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팔려는 사람이 계약금 일부를 지급받은 것이라면 그 약정계약금은 두 배를 돌려준다고 해도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해약금의 기준이 되는 돈은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이라는 판단에서다.
대법원은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의 배액(倍額, 두 배의 값)만을 상환해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면 사실상 계약을 자유롭게 해제할 수 있어 계약의 구속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매수인 김모(64·여)씨가 "계약 해제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며 매도인 주모(73)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주씨는 김씨로부터 교부받은 계약금 1000만원을 포함해 총 87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매수인이 계약금 일부만을 먼저 지급하고 잔액은 나중에 지급하기로 약정하거나 계약금 전부를 나중에 지급하기로 약정한 경우 계약금을 교부받은 매도인이 계약금의 잔금 또는 전부를 지급하지 않는 한 임의로 계약을 해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과 같이 계약금 일부만 지급된 경우 계약금을 교부받은 주씨가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해약금의 기준이 되는 돈은 '실제 교부받은 계약금'이 아니라 '약정 계약금'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교부받은 계약금'의 배액만을 상환해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면 이는 당사자가 일정한 금액을 계약금으로 정한 의사에 반하게 될 뿐 아니라, 교부받은 돈이 소액일 경우에는 사실상 계약을 자유롭게 해제할 수 있어 계약의 구속력이 약화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부동산 매매계약 관련 사건 가운데 계약금의 일부만 지급된 경우 매도인이 매수인으로부터 지급받은 돈의 배액을 상환하고 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대법원의 첫 판단"이라며 "그동안 이와 같은 사건의 선례가 없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13년 3월 주씨와 서울 서초구 서초동 H아파트 한 채를 11억원에 매수하기로 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하면서 계약금 1억1000만원 중 1000만원은 계약 당일에 지급하고 나머지 1억원은 계약 다음날 지급하기로 약정했다. 이에 김씨는 계약 다음날 주씨의 계좌로 1000만원을 입금했지만 주씨가 매매계약을 해제하고 계좌까지 폐쇄하자 "일방적인 계약 해제로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1심은 "주씨는 김씨로부터 지급받은 계약금 1000만원과 함께 약정 계약금의 30%에 해당하는 손해배상금 33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2심은 손해배상금을 약정 계약금의 70%로 계산, "주씨는 김씨에게 총 87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