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의 말씀 : 요 6:30-40
30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31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2. 시작 기도
아버지! 죄악의 밤이 깊은 때, 내 주 오시기를 사모하나이다. 주의 오심은 노아의 때와 같나이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멸망받기까지 깨닫지 못하나이다.
지금이 그러한 시대입니다. 자기 인생에 몰두하며 멸망하기까지 깨닫지 못합니다.
표적과 기사로 믿는 자를 미혹하는 시대, 복음으로 고난 받으며 인내로서 충성하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이 일에 한계를 느끼며 롯의 아내처럼 뒤를 돌아보려는 마음이 있나이다.
질그릇같이 연약한 자, 죄악의 도성에서 오염된 영혼을 보혈로 씻어 정결하게 하소서.
이 새벽,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단장하여 내 주 보기를 원하나이다.
진리의 영으로 역사하사 구원의 감격을 회복시키시며 말씀의 기쁨을 더하여주소서.
종은 이것으로 충분하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3. 본문 주해
요한복음에서 표적은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시위한다.
이것은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여 그에게 주신 영광의 표상이다(2:11;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예수께서 오병이어 표적으로 남자만 5천명을 먹이셨다.
무리들은 배불리 먹고 그를 메시아로 고백하며 그를 왕으로 삼고자 하였다.
소위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세상 나라의 왕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들을 피하여 산으로 가셨다.
그리고 그 밤에 풍랑만난 제자들에게 찾아가 '나다'라고 하며 신적 계시를 하셨다.
무리들은 자기의 필요를 채워준 예수를 집요하게 찾아나서 가버나움에서 그를 만난다.
이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그 일'(the work)이며 인자가 그들에게 주시는 일이다.
이 일은 아들을 보고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리들이 보았던 급식표적은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양식을 표상한다.
이에 무리들은 예수께서 나와 묻는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 곧 그들 앞에 있는 예수를 믿게 하는 표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30절).
그러면서 모세가 광야에서 만나를 주었던 표적을 언급한다(31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로부터 너희에게 떡을 내려준 이는 모세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참된 떡을 내려주시는 분은 내 아버지시다(32절).
하나님의 떡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다(33절).
그러자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34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다.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않을 것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35절).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한 대로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36절).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또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버리지 않는다(37절).
내가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는 것이다(38절).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를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39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다시 살릴 것이다(40절).
무리들은 예수의 급식 표적을 모세의 만나 표적이 반복된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이 표적이 하나님이 보내신 이를 믿게 하는 표적이 아니냐고 반문한 것이다.
유대교 미드라쉬 전통에 따르면 첫번 째 구원자가 만나를 가져다주었듯이 나중의 구원자도 만나를 가져다주는 것으로 생각하였다(집회서 대미드라쉬).
그러나 모세가 준 만나는 저절로 썩는 것이었고 그것을 먹는 사람들도 죽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날마다 새로 먹는 양식이기 때문에 다시 주리고 목마르고 마는 양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준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므로 생명의 양식의 예표이다.
이 점에서 모세가 준 만나는 그가 준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온 양식이며 참 떡의 모형인 것이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로부터 내려온 이, 곧 인자이며 그는 세상(사람에게)에 생명을 준다.
33절,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이'로 읽는 것이 정확하다.
"For the bread of God is he who comes down from heaven and gives life to the world."(NIV).
하늘로부터 오신 인자, 그가 바로 생명의 떡이며, 그가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러나 무리들은 이 말씀을 여전히 오해한다. "선생님, 이 떡을 언제나 우리에게 주소서"
이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떡을 주겠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떡임을 알지 못한다.
이것은 사마리아 여인이 반응한 것과 같다.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4:15).
다시 말해 생명의 떡은 예수께서 제공해주는 일용품이 아니다.
그 자신이 바로 생명의 양식인 것이다.
곧 사람이 생명을 주는 아들과 연합하면 그는 계속해서 아들 안에 거한다(15:1 이하).
이러한 아들과의 맨 처음의 연합이 또 다시 반복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 점에서 무리들이 말한바 '언제나'라고 하는 것은 핵심을 벗어난 말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하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
예수께 오는 자는 예수를 믿는 자이며 그가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이다.
그러나 무리들은 예수께 나오지 아니하며 그를 믿지 않으며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한다.
오직 아버지께서 그에게 주시는 자만이 그에게 나온다.
아들은 그런 자를 결코 내쫓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에게 오는 자들'을 누구나 받아들일 것이며 다시 살릴 것이다.
그는 자기의 뜻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한다.
그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며,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린다.
여기서 영원한 생명은 두 가지 측면이 있음을 다시 강조한다.
영생의 삶은 현재에 소유하며 미래에 완성된다.
현재의 소유와 미래의 소망이 정확히 균형을 이룬다.
아버지가 보내신 아들을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자는 자기의 의지나 결단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보내신 자로서 전적인 은혜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17:2).
무리들은 육신의 양식, 썩을 양식을 위해 예수께 나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의 양식, 썩지 아니할 양식을 주신다.
이는 결코 주리지 아니하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양식이다.
영적인 주림과 목마름은 내면의 욕망으로 표현된다.
인간은 만물을 다 가져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끼는 주리고 목마른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떡을 먹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면 만물 위의 하나님 안에 들어간다.
그는 더 원하는 것이 없어지며 자족과 안식과 평강을 누린다.
일찍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 은혜를 누리며 이렇게 고백하였다
'더 원하는 것은 없습니다. 주님, 당신이 원하는 것을 주소서'
창세전의 세계에서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하나는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있는 생명을 아들에게 주셔서 아들 안에 생명이 있게 하셨다(5:26; 1:4).
다른 하나는 아들 안에 있는 생명을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이다(딛 1:2).
아들의 생명은 아들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주어지며, 아들의 오심은 창세전부터 약속되었다(딥후 1:10; 벧전 1:20).
하나님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다.
이는 창세전부터 정해진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첫 사람 아담은 죄를 지어 하나님을 떠나갔고 영생의 기회를 망실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전 정해진 하나님의 뜻, 아들의 생명을 주시기로 한 약속은 유효하다.
이는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하나님의 선물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뜻,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보내심을 받았다고 고백하였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딤후 1:1).
아들을 믿어 영생을 얻는 것, 이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진리, 만물 위에서 정해진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이 일을 행하여 세상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였다.
이 점에서 아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첫 사도(보냄 받은 자)이다.
그리고 모든 시대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냄을 받은 자요, 생명 얻게 하는 복음을 위해 보냄 받은 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내가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세우심을 입었노라"(딤후 1:9-11).
4. 나의 묵상
말씀을 깨달을수록 수치와 자괴감만이 밀려온다.
창세전 약속된 생명, 만물 위에서 정해진 이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결코 알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만물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부단히 애썼다.
비전이라는 명분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였고, 그 뜻을 찾는 도식을 구하기도 하였다.
워렌 위어스비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교훈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도식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한때는 그것을 맹신하여 가르치기도 하였다.
지금 돌아보면 오해와 착각, 무지와 맹신의 산물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육신의 양식을 위해 주를 찾고 주께 부르짖었다.
다시 주리고 목마르고 마는 양식, 가져도 가져도 부족하였다.
인간의 탐심이란 채울수록 더 커지는 법, 많이 가질수록 욕망의 그릇만 더 커진다.
자족도 안식도 평강도 없는 채 시간 죽이기만을 계속하였다.
주리고 목말라 죽을 것 같은 자에게 심판의 칼이 임하였다.
하나님의 공의가 집행되자 모래 위에 지은 집은 홍수에 휩쓸려 갔다.
주림과 목마름을 채우기 위한 모든 존재물들이 내게서 떠나갔다.
말씀 앞에서 나의 죄악을 보며 혼절하였다. 그리고 죽음의 심판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기이한 평화가 내 안에 임하였다.
심판으로 공의가 세워지고 그 결과 주어지는 하늘의 평화였다(시 94:15; 사 32:17).
내게 임한 심판은 아들의 죽음과 무덤에 연합되는 은혜였다.
생명의 떡, 곧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 영원한 생명의 실재에 이르렀다.
결코 주리지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명의 떡이 나의 양식이 되었다.
하지만 나와 아들을 끊으려는 세력은 언제나 실재한다.
다시 주림을 느끼게 하고 목마름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떡이 아닌, 세상의 떡으로 그것을 해결하려든다.
속이는 자, 마귀의 궤계에 속아 넘어간다. 진리보다 사실을 믿게 한다.
진리는 이미 아들 안에 거하는 것이다.
그 무엇도 아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지 못한다.
그 사랑으로 족하다. 완전하다. 더 원하는 것은 없다.
지금 현재의 모든 것, 주님이 주신 최선의 것이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는다.
5. 묵상 기도
아버지.......
이생의 필요를 위해 주를 따르던 자였습니다.
이생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자 하였나이다.
갈수록 고갈된 삶과 신앙, 의례 그런 것인 줄 알았습니다.
영생에 무지한 자, 어둠뿐이었습니다.
그런 자에게 공의의 심판이 집행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심판에 아들이 함께 하였고 그토록 원하던 영생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여...
제게 행하신 일을 찬양합니다.
창세전 약속하신 아들의 생명을 주셨음을 인하여 당신을 송축합니다.
제게 대한 당신의 뜻이 이루어졌나이다.
날마다 영생을 살며, 마지막 날의 소망도 영생입니다.
아버지...
그럼에도 다시 주리고 목마른 자 되옵니다.
그것을 세상의 양식, 썩을 양식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속이는 자가 실재하며, 속는 자 되옵니다.
주여, 엎드려 구하오니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주소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가 내 안에 계심을 믿나이다.
그 무엇도 아들 안에 있는 당신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없나이다.
공허와 무의미, 죄책감과 정죄의식, 죽음이라도 그러합니다.
당신 안에 거하니 더 원하는 것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서형섭 목사는... 한국외대에서 경영학(B.A.)와 연세대 경영대학원 경영학(MBA)를 졸업하고, 서울신대 신학대학원 목회학(M. Div.)을 공부했다. 논문 '말씀묵상을 통한 영적 훈련'(Spriritual Training through Meditiatioin on the Word)으로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 학위를 받았다.
그는 지난 2000년 반석교회를 개척하고, 치유상담연구원에서 6년간 수학 후 겸임교수를 지내며 동시에 한국제자훈련원에서 8년간 사역총무를 역임했다.
현재 서형섭 목사는 말씀묵상선교회 대표로 섬기며 특히 '복음과 생명', '말씀묵상과 기독교 영성'에 깊은 관심을 갖고 저술과 세미나 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는 <말씀묵상이란 무엇인가>(갈릴리, 2011년)과 최근 출간된 <복음에서 생명으로>(이레서원, 2013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