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오늘, 우리의 갈릴리는 어디입니까?

교회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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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NCCK 2015년 성금요예배 설교문; 해상좌표 126E - 34N에서 드리는 희망의 메시지
예장통합 사무총장 이홍정 목사

사랑하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여러분, 한국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우리는 오늘 2015년 4월 3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기억하는 성 금요일에, 지난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라는 집단살해의 현장, 오열하는 그 생명 죽임의 현장, 해상좌표 126E - 34N 지점에 다시 배를 띄웠습니다.

304명의 무고한 희생자들의 죽음의 의미를 뼈아프게 되새기며, 그 중 아직도 저 스올 같이 어둡고 차가운 바다 속에 던져진 채 남아있는 실종자 아홉 분, 고(故)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양승진, 고창석,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님들의 이름을 애타게 부릅니다. 그 날 이 생명 죽임의 시공에서 삶의 시계바늘을 멈춰버린 희생자 유가족들과 함께, 우리들의 애절한 절규를 차라리 침묵의 소리로 거친 파도에 실어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고통의 바다에서, 2천년 전 팔레스타인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난 나사렛 예수, 생명 죽임의 세상이 다시 생명을 얻고 더욱 풍성하게 얻는 꿈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길과 진리와 생명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구원과 해방을 위하여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에게 해방의 기쁨을 전파하신 예수, 주린 자, 목마른 자, 나그네 된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같이 지극히 작은 자로 현존하시는 예수를, 지금 여기에서 바람처럼 향기처럼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세월호 참사로 인해 가족을 잃고 저 절망의 바다 심연에 모든 희망을 수장시킨 희생자 유가족들의 고난 당하는 삶의 한복판에 현존하시는 예수,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다.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이다.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다. 너희가 웃을 것이다. 지금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다.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크다"고 말씀하시며, 부활의 산 소망으로 우리의 절망을 부둥켜 안으시는 예수를 만나고 있습니다.

무고하게 죽임을 당한 자들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정의는 진리입니다. 로마와 유대의 권력자들이 십자가의 처형으로 예수의 길과 진리와 생명을 부정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사건을 통해 예수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참된 것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죽임의 세력들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역사의 종말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부활의 사건을 통해 십자가의 죽음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의 역사의 정점이며, 새로운 생명 역사의 시작임을 선포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와 함께 실종된 실체적 진실을 찾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진실이야말로 세월호 참사라는 절망의 고해에서 생명살림의 산 소망을 찾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은 결코 실종되지 않는다는 그 진리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희망의 근거이며, 우리가 고통을 견디고 이기며 살아서 마침내 정의와 평화를 세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죽임의 세력이 행하는 그 어떤 불의와 거짓과 억압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진리와 해방의 부활은 죽은 자의 몫으로 반드시 돌아옵니다. 예수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십자가의 죽음을 관통하며 부활하셨듯이, 세월호와 함께 수장된 정의는 진리와 함께 반드시 살아 돌아 올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모든 의혹과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기 위해 성역 없는 조사와 더불어 세월호 선체의 온전한 인양이 반드시 실시되어야 하는데 이는 진실의 인양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는 진리가 처형당하고 진실이 가리워진 공포 속에서 두려움에 떠는 제자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릴리는 어떤 땅입니까? 역사적이고 실존적인 절망의 짙은 그림자를 숙명처럼 일상에 드리운 가난한 사람들의 땅, 죽임의 세력들이 처 놓은 소외의 덫에 걸려 애통하는 자들의 땅, 그러나 바로 그 절망과 가난이, 그 소외와 고통이, 하늘을 향해 내려오라 부르고 진리를 향해 솟아나라 외치는 땅, 예수의 생명살림의 역사가 뜻을 펼치고 끝내 죽임의 권세를 굴복시킨 땅입니다.

예수는 오늘 세월호 참사의 현장, 배는 침몰했어도 승객들은 모두 살았어야만 했던, 이 절망의 바다 깊은 곳에서 죽음의 진실을 건져 올리시며, 우리에게 오늘 이 시대의 갈릴리가 어디인지를 지시하고 계십니다. 부정과 부패, 부당과 부조리, 몰인정과 비상식이 권력의 이름으로 진실의 목을 조르며 꽃다운 생명들을 절망의 바다로 몰아넣고 있는 한국사회와 지구촌의 현실 - 거기서 오늘의 갈릴리 사람들은 침몰하는 세월호처럼 살려달라고 외치며 구사일생의 골든 타임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허리가 두 동강 난 채 분단구조의 족쇄를 차고 미완의 해방 70년을 살아온 한반도, 분단의 모순에 기인하여 국가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공권력의 야만이 백성의 소리를 억누르며 하늘의 소리 듣기를 거부하는 땅, 억압받는 생명의 탄식이 하늘을 찔러 이미 하늘이 내려올 채비를 마친 땅 - 거기서 오늘의 갈릴리는 흔들리며 펼쳐져 있습니다.

제주 강정에서, 고리에서, 월성에서, 밀양에서, 평택에서, 서울에서, 비무장지대에서, 방방곳곳에서 외면당한 채 갈 곳을 잃은 사람들, 맘몬의 우상 앞에 절하며 약육강식의 정글에서 생존을 위해 몸부림 치는 비 정규직 노동자들, 88만원으로는 채울 수 없는 구조적 가난이 가져온 절망으로 인해 폭력과 자살의 유혹의 덫에 걸린 젊은이들, 사회진화론적 우열을 가리는 배타주의로 인해 소외의 늪에 빠져 주변화 되어가는 소수자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숱한 경계들에 둘러싸여 수인(囚人)처럼 살아가는 이주노동자들과 다문화가정들 - 십자가 죽음 이후에 예루살렘을 떠나 절망과 공포에 휩싸인 채 엠마오로 내려가는 제자들과 같은 그 군상들의 삶 가운데, 오늘의 갈릴리는 유기된 채 버려져 있습니다.

정교한 감시와 통제 시스템, 욕망의 출구인 소비와 향락의 문화기제들, 금융자본과 연루된 다양한 '마피아'들의 헤게모니 먹이사슬, 독점과 사유화를 위한 권력의 장치들, 묵시적 죽임의 공포를 과학의 이름으로 감춘 채 집단살해의 거대한 무덤을 파고 있는 핵 발전소들 - 오늘 우리의 갈릴리는 생명죽임의 문화에 둘러싸인 채 질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대의 갈릴리의 정점인 126E - 34N 지점에 다시 서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남긴 상처와 기억들을 갈릴리 예수의 길과 진리와 생명의 빛에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지닌 역사적 의미의 관점에서 거듭해서 재해석하고 성찰하면서 치유와 화해의 과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늘 이곳에서, 자신들의 갈릴리를 관통하고 그 것을 기억 속에 간직한 사람들만이 들을 수 있는 희망으로의 부름, "갈릴리로 가라"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함께 듣습니다.

절망의 심연, 126E-34N에서, 우리는 이제 우리들의 유일한 정의인 진리에 대한 믿음으로 희망을 노래합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남겨졌던 유가족들이 부활의 사건으로 진리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고, 예수가 꿈꾸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갈릴리에서 시작하여 땅 끝까지 이르는 순교적 증언의 길 위에 모든 것을 버리고 나섰던 것처럼, 오늘 우리 모두는 세월호 희생자들의 '유가족'이 되어 그들이 꿈꾸던 세상, 만물의 생명이 풍성함을 누리는 새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명자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오늘 우리의 갈릴리로 나아갑시다. 거기, 고난 당하는 역사의 현장에서 지극히 작은 자로 현존하시는 예수를 만납시다.

오늘 우리의 갈릴리에서, 우리 모두 함께 만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노래 꾼으로, 죽임을 살림으로 바꾸는 춤 꾼으로 살아갑시다.

환난과 궁핍, 고난과 갇힘과 난동,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 깨끗함과 지식, 오래 참음과 자비함, 성령의 감화와 거짓 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의의 무기를 삼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아갑시다.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로, 죽은 자 같으나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유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 살아갑시다.

생명의 하나님이 우리를 정의와 평화로 이끌 것을 희망하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우리 모두가 치유되고 화해된 존재로 변화될 것을 믿으며,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서 이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해 우리들의 갈릴리로 함께 나아갑시다.

2015년 성금요일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사무총장 이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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