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

칼럼
서울 성은교회 장재효 목사

시편 146:1-10
 
1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2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3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5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6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7 압박 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8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9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 10 시온아 여호와 네 하나님은 영원히 대대에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본문은 이스라엘 제 2대 왕이었던 다윗의 찬송 시로 그의 신앙 간증이면서 고백입니다. 그가 평생에 하나님을 찬양하며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다윗은 유목민인 아버지에게서 여덟 명의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목동으로 자라났지만 믿음만은 모든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 마음에 가장 감동을 드린 참 믿음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다윗을 왕으로 세우기 전에 사무엘상 13:14에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쓸모를 인정받음으로부터 목동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3절의 방백은 정치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다윗 또한 왕으로서 정치하는 사람이면서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 중에 지위나 명예를 가지고 행세하는 사람이 있다면 기대를 걸고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생 자체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진토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도모함이 허사가 되기 때문입니다.

5절은 다윗이 자기 생애를 통한 간증이기도 합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하는 이유는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압박당하는 자를 위하여 공의로 판단하시며 주린 자에게 식물을 주시는 자시로다 여호와께서 갇힌 자를 해방하시며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를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객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는 말씀과 같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역사의 주권자로서 영원히 통치하시는 분으로 확실히 믿어질 때 영원히 자신의 하나님으로 모실 수 있는 것입니다.

10절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고 영원히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한 기대는 내가 믿음을 잘 가꾸고 하나님 마음에 드는 신앙 처세를 했을 때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온갖 좋은 조건으로 영원히 책임져 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역사적 주권자로서 역사를 임의로 주관하시며 영원히 대대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더라도 생각과 말과 행동이 죄악으로 잘못 길들여진 옛 생활을 그대로 되풀이한다면 하나님께 매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시편 146편은 다윗의 오늘이 자신의 노력이나 수고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고 온전히 믿음 하나를 인정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결과였기 때문에 할렐루야로 시작하여 할렐루야로 끝을 맺는 찬양시였던 것입니다. 우리들도 다윗과 같은 믿음으로 할렐루야를 연발하는 생애로 축복의 반열에 참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인간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습니다. 이것은 생김새가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격과 본질이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의 지식과 애정, 의지의 인격체로 사람을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찾고 흠모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체질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죄를 지어 버림받은 후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진 이후 하나님을 찾아 갈망하다가 찾지 못하면 다른 대체물을 찾아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찾고자 했던 본래의 영적 심리 작용의 결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종교 심리는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사야 41:1-4에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하여 서로 변론하자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같게 하매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전히 지났나니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命定)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하는 이 말씀은 세계 모든 나라와 만 인류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주관되어져 왔다는 것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자기 절대주권으로 말미암아 우주 만물의 역사를 엮어 가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그러한 하나님 앞에 돌아갈 생각은 하지 못하고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말하길 “너는 담대하라”라고 하며 위로가 되지 못하는 말을 합니다(사41:5-6). 그리고 목공은 금장색을 장려하며, 망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꾼을 장려하며 우상을 만들며 하는 말이 “땜이 잘 된다”하면서 서로를 위로합니다.

이처럼 인간들은 미신, 우상을 좇아 살아가고 있으며 또 하나 재물을 좇아 살아갑니다. 디모데전서 6:17-19에서 “네가 이 세대에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고 재물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자가 되었거나, 부자 되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한 말씀입니다. 이 세대의 부자들은 교만하지 말고, 한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시며 활용하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된다면 장래에 자신을 위한 좋은 자리를 하늘에 마련하고 참된 생명을 얻게 되는 보람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재물에 대한 집념은 하나님보다 그것을 더 의지하고 소망하는 태도입니다. 그렇기에 그것은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3:15-18)”한 구약의 이 말씀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 담력과 정절의 본을 우리에게 일깨우는 교훈입니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하나님의 계획은 역사를 다른 축으로 바꾸어 돌리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이스라엘이 역사의 축이 되어 돌아갔으나 이제는 바벨론을 축으로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고 포로로 끌려가 수산궁에서 서러움과 수모 가운데 살아갑니다.

금으로 만든 우상 앞에 정해진 시각에 절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죽음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다니엘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믿음의 정절을 더럽힐 수 없어 절하지 않았습니다. 왕 앞에 끌려온 이들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왕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함으로 왕의 분노를 샀습니다. 그는 낯빛이 변하여 “그 풀무를 뜨겁게 하기를 평일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고 명하고는 그들을 결박하여 풀무불에 던져 넣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하시고 불꽃 가운데서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게 보호하시고 건져내신 하나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신명기 4:4의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은 너희는 오늘까지 다 생존하였느니라”는 모세가 힘주어 강조한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죽은 자들은 참으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붙어사는 자는 절대로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본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1:25에“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한다”고 하셨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나를 하나님께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나님의 생기와 은혜로 살며 하나님의 용도사명에 따라 쓰임 받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신앙 정절은 결국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방언하는 자가 무릇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설만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으로 거름터를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단3:28-29)”고 우상이 난무하던 바벨론을 향해 명하게 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 믿고 소망하는 신앙인은 불꽃 가운데서도 안전하게 그 구원을 책임지고 보장해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로 하여금 믿음의 재료로 확증해 주셨음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영의 하나님이십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영적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시편 147편에서 다윗이 영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찬송하라한 것은 하나님은 영의 본체이기 때문입니다. 내 영혼이 진리와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과 연합할 수 있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며 그 곁에 있는 한 영생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육신의 기대감으로만 하나님을 찾고 있다면 잘못되었음을 깨닫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영적 기준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중생하는 변화가 있어야 하고 인격과 의리와 예절이라는 믿음의 담력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육신이 당하는 어려움이 믿음 때문에 당하는 것이라면 그 고통 가운데 함께 하심으로 영육간에 모든 것을 보호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11:24-26에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했습니다. 이것은 한 사람이 두 길을 갈 수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6:12-20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만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신앙인의 가장 올바른 생활 태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로 알고 머리 되신 예수님의 뜻을 받들되 우리 육신의 형편이 어찌되던 간에 예수님만이 나의 영원한 소망이라고 확실히 믿어지는 믿음이라야 여러분의 구원은 영원토록 가장 안전한 보장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끝까지 영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께 붙어 떠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영생을 하늘 조건으로 보장받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장재효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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