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하나님의 용서와 우리의 용서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들 중에서 매우 뛰어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는 최초로 부르심 받았을 뿐 아니라 그는 수석제자였고 소위 최측근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고 다혈질이고, 실수도 빈번하였습니다. 그의 엉뚱한 질문은 때로는 매우 날카로우며 새로운 진리가 드러나는 계기가 됩니다.
베드로는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리이까?" 하고 질문했습니다. 일곱 번이라면 상당한 관용을 베푸는 것입니다. 당시 랍비들의 가르침은 세 번까지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이 말씀대로라면 7x70=490 무한정입니다.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다음 한 비유를 소개하십니다. 이 비유는 세 장면 또는 3막으로 이루어졌습니다.
1) 하나님의 용서
이 비유는 하늘나라에 관한 비유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임금에게는 종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 종이 왕에게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자그만치 일만 달란트의 빚을 졌습니다.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몇 십억입니다. 왕이 빚을 갚을 것을 요구하자 종이 간청을 한다. 조금만 참아주시면 빚을 갚겠노라고 애걸을 했습니다. 왕은 그를 불쌍히 여겨, 옥에 가두려던 생각을 바꾸어 그냥 그 엄청난 빚을 모두 탕감해 줍니다. 한 달란트는 6000 데나리온이고 1 데나리온은 1일 품삯입니다. 그러므로 1만 달란트는 6천만 데나리온이다. 6천만 일(日)을 일해야 가능한 금액입니다. 1년에 300일씩 일을 60년 해야 18,000 데나리온 정도입니다. 6천만 일이라고 하면 인간은 도우지 갚을 수 없는 빚을 의미합니다. 그 빚을 탕감 받는다는 것은 인간사에서는 불가능한 빚의 탕감이고, 용서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측량할 수 없는 용서의 사건입니다.
2) 용서받는 자의 소행
그토록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종은 그런 용서에 대한 감사와 감동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자신이 빚의 탕감을 받은 사실과 자기에게 빚을 진 동료의 간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빚진 동료의 목덜미를 잡고 빚을 갚으라고 다그쳤습니다. 조금만 참아 달라는 그의 간청을 매몰차게 물리치고 그를 옥에다 가두었다.
3) 용서받은 삶, 용서하는 삶
이 무자비한 소식이 왕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왕은 분노해서 "이 악한 종아, 네게 그렇게 많은 빚을 내게 졌는데도, 네가 간청하기에 불쌍히 여겨 네 빚을 탕감해 주었거늘, 너도 네게 빚진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지 않냐?" 라고 질책합니다. "불쌍히 여겨"란 말이 두 번이나 반복됩니다. 왕의 그 분노는 단순히 질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자비한 종에게 이미 베풀었던 용서를 거둡니다. "그 악한 종을 빚을 다 갚도록 옥졸들에게 넘겼다."
이 비유의 핵심에는 상상할 수 없는 용서가 있습니다. 큰 빚을 탕감해 준 굉장한 큰 용서가 강조됩니다. 동시에 왕의 용서에 비해 적은 빚을 용서해 주어야 한 작은 용서에 대한 기대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죄를 용서받았으므로 형제가 우리에게 지은 죄를 용서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한량없이 큰 죄사함을 받았는데 형제가 내게 지은 죄는 기껏해야 100 데나리온 정도인데, 그것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용서 받은 자의 배은망덕이며 은혜를 모르는 종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종, 감사할 줄 모르는 종을 주인은 다시 불러 그 굉장한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옥에 가두라고 명합니다.
이 비유의 결론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제시됩니다.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 이와 같이 하시리라." 지극히 엄숙하고 무서운 말씀이십니다.
산상수훈에서도 예수님의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마태 5:7) 야고보 저자는 "긍휼을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긍휼이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야고보 2:13) 라고 말씀하십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지 아니하십니다. 형제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필수 조건인 것입니다. 주님 가르치신 기도의 말미에 주신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태 6:14-15) 예수님은 또 말씀하시기를 "예물을 제단에 드린다면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음이 생각나거든 제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 6:23-24) 용서와 화해가 없는 예배는 하나님이 받으시지 않습니다.
죄로 인해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화목제가 되게 하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5:1)고 사도 바울은 쓰고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께 빚진 자입니다. 신앙인은 바로 그 빚을 탕감해 주신 하나님의 용서를 받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바로 구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용서를 의미합니다.
4) 용서받은 자의 직책: 화해의 직책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17-21) 이 구절에서는 화목이란 말이 여러 번 나옵니다. 불화의 근본은 하나님과 인간이 원수 된 까닭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까닭으로 우리의 마음에는 화평이 없고 우리 가정과 사회에도 화평이 없습니다. "평안을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받은 자들"입니다. 화해의 사자이다. 주님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라고 교훈하셨습니다.(마태 5:9)
바울 사도는 "할 수 있거든 너희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롬12:1) 고 권면합니다. 또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고 거룩함을 쫓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느니라."(히 12:14)고 히브리서 기자는 쓰고 있습니다.
성 프란시스코는 "주여, 나로 하여금 화해의 도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그리스도인은 분쟁의 도구가 아니라, 화해의 도구입니다.
화해는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화해의 복음을 받습니다.
화해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우리는 화해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물이 되어서는 아니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화해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화해를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어야 할 것입니다. 복음 전파는 진실로 화해운동이고, 일치운동이고, 세계 평화운동이고, 평화통일운동인 것입니다.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고, 어디에서나 화평의 말씀을 하며, 화평의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순결하고, 다음에는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을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니라."(야고보서3:17-18)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에서 명백해집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다"(마 5:9)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화해하고, 인간 상호간에도 화해하고, 이 화해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하는 화해의 사명을 지닌 자입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간격이 없어야 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화해의 기쁨, 확신, 능력이 넘쳐야 합니다.
그리고 겸손, 온유, 인내, 사랑으로, 기도로 자신을 돌아보는 회개와 반성으로 화해의 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고귀한 인격과 생활이 특별히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는 데에 나타납니다. 그래야 개인도 살고, 민족도 살고, 나라도 살고, 교회도 삽니다.
속히 용서하십시오. 형제간에, 자매간에, 성도 간에 화평을 방해하는 요소를 즉시 제거하십시오.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곧 제거하지 않으면 분열의 씨가 됩니다. 다른 사람이 혐의 있는 것, 나에게 잘못된 것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손해 봅니다. 자연히 우리 마음 가운데 그 사람을 미워하는 생각이 생깁니다. 증오가 생깁니다. 그 사람에 대한 불편한 마음, 원한, 독한 마음을 늘 마음 가운데 품기 쉽습니다. 내 정신생활과 육체생활에 해가 됩니다. 원망하는 마음을 오래 품으면, 그만큼 내 자신에게 손해가 큽니다. 소화불량도 걸리고, 가슴 울렁증도 걸립니다. 속히 용서하십시오.
그리스도의 고귀한 인격에까지 장성하기 위해서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를 기억하십시오.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자를 끌고 와서 "선생님, 모세의 법대로 하면 이런 여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무엇이라고 하시겠습니까?"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들어 저 여인을 쳐라" 누구나 죄인인 것을 냉철하게 상기시키십니다.
십자가 위에서 한 강도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고 회개하자 예수님은 "네가 오늘날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그의 죄를 용서하시고 위로하십니다.
마지막 순간의 예수님의 기도는 "아버지여, 이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저희들이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였습니다.
스데반의 용서를 기억하십시오.
자기를 돌로 치는 사람에 대해서, 스데반은 그 사람들이 몰라서 그러는 것이니 이 사람들의 죄는 이 사람들에 돌리지 말라고 기도합니다. 돌에 맞아 죽으나 그의 얼굴은 천사와 같이 빛났습니다.
서로 용서하십시오.
"주를 위해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엡 4:32)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 (골 3:13)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노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3:8-9)
그리스도인은 용서받은 삶을 살고 용서하는 삶을 사는 자들입니다.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용서는 거두어진다. 천국은 용서받은 자가 가는 곳이고, 용서하는 자가 가는 곳입니다.
16세기와 17세기에는 Luther와 같은 종교개혁자를 통해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함을 얻는다" 라는 복음의 진리가 새롭게 계시되었습니다.
18세기와 19세기에는 "너희는 온 천하에 가서 복음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특별히 명심하고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교회들이 세계 선교운동을 전개합니다.
2000년대는 "믿는 자들이 연합하여 화평한 가운데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개신교의 약점은 분열입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의 근본정신은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 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목사, 장로, 집사, 평신도 모두 화평케 하는 자여야 합니다. 스페인 속담에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악마가 하는 일이고, 악을 악으로 갚은 것은 인간들이 하는 일이고,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메시지는 복음을 사랑하며 민족을 사랑하며 용서와 화해와 평화의 길을 닦으신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을 재구성해본 하나의 시도입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를 향하여 주의 종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실까? "용서하라", "화해하라"
목사님의 온화하고 경건한 모습, 침착하고 간절한 어조로 심금을 울리던 말씀이 귀에 들리는 듯합니다.
발제ㅣ장상 박사(WCC공동회장·전 국무총리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