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양국이 22일 '대한민국 정부와 미 합중국 정부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 협정(한·미원자력협력협정)' 개정 협상 타결에 합의했다.
박노벽 외교부 한·미 원자력협력협정 개정 협상 수석대표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이날 오후 4시15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18층에서 개정 협정문에 가서명했다.
1974년 발효 후 40여년만에 개정된 협정은 양국간 원자력 협력의 틀과 원칙을 규정한 전문, 구체사항을 담은 본문 21개 조항, 협정의 이행을 위한 사항을 담은 합의의사록, 고위급위원회 구성에 관한 합의의사록으로 구성됐다.
2010년 시작된 개정 협상이 타결됨으로써 국내 원전에서 쓰인 사용 후 핵연료를 관리하는 방안이 마련됐다. 향후 중간저장, 재처리, 파이로 프로세싱(사용후 핵연료에서 우라늄 등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방법), 영구처분, 외국 위탁재처리 등 방안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사용 후 핵연료의 관리를 위해 필요한 '조사 후 시험(사용후 핵연료의 특성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과 '전해환원(파이로 프로세싱 전반부 공정으로서 사용후 핵연료 안에서 높은 열을 발생시키는 원소를 제거하는 작업)' 등 연구활동을 국내 시설에서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원전에 핵연료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방안도 협정문에 담겼다. 향후 미국산 우라늄을 이용한 20% 미만의 저농축이 필요하게 되면 한·미 양국간 협의를 통해 저농축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우리 원자력 수출업계가 미국산 핵물질이나 원자력 장비·부품을 제3국에 이전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협정에 포함됐다. 이로써 핵물질이나 장비, 부품, 과학기술 정보의 교류가 활성화돼 향후 원전수출 투자나 합작회사 설립이 촉진되게 됐다.
그간 전량 수입에 의존해왔던 암 진단용 방사성 동위원소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수출까지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협정을 이행하기 위한 양국 차관급 상설협의체인 '고위급위원회'가 구성된다. 위원회는 사용후 핵연료 관리, 원전연료 공급, 원전수출, 핵안보 등 4개 실무단을 산하에 두고 양국 원자력 협력 전반을 다룬다.
국내 원자력 활동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규정들이 협정에 포함됐다.
협정 전문에서 'NPT(핵확산금지조약) 당사국으로서의 평화적 원자력 이용 권리'를 확인했다. 양국간 원자력 협력 확대 시 주권 침해가 없어야 한다는 내용도 협정문에 적시됐다.
농축이나 재처리를 포함한 원자력활동에서 상대의 원자력 프로그램을 존중하고 부당한 방해나 간섭을 해선 안 된다는 의무규정 역시 협정에 반영됐다.
미국이 원자력협력협정 체결국들에게 적용해오던 농축·재처리 포기조항,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는 이번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미국과 다른 나라 간 원자력협정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명시적인 권리 확인이란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외교부는 "미국의 일방적인 통제권만 규정돼있던 체제에서 탈피해 상호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협정의 유효기간은 41년에서 20년으로 단축됐다. 국내 원자력계의 발전 가능성을 반영하기 위해 유효기간을 줄였다는 게 외교부의 설명이다.
일방 당사국이 1년 전에 사전통보만 하면 어느 때나 협정을 종료시킬 수 있다. 협정 만료 2년 전에 일방이 연장 거부를 통보하지 않으면 1회에 한해 5년간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아울러 발효 17년째 되는 해에 협정의 유효성과 연장 필요성을 검토토록 하는 내용도 협정문에 반영됐다.
협정 발효를 위해선 국내 절차가 마무리돼야 한다.
우리측은 이날 가서명 후 법제처 검토, 차관회의, 국무회의를 거쳐 대통령 재가를 거쳐야 한다.
미국측은 이날 가서명 후 국무부와 에너지부 장관의 검토서한 발송, 핵확산 평가보고서 작성, 대통령 앞 메모 송부, 대통령 재가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를 통과한 협정문은 의회에 전달된다. 상·하원 연속회기 90일 내에 불승인 공동결의안이 채택되지 않으면 자동 통과된다.
양국에서 절차가 완료되면 각서 교환을 거쳐 협정이 공식 발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