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모이는 정기 교역자 회의 시간에 유혹(Temptation)과 죄(罪)에 대한 규정이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을 한 적이 있었다. 유혹이라는 것은 내가 뭔가에 관심을 가지도록 유인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을 본다면 돈, 명예, 권력, 섹스와 같은 것들이다. 이 네 가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연적인 것들이고 삶에 동기를 부여하는 도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은 올바르게만 사용된다면 그것 자체를 어느 누구도 죄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들을 올바르게 바라보지 아니하고 잘못된 것으로 사용하게 되면 작게는 개인에게, 크게는 국가와 세계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파괴하는 무서운 죄를 범하게 한다. 이러한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 한 교역자가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나의 아내를 사랑한다.", "내가 아내만 바라보고 산다면 유혹에 넘어 갈 필요가 없다." "유혹에 넘어 간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마음속에 두기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을 갖게 된다면 사람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마음 한 구석에 다른 사람이 자리 잡아 사랑하는 사람을 놓고 저울질 하게 된다. 그리고 나중에는 마음이 가는 곳에 진정한 사랑이 있다고 여겨 배우자를 두고 떠나게 된다. 이러한 결정은 나를 위한 것 같지만 가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볼 때 분명히 죄(罪)를 범하게 된다. 이 말은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행하게 되는 것이며 이것으로 인해 가정적으로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다. 잠언 6장 32절에서 말하기를 "여인과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유혹으로 인해 사랑이 흥정이 된다면 그것은 무지한 것이며 영어 표현에 의하면 어리석은 (stupid) 것이라고 말을 한다. 그리고 이것은 종국에 영혼을 상실하게 하는 삶을 살게 하고 죄에 얽매여 자유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에 성전환을 했던 10대 소년이 자살을 한 적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여자가 되고 싶은 마음에 성전환을 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여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너무나 슬펐을 뿐 아니라 자신을 아들이라고 여기던 부모들이 자신이 성전환을 했어도 항상 남자 아이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 실망감이 너무나 커서 자살을 한 것이다.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고 그것에 감사할 줄 알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구지 남자가 여자로 바뀌어져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로마서 1:26-27절을 보면 순리를 역리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로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이것은 남자와 남자가 그리고 여자가 여자를 상관하는 동성연애와 같은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에는 국가와 일부 종교단체에서 인권을 존중한다는 명목 하에 동성결혼을 합법화한 것이다. 작금에 동성결혼은 21세기 지구촌에 가장 큰 이슈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진리가 아닌 것을 진리인 것처럼 대화를 나누고 논쟁을 하기 때문이다. 25년 전 대학원에서 상황윤리, 여성의 해방운동, 기독교와 타종교의 대화를 공부한 적이 있었다. 그때 만해도 신학적으로 상당히 진보적인 학문을 접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그러한 문제들이 더 급진되어 동성결혼, 동성연애, 게이목사들이 사회적으로 이슈화 되어 논쟁을 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의 출발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생각과 인권이라는 명목 하에 계속적으로 진전이 되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머지않아 강아지들의 결혼식과 사람과 애완동물의 결혼식에 대한 논쟁도 주어질 것이라고 예측해 볼 수 있다. 창조질서가 아니며 진리가 아닌 것을 사람들은 문화와 시대적인 상황에 맞추어 진리를 왜곡하는 시대에 현대인들은 살고 있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고의 끝은 아무것도 없는 공허함과 절망감만 갖게 된다. 교회에도 세상적인 인본주의가 너무나 팽배하여 이제는 성경의 본질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지식으로 모든 것을 합리화 시키고 정당화 시키려고 한다. 사도바울은 로마 옥중에서 골로새 교회를 개척한 에바브라를 만나 그에게 골로새 교회 안에 이단사상에 대한 문제를 듣게 된다. 그것의 중심에는 유대주의적인 할례와 인간지식 숭배에 관한 것이었다. 헬라철학을 배경으로 한 인간의 지식과 유대인들이 주장하는 할례는 서로가 다르지만 그 내면을 바라보면 두 가지 다 구원과 연관이 있다고 골로새 교인들은 보았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이것은 헛된 것(hollow) 와 속임(deceptive)라고 말을 한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로새서2:8)
오늘날 교회들이 논쟁을 하는 동성결혼은 헛되고 속이는 것을 이야기 하는데 이것은 분명 인간이 추구하는 것이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논쟁 자체가 곧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진정한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만이 존재하고 그분을 통해 만들어진 가정은 하나님이 남녀를 통해 가정을 이루게 하신 것이다. 국가 정부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 하는 배경을 본다면 돈을 가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다. 즉 돈에 권력이 시녀의 노릇을 하는 것이다. 그 내면에는 돈을 많이 가진 상당수가 동성연애를 하는 사람들이다. 돈이 이제는 정치, 경제 그리고 종교도 움직이게 하여 순수성을 잃어버리게 한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4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성령에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에 가서 시험을 이기신 것을 보여 주신다. 그중에 첫 번째 사단의 시험이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이 말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태복음 4:4)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을 하신 것은 신앙인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기준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고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기독교인이 올바르게 말씀을 따르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만 믿고 예수님이 삶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생각이 중심이 된다면 돈, 명예, 권력과 섹스는 신앙생활을 온전하지 못하게 할뿐 아니라 끝까지 넘어지게 하려고 사단은 계속적인 흥정을 하도록 유인할 것이다.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유혹은 죄를 낳고 그 영은 죽게 된다.
글ㅣ크릭사이드 한인교회 김칠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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