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얼마 전 삼성 입사시험이 있던 날 고사장 주변은 교통마비 사태가 일어났다고 합니다. 가장 좋은 기업으로 손꼽히는 만큼 많은 지원자들이 입사하기를 원해서입니다. 며칠 지나면 수능 시험일이 다가옵니다. 너도 나도 많은 학생들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함은 학업을 이루겠다는 뜻도 있지만 그 보다는 소위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직업을 갖게 될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좋은 직장과 직업을 열망합니다. 그러나 정말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과 의사나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모두 행복하며 자신의 직업을 귀하다고 여길까요?
얼마 전 16년 동안 외교관을 하시다가 우동가게 사장님이 되신 분이 있습니다. 손상목 사장님이십니다. 이 분은 외교관의 삶도 적성에 맞고 보람된 일이었지만 조직에 의해 일하는 것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과 일본에 머무를 때 만난 우동가게 사장님과의 인연으로 우동가게를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겉으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속으로는 저마다 직업의 서열을 매기고 있기에 우동가게 사장님이 외교관보다 좋아 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전직 외교관이었던 분이 우동가게를 여니 뭔가 달라 보입니다. 그 분을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 분의 용기를 닮고 싶고, 우동가게가 더 좋아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저의 반응을 보며 일 자체가 귀하고 천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에 따라 그 일이 좋아 보이기도 하고, 닮고 싶게도 되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반적으로 거룩한 직업이라고 생각되는 성직자나 휼륭해 보이는 교수직도 인격적으로 귀감이 되지 않으면 그 직업이 성스러워 보이지도 존경스러워 보이지도 않게 됩니다. 이들에 대한 기대가 있기에 때로는 더 큰 질타가 따르기도 합니다.
귀한 직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귀한 사람이 따로 있을 뿐입니다. 귀한 사람이 하는 일은 그 일의 성질과 상관없이 귀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이 가치있게 보이고 그 일을 해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