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김칠곤 목사] 대학시절에 방학이 되면 친구들과 바다나 산으로 놀러 가는데 있어서 꼭 가져가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먹을 음식물들, 기타 혹은 카세트 테이프를 집어넣을 수 있는 녹음기다. 야외에서 잊지 못할 기억은 꽁치 통조림에 김치를 집어넣어 김치찌개를 끓여 먹는 것이었으며 저녁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기타를 치는 친구의 인도에 의해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이다.
그리고 흥이 나면 카세트 테이프를 틀어 놓고 신나게 춤을 추었던 젊은 추억이 있었다. 특별히 높은 산을 올라가는데 있어서 힘이 들면 작은 녹음기에 들어 있는 테이프를 틀어 놓고 친구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 어느새 목적하는 정상에 이르게 된다. 힘든 여정의 과정에서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흥겹게 하고 기분 좋게 한다. 그리고 카세트테이프에서 나오는 노래는 인생의 슬픔, 기쁨, 아픔, 죽음, 사랑과 이별 등이 표현되어 있기에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사람들의 마음에 옛 기억을 생각나게 한다. 사랑하는 여인이 있다면 그 여인을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 마음속에 있는 감정을 노래로 대신 표현한다.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장소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지난날 젊은 시절에 불렀던 노래를 부르며 지난 추억을 연상하기도 한다. 이것으로 볼 때 음악이라는 것은 인생의 여정을 기억나게 하는 것으로 인간의 삶에 큰 힘이 된다.
노래는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선물이다. 사람들이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감정이 있다는 것이며 감정은 표현되어야 한다. 사람이 뭔가의 물체를 보고 감동을 받는 것은 그 존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눈에 존재하는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 인간은 감성과 이성을 통해 자신의 마음에 느낌의 색깔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계시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창조주의 하나님은 죄인된 인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유함을 주시고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영(spirit)을 선물로 주신다. 이것은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 되는 특권이 주어질 뿐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 놀라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찬양이라는 것은 주님을 경배하는 것이며 주님이 주신 구원의 감격을 감사함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찬양을 하는 것은 주님이 베푸신 은혜 뿐 아니라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를 주님께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찬양의 노래를 불러 마음의 감정이 풍성해지게 하는 성경은 시편이다. 시편은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가장 정서적인 책이다. 이러한 시편에 나오는 찬양을 예수님은 이천년 전에 죄인들을 구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노래를 부르셨을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오랫동안 포로 생활을 하면서 삶의 고통이 너무나 힘들고 괴로워서 그때마다 시편을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위로함을 받기 위해 시편의 노래를 찬양했다. 그것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스라엘로 귀환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의 찬양이 시편 121편에 나오는 것으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를 부른 것이다.
시편121편은 두 가지 측면에서 바라보면 누구나 다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첫 번째 예루살렘은 많은 산들로 둘러싸여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한 것이다. 그 이유는 예루살렘이 해발 800미터의 고지에 놓여 있기에 주변의 국가들로 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천연 요새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의미는 여호와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목자가 되시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마른 광야에서 먹이시고 그들을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것에 대해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감사하여 예루살렘을 올라가는 길에 눈을 들어 하나님만 경배한 것이다.
'예루살렘 주변의 산들'이라는 의미를 지형적으로 본다면 세 가지로 바라볼 수 있다. 하나는 예루살렘은 높은 산에 위치에 있을 뿐 아니라 그곳은 안전하지 아니하기에 혼자 올라 갈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 동행해야 한다. 이에 대한 부연 설명을 보자면 누가복음 10:25-37절에 나오는 것으로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반 죽을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선한 사마리아인을 만나 죽을 위기에서 벗어나고 그 사람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으로 볼 때 예루살렘에 가는 길은 그리 안전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는 수많은 우상들을 섬기는 신전들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목적은 자신들의 삶이 풍성하도록 우상들에게 복을 빌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것들은 부, 건강, 안전한 직업, 농사가 잘되는 것 등인데 이 목적은 근본적으로 자신들의 안녕과 기쁨을 위한 것들이다.
이러한 삶을 현대인의 삶에 비추어 본다면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삶과 차이가 없다. 오늘날 신앙인들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돈, 명예, 권력, 운동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수많은 장애물이 앞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마지막은 예루살렘은 산들로 형성이 되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질서를 지켜야만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가끔 워싱턴 주에 소재된 독일 마을(leavenworth)과 스노콜미를 운전하다 보면 가파른 길목이 나온다. 그런 곳에는 추월을 할 수 없도록 도로가에 사인이 세워져 있다. 하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좁은 길에서 추월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만일 잘못 추월을 하게 되면 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지거나 다른 차량과 접촉사고가 일어나면 큰 사고를 유발하게 된다. 이런 것을 볼 때 가파른 언덕이나 내리막길을 내려 갈 때에는 반드시 질서를 지켜야 한다.
예루살렘을 향해 올라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며 앞으로 가는데 있어서 목적을 가지고 질서를 지키며 안전하게 가야 한다. 이것을 알고 있는 시편기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 도움을 간구한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사람을 실족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밤낮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키시고 그들의 오른 편에서 그늘이 되시고 어려움을 늘 면하게 하시며 영원까지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이 "세상 끝날 때까지 너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가지는 축복이다. 한 영혼이 거대한 세상의 세력과 싸워 여정을 가는 길목에는 수많은 두려움, 공포와 위기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 이것을 이겨 낼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래서 신앙인은 자신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루하루 세상의 위기를 극복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글ㅣ김칠곤 목사(시애틀 크릭사이드 한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