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단상]교의학의 문제로서의 인간(Der Mensch als Problem der Dogmatik, KD III/2, 1-63)

목회·신학
오피니언·칼럼
편집부 기자
백충현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학술연구교수)

칼 바르트의 교회교의학 III권은 창조론을 다룬다. III.1권에서 명제 40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명제 41에서는 창조와 계약을, 명제 42에서는 하나님 창조주의 긍정을 다룬다. III.2권에서 명제 43에서는 교의학의 문제로서의 인간을, 명제 44에서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인간을, 명제 45에서는 하나님의 계대약-동반자로서의 인간을, 명제 46에서는 영혼과 몸으로서의 인간을, 명제 47에서는 하나님의 시간 안에 있는 인간을 다룬다. III.3 권에서 명제 48에서는 섭리론과 그 기초와 형식을, 명제 49에서는 피조물의 주님으로서의 성부 하나님을, 명제 50에서는 하나님과 무성을, 명제 51에서는 천국, 그리고 하나님의 대사들과 그 대적자들을 다룬다. III.4권에서 명제 52는 창조론의 과제로서의 윤리학을, 명제 53에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자유를, 명제 54에서는 교제 안에서의 자유를, 명제 55에서는 생명을 위한 자유를, 명제 56에서는 한계 안에서의 자유를 다룬다.

III.2권의 첫 번째 명제인 명제 43은 교의학의 문제로서의 인간을 다루는데 두 가지 핵심들을 제시한다. 첫째는 창조론의 중심적인 대상이 인간이라는 점이며, 둘째는 인간본성에 관한 인식의 유일한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이라는 점이다. 명제 43을 통하여 우리는 바르트가 이러한 핵심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것이며, 또한 그러한 과정에서 바르트가 자신의 신학적 인간론(theological anthropology)을 어떠한 방식으로 확립하고 있 (theological anthropology)
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1. 세계 안에 있는 인간(Der Mensch im Kosmos)

명제 43의 첫 번째 부분은 "인간은 - 하늘 아래 땅 위에 있는 -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된 피조물이기 때문에 인간은 창조에 관한 신학적 교리의 중심적인 대상이다"와 같다. 이 부분의 핵심은 인간이 창조론의 중심적인 대상이라는 점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창조(creation)'는 용어는 창조주의 행동뿐만 아니라 그 결과를 포함한다. 그래서 창조주와 창조는 하나의 통합적인 전체를 구성한다. 창조론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피조물을 향한 창조주의 행동에 관심을 두었고, 그 다음으로는 창조의 결과인 피조물 자체를 다루며, 이후에는 피조물의 특별한 측면들을 다룰 것이다. 그런데 창조는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별해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에 있어서 창조론(the doctrine of creation)은 인간론(anthropology)을, 즉 인간에 관한 교리(the doctrine of man)를 의미한다. 그러기에 여기에서의 첫 번째 과제는 이러한 점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러면 바르트는 어떠한 방식으로 이러한 점을 확립하고자 하는가? 바르트에 따르면, 교의학의 참된 대상은 "계시되고, 기록되고, 선포된 하나님말씀" 이다 하나님말씀은 세계에 관한 설명도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피조세계 전체에 관한 어떤 존재론도 포함하고 있지 않다. 하나님말씀은 하나님과 인간에 관심을 둔다 하나님말씀은 확실히 인간에 관한 존재론을 제시하고, 특히 하늘 아래 땅 위에 사는 인간에 관한 존재론에 관심을 둔다. 그러나 하나님말씀은 하늘과 땅 자체들에 관한 어떤 존재론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바르트의 요점은 하나님말씀이 하나님 자신에 관하여 말씀하고 또한 인간에 관하여 말씀한다는 점이며, 그러나 하나님말씀은 세계의 어떤 독립적인 존재와 본성에 관해서는 어떤 드러냄도 직접적으로든지 간접적으로든지 포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바르트는 인간이 하나님의 유일한 피조물이 아님을 인정한다. 인간은 단지 하나의 피조물이지 유일한 피조물은 아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은 하나님과 구별되는 실재라는 세계 전체의 전체성을 의미하며, 인간은 그 안에 있는 하나의 구성요소일 뿐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안에 인간을 두셨다. 그러므로 창조론에서 다루는 인간은 세계 안에 위치한 인간이지, 하나님 앞에 홀로 존재하는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허공 속에 있는 존재가 아니며 하늘 아래 땅 위에 살고 있는 존재이다. 심지어 인간은 하늘과 땅에 소속하며 또한 하늘과 땅에 매여 있고 헌신되어 있다. 그렇지만 바르트는 교의학의 과제가 하나의 우주론 세계(Kosmologie/cosmology), 소위 하나의 세계관(Weltanschuung/worldview) 을 개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바르트는 기존의 전통적인 방식들 중에서 우주론을 먼저 다루고 인간론을 다루는 것에 대해서, 예를 들면 18세기까지와 부분적으로 19세기까지 천사론을 먼저 다루고 인간론을 다루는 것에 대해서 비판한다. 더 나아가서 바르트는,"기독교신앙의 대상이며 교회교의학의 대상인 하나님말씀 그 자체가 어떤 특정한 우주론(cosmology)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제시한다 . ① 하나님말씀을 파악하는 신앙은 자신의 특징적인 세계관을 생성한 적이 결코 없으며 항상 외부의 세계관들을 다소간 비판적으로 활용하여 왔다. ② 신앙은 피조세계의 전체성 안에서 자신의 주제를 결코 발견할 수 없다. 신앙은 하나님께서 천지사이에 사는 인간과 맺으시는 관계성 안에서 하나님을 믿는다. 신앙은 천지의 이런 저런 구조를 믿는 것이 아니다. ③신앙이 우주론적 전제들 및 결론들과 맺는 관계는 지극히 애매할 수 있다. 신앙은 변화하는 세계관들의 내용을 자신을 위해서 결코 받아들이지 않는다. 때때로 어느 시점에서는 그것을 이용하지만 또 다른 시점에서는 그것을 버린다. 신앙은 하나의 세계관에서부터 또 다른 세계관으로 옮길 수 있다. 모든 그러한 개념들과의 관계에서 신앙은 항상 자유롭다. ④ 신앙과 이런 저런 세계관과의 절대적인 연합을 발 견한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곳에서조차 우리는 신앙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으로부터 부분적으로 파생된 것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⑤ 신앙이 자신에게, 즉 신앙의 대상에게 진실한 한에 있어서 그리고 신앙의 고백이 순수한 한에 있어서, 신앙과 이런 저런 세계관과의 연합은 신앙의 기저에 놓여 있는 고백과, 신앙과 연결되어 있는 세계관 체계의 원리들과의 모순의 징표들을 항상 드러낼 것이다.

더 나아가서 바르트는 하나님말씀과는 독립적으로 생성되는 우주론에 대해서 비판한다. 바르트는 우주론이 독립적으로 생겨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우주론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 편에서의 들음과 순종을 아직 발견하지 않았거나 또는 다시 상실하였던 척박한 곳에서만 등장할 수 있다. 그럴 때에는 우주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제 3의 세력이 될 수 있고, 그래서 독립적인 관심과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피조세계에 관한 지식이 계약에 관한 지식과 분리될 때에 창조주 하나님은 모호한 요인이 되어 실천에 있어서 무의미하게 되고 그러므로 불필요하게 된다. 그럴 때에 피조세계는 자기충족적인 전체성으로 등장할 수 있고 여기에서 인간은 단지 많은 다른 부분요소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자신의 초월적인 창조주로 부터 분리된 피조세계는 자신의 자연적 중심축을 상실한다. 그렇게 되면 피조세계를 그 자체의 관점에서 인위적으로 설명해야 하는 필요성이 불가피하게 느껴지며 자신의 내적인 원리와 구성과 의미를 자의적으로 탐구해닿 하는 필요성이 불가피하게 느껴지며 그리고는 이런 저런 원리를 선택하면서 피조세계를 개조해야 하는, 즉 그것을 재구성하고 여기에 상응하는 구조를 피조세계에 부과해야 하는 필요성이 불가피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주론이 생성되며 비영적인 영역에서 생성된다.

이와 같이 드러난 독립적인 우주론에 대한 바르트의 비판적인 태도는 신앙과 철학과의 관계에로도 확장되어 적용된다. 즉, 바르트는 신앙과 철학들과의 연합에 대해서도 신중한 자세를 취한다. 바르트에 따르면, 신앙이 철학들과 연합하면 신앙은 이러한 비영적인 영역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이러한 영역에서는 신앙의 고백이 참된 기초를 갖지 못한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은 철학들과는 단지 외적이고 임시적이며 애매하고 역설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뿐이다.

독립적인 우주론에 대한 바르트의 비판적인 입장과 이러한 입장의 연장선상에 있는 신앙과 철학과의 관계에 관한 바르트의 신중한 입장의 근본적인 이유는 바르트에게 있어서 창조와 계약을 불가분리적인 관계이기 때문이다. 즉 그에게 계약은 창조의 내적 근거이고 창조는 계대의 외적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르트는 하나님말씀이 전달하는 지식은 계약과의 불가분리적인 연결 속에 있는 창조에 관한 지식이며 그러기에 하나님과의 계약 안에 있는 인 간의 세계로서의 하늘과 땅에 관한 지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 이외의 세계 또는 우주 자체가 하나님과 무관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도외시되거나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하나님말씀의 관점으로부터 접근할 수 있을 뿐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하나님말씀이 인간에게 향하여지고 인간을 인간 자신에게 드러나게 할 때에 하나님말씀은 인간 주위의 세계를 힐끗 보기만 할 수 있다. 이렇게 힐끗 보는 것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계 안에 있는 인간에게 그 기능을 다할 수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주론적인 경계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계에 빛을 비춘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계가, 즉 하늘과 땅이 하나님의 영광이 거주하는 영역임을 드러내시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영역임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세계를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하나의 위대한 비유로서 이해하고 설명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을 인간에게 보이지 않고 알려질 수 없고 접근될 수 없는 피조된 실재의 합으로서 가리킨다. 인간의 삶의 신적인 지평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상층세계로서 가리킨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땅을 인간에게 보이고 알려지고 접근될 수 있는 피조된 실재의 합으로서 가리킨다. 그 자체로 인간의 영역인 하층세계로서 가리킨다. 이러한 이중적인 가리킴은 오해의 여지가 없다. 하늘은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에 상응한다. 땅은 인간의 존재와 행동에 상응한다. 하늘과 땅과의 결합은 신적인 존재와 행동과 인간적인 존재와 행동이 만나는 언약에 상응한다. 이러므로 인간 주위의 피조세계는 즉 인간 위와 아래에 있는 피조된 존재의 총체는 하나님말씀이 인간에게 말씀하시는 것의 원형과 형태가 된다. 즉 창조주와의 연합 안에 있는 삶의 원형과 형태가 된다.하나님말씀이 하늘 아래 땅 위에 있는 존재인 인간에게 말씀할 때에 또한 세계에 관하여 선언하시는 바는 바로 세계가 이와 같은 조화 속에 있다는 점이다.

바르트는 이와 같은 한계들 안에 있을 때에야 창조론은 제 자리를 찾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한계들 안에서 제시되는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이해는 하나님말씀이 규 정한 방향을, 인간에 관한 방향을 따른다는 정도에 있어서 '인간중심적' 이다 이러한 정도에 있어서 하나님의 창조에 관한 이해는 우주론을 단지 힐끗 볼 뿐이며, 우리가 소위 우주적 과학에 관하여 기술하였던 긴장의 관계 속에 늘 있을 것이다.

창조론의 중심적인 대상으로서의 인간에 대해서 바르트는 상세하게 설명한다. 먼저 바르트는 교의학을 확장하여 우주론을 만들려는 관심은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에 관한 특정한교리를 상세히 설명해야 하는 의무는 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하나님 자신의 말씀에 따르면, 창조의 활동 중에 하나님께서 주목하셨던 피조물이며, 은혜의 계약 안에 있는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께서 이 말씀의 완전하고 분명한 계시 속에서 바로 인간이되셨기 때문이다. 인간이 누구이고 무엇인지는 하나님이 누구이시고 무엇이신지에 못지않게 하나님말씀에 의하여 구체적이고 강조적으로 선언되었다. 하나님말씀은 본질적으로 인간에 관한 구체적인 관점, 즉 인간론, 즉 이러한 특정한 피조물의 존재론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러한 관점을 신앙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그것을 신앙의 고백 속에 반영해야 하고 그것을 신앙의 인식으로서 발전시켜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인간에 관한 교리는 항상 피조물에 관한 교리학에서 중심적인 요소가 되어 왔다.

바르트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의학에서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인간은 세계 안에 있는 인간이다. 인간은 하늘 아래에 있다. 또한 인간은 땅 위에 있다. 세계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계획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그러기에 그것의 목적과 중심은 인간이다. 세계의 실재는 세계 안에 인간의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인간의 편에서는 인간이 세계 안에 있는 인간으로서만 가능하고 현실적이라는 점도 사실이다.

이러한 인간중심적인 관점은 인간과 세계를 구별해준다. 인간과 세계는 한편으로는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은 세계와는 구별되는 존재이다. 바르트의 설명에 따르면 인간은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의 대상이며 세계 안에서 이러한 목적이 계시된다.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신적인 목적의 대상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이 모든 것들 속에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목적은 오직 인간 안에서만 드러난다. 인간 주위의 세계는 하나님께 낯선 존재가 아니다. 세계는 독립적이지 않고, 하나님 면전에서 주권적이지 않다. 세계는 자체에 고유한 법칙을 따르지 않고 창조주의 뜻과 활동을 따른다. 세계는 또한 전적으로 하나님에게 달려 있으며 하나님을 섬긴다. 세계는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며 하나님을 주인으로 찬양한다 확실히 이러한 주권과 찬양은 전체로서의 세계 안에서 행사된다는 점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이러한 점을 하나님말씀에 의해서 안다. 하나님말씀은 땅 위에 하늘 아래에 존재하는 인간에게 의심의 여지없이 말하기 때문이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시며 주님이심을 그리고 하늘과 땅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을 수 없음을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찬양이 우리 주위의 세계 안에서 어떻게 행사되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도 이러한 점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러한 점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침묵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피조물들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어떻게 서있는지를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과 다른 피조물 사이의 관계의 내적인 본질이 무엇인지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위의 세계를 어떻게 통치하시고 어떻게 찬양을 받으시는지를 하나님의 말씀은 말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바르트에게 있어서는 인간은 신학적인 창조론의 중심적인 대상이 된다. 그래서 바르트는 사실 우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고도 말한다.

바르트에 따르면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말씀으로부터 안다. 우리가 하나님말씀으로부터 인간에 관하여 아는 바는 땅 위에 하늘 아래에 있는 인간의 존재는 전적으로 목적을 위하여 즉 하나님께서 인간과 함께 말씀하시고 인간은 듣고 응답할 수 있도록 결정되고 창조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하나님말씀으로부터 인간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인간을 향하여 깊은 자비와 선을 가지고 계신 것의 충분한 의미를 안다. 그리고 그의 피조물로부터 찬양과 감사를 기다리고 계심을 그리고 자신의 최고의 유일한 영예로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간과 관계들을 맺으시기를 의지하시고 인간을 역사 안에서의 동반자가 되게 하시기를 의지하신다는 점을 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의 절정에서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본질이 되시고자 하셨고 되셨으며 즉 창조주가 피조물 즉, 이 피조물이 되셨으며 돌이나 식물이나 동물이 아니라 바로 인간이 되셨음을 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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