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평형수 채우셨나요?

▲이석철 교수ㅣ침신대 기독교교육학

[기독일보] 1년 전 세월호가 침몰하며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같이 침몰했다. 희생자들의 유가족은 지금도 큰 슬픔과 고통 속에 살고 있다. 함께 아파하는 한 국민으로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위로하시는 은혜가 있기를 기도한다.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사건에 대한 진실을 철저히 밝혀야 한다. 교회는 사회를 선도해야 할 책임을 절감하고 교회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물리학적 원인은 복원력이 약했기 때문이다. 급회전을 하면서 기울어진 배를 다시 안정된 상태로 되돌리는 힘이 충분치 못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잘못된 무게 중심에 있었다.

큰 배는 무게 중심을 안전하게 유지하기 위해 바닷물을 채워 넣고 다닌다. 전문 용어로 그 물을 '선박 평형수'(밸러스트 워터, ballast water)라고 한다. 사고 당시 세월호는 이 평형수를 아주 적게 채우고 운항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선실 증축으로 무게 중심이 51cm 높아진 세월호에 대해 행정당국은 화물을 덜 싣고 평형수를 2023톤으로 늘리라고 명령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적정 화물적재량보다 3배나 더 많이 짐을 실었다. 그것도 제대로 고정하지도 않은 채 말이다. 평형수는 눈속임으로 권고량의 4분의 1만 채우고 출항했다.

세월호는 무게 중심이 심각하게 불안정한 상태로 처음부터 위험을 안고 바다로 나간 것이다. 결국 급회전으로 인해 한 쪽으로 쏠렸을 때 원래 상태로 복원되지 못하고 그대로 바다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이런 참사가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일은 사람을 잘 '만드는' 것이다. 배도 잘 만들어야겠지만 그것을 운항하는 사람들을 잘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떤 일이든 그 일을 하기에 적합하게 갖춰진 사람이 해야 한다. 특히 다른 사람들의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적합성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얼마 전에 149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저먼윙스 항공기 자살 추락 사건도 정신적으로 온전치 못한 부조종사가 저지른 일이었다. 자살 비행 직후 그의 아파트 쓰레기통에서는 찢겨진 의사진단서가 발견됐다. "직무수행 부적합"(unfit for work). 담당 의사의 소견은 그렇게 적혀 있었다.

세월호 참사는 안전하지 않은 상태로 출항시킨 선주와 관리자들의 잘못으로 일어난 것이다. 엄청난 인명 피해가 난 것은 승객들을 제대로 대피시키지 않고 자기만 먼저 살기 위해 팬티 바람으로 탈출한 선장 때문이었다. 결국 이 배의 운항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들이 문제였다.

배의 안전을 위해 그 안에 선박 평형수를 충분히 채워야 하는 것처럼 사람의 내면에는 '사람 평형수'가 적절히 채워져야 한다. 사람 평형수는 내면의 인격이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야 할 사람은 인격적으로 건강하고 온전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이 배와 항공기를 운항하게 해야 한다.

대개 우리는 사람에게서 인격보다는 다른 요소를 중시한다. 신체적 외모나 직위, 또는 '스펙'이라고 하는 능력 같은 것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내면을 중요하게 보신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 다윗을 택하실 때 하신 말씀이다.

인격은 사람 내면의 됨됨이로 배 안의 평형수와 마찬가지로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의 인격은 외모보다,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
이번에 자살 비행을 감행한 부조종사는 외모가 준수했으며 마라톤을 여러 번 뛸 정도로 신체적으로 도 탁월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 비행기 조종사로 일하고 있었다면 능력이 뛰어난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결코 건강하지 않은 상태였다. 과거에 자살 충동이 여러 번 있었으며 조종사 자격증을 따기 전에 정신과 치료를 받았던 전력이 있었다고 한다.

일반 사회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에 기초가 되는 것도 인격이다.

보통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믿음이나 성령 충만 같은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기본적인 사람됨과 인격이 먼저 갖춰져야 하며 그 위에 믿음과 성령 충만이 더해져야 한다.

우리는 너무도 자주, 인간으로서의 기본 요소인 인격을 무시한다. 때론 신앙을 내세워 비인격적인 행동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 주기도 한다.

안디옥교회 부흥을 주도했던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기록돼 있다. 그가 영적인 자질 이전에 기본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로 인해 "큰 무리가 주께 더했다"고 성경은 증언한다.

안디옥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흥한 것이지만 그 은혜는 좋은 인격을 갖춘 바나바로 인해 더 크게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인격적으로 아주 형편없는 사람이었다면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을 것이다.

교회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신자들을 만드는 데 힘써야 한다. 뿐만 아니라 착한 사람, 성숙한 인격을 지닌 성도들을 길러내야 한다. 그런 그리스도인들을 사회 각 분야의 일꾼들로 내보내어 세상 속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해야 한다.

세상에는 외모가 출중하거나 유능한 사람들이 많다. '신앙 좋은'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훌륭한 인격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뛰어난 외모와 유능함을 이용해 악한 일을 더 잘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능력이 우리를 높은 곳에 올려놓을 수는 있겠지만 그 상태를 유지하도록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우리의 인격뿐이다. "지도자들의 실패는 90퍼센트가 인격에서의 실패이다." 성공적이던 지도자가 하루아침에 추락했던 사례들을 분석한 어떤 연구의 결론이다.

인격은 특정 분야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언제라도 우리는 인격이 중요하게 드러나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인격은 가볍게 넘겨버릴 문제가 아니다. 배나 비행기를 운항하는 것에서부터 한 가정의 부모 역할을 하는 것까지,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인격, 사람됨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우리 교회들은 성숙한 인격의 사람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자보다는 일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인격자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겠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도 양심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내면을 항상 들여다보는 사람, 평형수가 충분히 채워져 있는 사람 말이다.

글ㅣ이석철 교수(침신대 기독교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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