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곤 칼럼] 고통이 크면 기쁨도 크다

▲김칠곤 목사(미국 크릭사이드교회)

[기독일보]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명언 중에 "어떤 경우에도 기쁨이 크면 클수록 그에 앞서서 큰 고통이 따른다."이 말은 삶의 기쁨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려운 역경을 이겨내는 속에서 주어진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필자가 아는 지인과 대화를 하는 중에 미국의 대학생활에서 어떻게 하면 A학점을 받을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분의 이야기는 시험을 보기 이전에 6시간만 공부를 하면 적어도 C 학점은 맞을 수 있다. 그리고 12시간을 공부하면 B 학점은 받게 된다.

그런데 A 학점을 받으려면 1주일 내내 학교 공부를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말은 A학점을 받는 길은 오직 노력에 의한 것 밖에 없다는 말이다. 좀 더 실질적으로 말을 한다면 학기 중에 친구들과 만나 술자리를 가지고 그들과 함께 놀러가기 보다는 도서관이나 집에서 학습을 위해 예습과 복습을 충실히 하고 교수가 원하는 방향대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즉 노력이 없이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는 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에는 수많은 삶에 유혹들이 주어진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것이 우선이기에 다가올 세상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보이는 것만을 쫓아가게 된다. 현재에 삶이 전부라고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미래를 향한 인내가 부족하다. 인간의 삶은 자연이 변화하는 4계절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계절 속에 인간이 해야 할일은 씨를 심어야 하고 씨가 자라도록 물을 주고 열심으로 땀의 수고를 통해 추수를 하고 겨울에는 그것을 가지고 안식을 취하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씨를 심고 추수하는데 까지는 수많은 고통과 인내가 필요하다. 이것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미래를 향한 꿈은 쉽게 가질 수가 없다. 어느 아프리카 선교사가 "소망과 씨"에 대한 간증을 하던 중에 이런 말을 한 것이 생각이 난다. 그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마을에 추수 때가 되면 사람들이 밭에서 곡물을 거두어들이고 그 다음해를 위해 곡물의 10%를 씨로 저장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해 추수를 할 때까지 남은 90% 곡물을 저장하여 1년을 살아가야 한다. 그런데 90%를 저장해 놓았던 곡물이 거의 다 떨어질 즈음에는 각 가정마다 부모들이 매일 매일 먹을 식량을 줄인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끔 어린 자녀들이 배가 고파서 부모님들에게 울며 이야기하기를 "아직도 10%의 곡물이 창고에 저장 되어 있는데 그것을 먹으면 되지 않아요?"라고 묻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모님들은 그때 자녀들에게 답변하기를 "이것은 내년에 씨의 종자로 사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저장해 두어야 한다.", "우리가 이것을 먹으면 내년에 우리는 굶어 죽게 된다."씨가 없이는 흙 자체만으로는 먹을 식량을 획득할 수 없기에 아프리카인들은 곡물과 씨들을 저장해 두어야 하고 봄이 되면 그것들을 밭에 가서 심어야 한다. 이것으로 볼 때 씨는 농부들이 살아가야 하는 희망과 같은 것이다. 고통과 인내를 통해 씨가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씨는 흙 속에 심어져야 할 것이며 그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해와 비를 통해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통해 줄기가 땅으로 솟아올라 그 가운데서 열매를 맺어야 한다.

농부가 농사를 짓는 과정에 수많은 땀과 힘겨운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그 속에서 주어지는 열매를 바라볼 때 지난날 고통의 아픔이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비슷한 상황을 성경에서 찾아본다면 그것은 시편126편5-6절의 말씀이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 시편 기자가 이것을 기록한 배경을 본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 생활에서 해방이라는 벅찬 감격과 기쁨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하나님께 신앙고백을 한 것이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부터 해방되지 못한 바벨론에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위로를 주고자 한 것이다. 눈물로 기도의 씨를 뿌리면 하나님의 때에 해방이 되는 기쁨의 감격의 순간들을 볼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70년간 바벨론의 포로 생활이라면 어느 세대는 내 이스라엘이 아닌 타국에서 마지막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며 어떤 가정은 2세대가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에 돌아가지 못하고 죽는 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그리운 조국을 평생을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삶의 큰 고통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이 말은 미국에 사는 한인 교포들 중에 신분이 없어 대한민국 땅에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 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본다. 이것은 하루하루가 고통의 순간이며 하루가 1년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강한 제국의 통치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이 어느 날 한 순간에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것은 사이러스 왕이 바벨론 제국을 통치할 때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갑작스럽게 조서를 내리게 된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귀환시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 생활을 하면서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었기에 그들이 조국에 돌아간다는 것은 정말 꿈만 같은 것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꿈과 기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도움에 의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을 가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고통가운데서 벗어나게 해 주시리라는 믿음을 지녀야 한다. 믿음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행운을 비는 것과는 다른 차원이다. 믿음이라는 것은 고통과 기쁨, 삶속에서 주어지는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주신 해방의 감격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어려움 가운에 기도를 하나님께 매일 같이 올려 드린 것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누리는 기쁨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세상에서 누리는 기쁨은 결혼생활이 행복하고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나와 좋은 직장에서 월급을 많이 받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누리는 감격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구속사의 감격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완성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여 자신의 삶의 고통을 이겨 내시며 죄인들을 사랑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주님의 고통은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랍고 위대하시다. 그리고 주님은 죽음의 어둠을 물리치시고 부활의 감격을 구원받은 백성들에게 보이셨다. 주님이 지신 고통의 십자가와 부활의 기쁨은 "사랑의 죽음과 구원의 열매"와 같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농부가 바라보는 "씨와 곡식단"과 비유해 볼 수 있다.주님은 죄인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절대적인 희망이시다. 농부가 씨를 통해 곡식을 수확하듯이 주님을 위해 눈물의 기도를 심는다면 하나님의 때에 그것을 통해 은혜의 기쁨을 한 없이 누리게 될 것이다.

글ㅣ김칠곤 목사(크릭사이드 한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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