 이전의 동원단계에서부터 언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필드 사역 단계=이 단계에서는 선교지에서 선교사 정신건강을 도와주는 현장 사역과 구조가 요청된다. 선교 현장에서 선교사들이 겪는 예측 가능한 스트레스, 정신적 어려움을 도울 뿐 아니라 병리적 현상을 보이는 정신건강상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선교사들을 선별하여 돕는 것이 핵심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선교사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정신건강의 다양한 장애 영역이나 사례 등을 정리해 해결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필드 사역 이후 단계=안식년 등 일시적으로 귀국한 상황, 사역 종료 상황 등에서의 선교사 정신건강 관리는 정신건강 치료 및 회복, 자기 돌봄, 중도탈락 방지 등을 위해 중요하다. 디브리핑을 통해 정신건강 문제를 확인하고 적절한 수준의 치료나 관리를 받도록 안내하는데, 다양한 디브리핑 프로그램 개발, 디브리퍼 확보 및 훈련, 예산 확보 등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필드 사역을 마치고 돌아온 선교사들에게 의미 있는 쉼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포럼 참석자들은 쉼이 경쟁 위주의 한국 문화를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는 측면, 적절한 사역과 쉼의 균형을 맞추지 못하는 문제 등을 지적하고 "쉼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 전환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안식년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검토가 필요하다고 봤다.
선교사 정신건강을 위해 필요한 추후 논의와 대안
한편, 참석자들은 ①원론적인 영역에서 ▲선교 사역이 공동체성을 가져야 건강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선교패러다임의 변화가 시급하며, 이를 한국선교가 인지해야 한다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정신건강 문제가 심각하고 중요한 부분임을 선교계가 인식하고, 이에 대한 교회의 관점 변화가 필요하다 ▲선교사 정신건강 문제 또한 한국교회가 선교전반에 대한 설계도를 가지고 선교하지 못하고 있는 결과라는 현실을 한국선교가 직시하고, 선교계는 한국교회가 선교적 교회로 나갈 수 있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영성과 선교의 통합이 필요하다. 즉 선교사들에게 있어서 자기 이해와 자기 발견이 중요하며, 이는 선교사들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하기에 앞서서 자신 안에 드러나야 하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쉼에 대한 성경적 이해와 의미 있는 쉼을 위한 롤모델이 만들어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논의했다.
②'예방적 차원'의 실천적인 영역으로는 ▲지역교회가 선교사의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리고 이 문제 해결에 관심을 가져다줄 것을 촉구한다 ▲선교지에 적절한 책무를 담당해 줄 현장 구조가 없는 상태에서 양적으로만 선교사를 파송하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것을 파송교회와 선교부에 요청한다 ▲선교사 정신건강의 문제는 선교사로 허입되기 이전 단계에서부터 지역교회와 함께 선교자원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동역해야 한다 ▲교단선교부와 선교단체에서는 멤버케어 시스템를 구축하고 멤버케어의 중요성을 교육해야 한다 ▲의미 있는 쉼을 가질 때 건강한 자아가 만들어지므로 선교사들에게 의미 있고 균형 잡힌 쉼을 확보하도록 요청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
마지막으로 ③'치유적 차원'의 실천적 영역으로는 ▲정신건강에 대해 지역교회의 협력을 위한 목회자들을 위한 세미나와 선교사들과의 의사소통을 강화하도록 한다 ▲선교사들 사이에 나눔 중심의 다양한 모임을 활성화하고, 선교사들이 정기적인 디브리핑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공식적, 비공식적 디브리핑을 제공하고, 이를 도울 수 있는 다양한 대상에 적합한 디브리퍼들을 훈련시키고 이들을 위한 네트웍을 구성하여 매뉴얼, 워크샵 등을 제공한다 ▲지역교회들이 선교사들에게 의미 있는 쉼을 제공하고, 지역에 따라 교회들이 네트워크을 형성해서 필요한 공간과 자원을 효율적으로 제공하도록 요청하기로 했다.
또 ▲선교사 정기건강 검진에 정신건강 검진도 패키지로 포함시켜 선교사들이 자연스럽게 정신건강을 확인할 수 있도록 요청한다 ▲디브리핑 과정에서 가족 특히 자녀들도 포함하도록 하며, 본부선교사들에 대한 디브리핑도 실시해야 하며 그들의 정신건강 유지에도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은퇴를 앞둔 선교사들을 위한 R&R(Rest & Renewal) 같은 프로그램을 실시하여 은퇴 이후의 문제에 대한 정신적 지원을 제공하도록 한다 ▲시니어 선교사들이 인생의 하프타임을 잘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것과 중년의 인생 위기를 극복하고 예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야 한다 ▲현재 상담가로 활동하는 사역자들이 선교사 정신건강에 대한 간략한 문제 제기와 실천을 위한 매뉴얼을 제작해서 배포하여 선교단체와 교회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사역을 홍보할 수 있도록 자발적인 네트워크를 만들 것을 요청하고, 이들의 생각과 연구 결과를 정기적, 부정기적으로 발표할 것을 요청했다.
한편, 방콕포럼위원회는 포럼 발표 내용과 토론 내용을 편집, 출판하여 한국선교계와 교회에 배포할 계획이다. 또 선교상담가 네트워크를 위한 첫 모임을 6월 2일에 갖고, 이 자리에서 파송단체가 정신건강검진 항목을 선교사 건강검진에 포함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자료 확보 방안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