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오상아 기자] 지난 24~25일 충청북도 추풍령 자락에 위치한 단해교회에서 열린 제10회 한국조직신학자 전국대회에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미하엘 벨커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명예교수가 초청됐다.
미하엘 벨커(67·Michael Welker) 교수는 튀빙엔대학교에서 신학박사와 교수자격을 취득하고 하이델베르그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독일 개혁신학을 대표하는 학자다.
그는 칼 바르트 신학의 전통에 서 있고 몰트만의 제자로 알려져 있으며 독일 튀빙엔대학교 조직신학자 크리스토프 슈베벨 교수와 함께 나란히 독일 개혁신학의 차세대 주자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각종 교의학 뿐 아니라 학제간 연구, 즉 자연과학과 신학과의 대화 혹은 기타 사회과학과 신학과의 대화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활동을 해온 것으로 잘 알려졌다.
벨커 교슈는 독일 튀빙엔대학교 조직신학 교수(1983-1987), 뮌스터대학교 조직신학 교수(1987-1991, 개혁신학 교수직)를 거친 그는 현재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조직신학 교수(1991-현재, 교의학 교수직)로 있다.
이외 시카고대학교(1984) 객원교수, 맥매스터대학교(1985) 객원교수, 프린스턴신학교(1988/1995) 객원교수, 프린스턴 신학연구소(1997/1999) 객원교수, 하버드대학교 신학부(2001) 객원교수, 캠브리지대학교(영국) 객원교수(2008) 등으로 활동해 왔다.
또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국제 학문포럼 연구소장(1996-2006), 프린스턴 신학연구소 연구소장(2003), 하이델베르크 국제 학제간 연구소 연구소장(2005) 등을 역임하기도 했다.
한국어로 번역된 그의 주요 저서로는 『하나님의 영』 (신준호 역, 대한기독교서회, 1995), 『성서에 기초한 최근 신학의 핵심적 주제』 (김재진 역,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8), 『성찬식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임걸 역, 한들, 2000)와 공저 『종말론에 관한 과학과 신학의 대화』 (신준호 역, 대한기독교서회, 2002) 등이 있다.
기독일보는 이번 한국조직신학자대회 첫날인 25일 미하엘 벨커 교수와 단독인터뷰를 진행했다. 통역은 장신대 오성현 교수와 한신대 전철 교수가 도와줬다.
- 이번에 교수님의 책 '하나님의 계시(그리스도론)'이 번역-출판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순서에 의하면, '역사적 예수' 십자가', '부활', 그 다음 '높여진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교수님 책(하나님의 계시)의 목차는 '부활'이 '십자가' 앞에 나옵니다. 이렇게 편집하신 특별한 신학적 이유라도 있으신지요?
▶ 부활의 빛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이고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고통 안에서도 이미 그안에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부활의 빛에 대한 관심에 집중되어 있었다.
유대교와 로마 그리고 여러가지 권력의 힘,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는 도움이 되는 힘들이 예수에게는 철히 죽음을 인도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십자가의 사건 속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빛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 벨커 교수님은 '신학과 자연과학'의 대화를 강조하시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화이트 헤드에 관한 교수 자격 취득 논문도 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자연계시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신학과의 대화가 가능할 수 있겠는지요?
▶ 저는 그동안 아주 여러 해동안 자연과학자들과 더불어 특별히 종말론에 관해 대화를 나누었다. 종말론을 통하여 결국은 세계, 우주의 끝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때 자연계시라고 하는 그런 식의 용어만으로는 더이상 이야기를 서로가 할 수 없고 그렇게 해서는 부족하다는 것을 양자의 대화를 통해 느꼈다.
왜냐하면 우리가 신앙을 통하여서 말할 수 있는 종말에 관한 이야기는 새로운 현실에 관한 이야기다. 새로운 현실성을 성경의 표대로 따르면 새하늘과 새땅이라고 이야기하고 있고 새하늘과 새땅이라는 것을 통해서 현재 세계와의 연속성도 있고 불연속성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밖에 없었다.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불연속적이기도 하고 그러나 새 '하늘'과 새 '땅'이기 때문에 연속성을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불연속성을 이야기하려고 한다면 자연과학자들의 용어로 또는 자연계시로는 더이상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발견했다.
그런 점에서 자연계시를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연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이끌어갈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 이 책에서 교수님께서는 기존의 신학자들과 신학적 대화를 나누시면서, 교수님의 신학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서구 신학이 추구해 온 신학의 한계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 첫 번째로는 그동안 기독론에서 많은 대화를 이끌었던 주제 중 하나는 신학자들이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 물어왔던 것에 대한 질문들이었다. 역사적 예수에 대한 제2, 제3의 질문을 보며 너무나 심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해서 회의주의적으로 빠지면서 예수의 인간성만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것이 제가 발견했던 한계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두 번째는 부활에 관한 이해였다. 그동안 근본주의자들이나 또 굉장히 계몽주의적으로 갔던 이른바 회의주의자에까지 빠졌던 이 사람들도 모두 부활을 단지 물리적인 소생으로 혼돈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혼돈은 굉장히 양극단에서 똑같이 나타나는 부활에 대한 오해였다. 이것이 제가 발견한 두번째 서구신학의 한계점이라고 여겨진다. 저는 자연과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 문제는 바울이 말했던 '영적인 몸'이라고 말했던 것에서 다시금 문제를 풀어나가야 된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는 서구신학이 십자가의 신학을 강조해온 것과 관련이 있다. 십자가의 신학이 그동안 루터나 헤겔에게도 나온다. 루터부터 시작해서 헤겔, 본회퍼, 제일 최근에는 몰트만까지 '고통받는 하나님'을 십자가 신학에서 제일 중요한 주제로 부각시켰다. 문제는 '하나님의 고통'이라고 하는 것을 부각시키는 자체는 좋지만 어떻게 그런 하나님이 우리를 도울 수 있다는 말이냐 하는 것이다. 더 이상 문제를 풀어가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동정'같은 '아파함'으로만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넘어서 정치적이고 윤리적인 많은 차원의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문제들에 대해서 더 확장적으로 풀어나갔다.
서구신학에서 잘 드러나지 못해서 보충하려고 하는 것은 '영 그리스도론'이다. 성령 그리스도론이라고 번역하기도 한다. 그것에 대해 좀 더 정확하게 규정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이후에도 온세계를 향하여서 미치는 영향력을 어떻게 설명할것인가 하는 문제를 본다면 성령과의 관계에서 설명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영이 총체적으로 계속해서 우리 세상 안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의 관계에서 결국은 그리스도론을 전개해야 한다라는 것이 저의 관점이었다.
특별히 칼빈 같은 경우도 그리스도, 메시아는 단지 기름으로 부음받은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부음 받았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스도, 메시아 라는 것이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뜻 아닙니까?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부음받았다고 했는데 특별히 그 성령을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만이 영을 보유한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에게 속한 자들에게 그 영을 함께 나눠주고 그 영의 능력에 동참하는 것에 칼빈도 굉장히 중요시여긴 것을 보고서 아주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래서 그 내용들을 더 상세하게 전개시켰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론에서 보충하고 싶었던 내용 중의 하나는 '영그리스도론'이라고 하는 것은 교회 안에서의 신앙적인 경건성을 드높이고 심화시키는데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넘어서 윤리적이고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부분까지도 미치는 힘과 그 영향을 더 서술하고 싶었다. 특별히 그 역할들을 저는 그리스도의 삼중직무론에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오는데 그랬을 때 예수의 부활 이전에 지상적인 삶에서 보였던 그의 사랑의 행위들, 고치고 사람들에게 깨닫게 해주는 이런 행위들은 교회의 디아코니아 활동, 다시 말해서 사회봉사적인 활동들이라고 여겨진다.
그것이 왕의 직무라고 말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한 면목은 제사장적인 역할들과 영향력은 계속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부활 이후에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과 더불어 말씀을 풀어주시고 부활한 후에 제자들에게 떡을 나눠주시는 모습들 속에서 그것이 교회 안에서의 신앙적인 것들을 세워주는 것의 영향력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예언자적인 활동의 범위들 강하게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예언자적인 활동들은 십자가의 사건에서 더 드러났다고 생각하는데 이른바 우리 세상에서 경험하는 그런 권력들, 예를 들어 정치, 종교, 도덕, 법률, 여론이라는 것은 원래 인간을 위한 좋은 권력이고 힘이었는데 죄의 영향 때문에 오히려 인간을 불행하고 만든 것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 예언자적인 활동이었다. 그리고 십자가의 사건 안에서 더 드러나게 되었다고 생각이 든다.
결국은 이 모든 것들들 다 합친다면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공동체적인 친교,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영그리스도론의 활동에서 드러나는데 이것은 단지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교회를 넘어서 시민사회나 문화나 또는 학문의 세계에서도 함께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리스도의 능력과 활동은 교회 안에만 한정지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밖에서도 일어나는 그 일들과 함께 연합을 해서 그리스도의 능력과 활동들을 종합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에 힘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내용이다.
- 교수님께서 이번에 3번째 한국을 방문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끝으로 한국의 신학자들을 만나보시고, 교회를 방문하시면서, 한국 신학계에 하시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먼저 제가 특별히 한국에 저를 통해서 함께 공부했던 11명의 제자 박사들이 있는 것이 큰 보물이고 큰 기쁨이다. 그들에게도 본인들의 이야기를 좀더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고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한국의 조직신학회에 오면서 생각한 것 중의 하나는 배움이라는 것은 상호적이라는 것이다. 상황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른 상황에서 하는 다른 이야기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곳에 와서 여러분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신중하게 듣고 있고 배우고 싶다. 그를 통해서 우리가 전지구적인, 전세계적인 그러면서도 교회일치적인 신학을 더욱더 추구해보고 싶다.
또 하나는 특별히 제자들을 통해서 1차적으로 시작을 하겠지만 한국의 신학이 국제적인 소통을 할 수 있고 국제적인 네트웍으로 올 수 있는 일에 관심 기울이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 중심의 세계적인 신학 형성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 이제는 아시아쪽의 새로운 신학자들을 통해서 신학의 지평들을 전세계적으로 명실공히 만드는 일을 희망하고 있고 그 일에 일조를 하고 싶다.
글=오상아 기자 사진=이동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