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김종엽 기자] 저물가 현상이 이어지면서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 상황이 디플레이션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저물가 상황이 크게 걱정스럽다고 밝혔다.
디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한 위기의식을 드러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지난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52%로 담뱃값 인상 효과(0.58%포인트)를 제외하면 마이너스가 된다. 담뱃값 인상이 없었다면 소비자물가가 1년 전보다 내렸갔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최근 물가 흐름에 대한 판단과 처방을 놓고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최근 들어 0%대 물가 상승률을 기록한 것은 지난해 12월부터다. 지난해 12월에는 13개월 연속 1%대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종지부를 찍고 0.8%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1월에는 0.8%를 기록한 뒤 지난달에는 0.52%로 내려갔다.
이런 저물가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국제유가 하락이다. 지난달 석유류의 물가 변동률은 작년 같은 달, 전달 대비 각각 -24.3%, -5.3%에 달했다.
정부는 현재 상황이 디플레이션이 아니라는 근거로 근원물가가 2%대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든다. 농산물 및 석유류를 제외한 지난달 근원물가는 1년 전보다 2.3% 올라 2개월 연속 2%대를 기록했다. 4개월 연속 1%대를 기록한 지난해 9∼12월보다 근원물가 상승률은 오히려 높아진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변수라고 할 수 있는 저유가를 제외하 더라도 최근의 저물가 현상은 심각하다는 진단이 나온다. 저성장 구조가 고착화하면서 실물경제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경기전망이 불투명한데 따른 소비위축의 장기화가 저물가 현상의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이 현실화하면 기업과 가계가 앞으로 물가가 더 낮아질 것으로 기대, 소비와 투자를 뒤로 미뤄 경기가 활력을 잃게 된다. 이것은 물가를 더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해 경기는 악순환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현 물가 수준과 전망 등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지갑을 닫고 있는 것이 저물가로 나타나고 있다"며 "물가가 하락하면 소비심리 위축으로 내수경기가 더 침체돼 디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한국은 이미 디플레이션에 진입했다"며 "게다가 이 상태로 간다면 디플레이션이 상당히 고착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현재의 경기상황을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 지표가 10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며 "따라서 현재 국내 경기는 침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그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저물가를 공급이 주도하는 것이라면 소비자 입장이나 우리 경제에 나쁠 게 없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종욱 서울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최근 한 세미나에서 한국 경제에 디플레이션이 나타나는 것은 7∼8년 이후에나 가능한 일로, 당장은 심각한 상황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현재는 디플레이션으로 진행될 만큼 경제 지표가 심각하게 전개되지 않고 있다"며 "국민이 느끼는 불황이 심각하다 보니 정책당국이나 전문가들이 디플레이션으로 해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저물가로 인해 한국은행에 대한 기준금리 인하 압박이 거세지고 있지만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은 "지금 상황에서는 기준금리를 인하하더라도 가계부채 문제 등으로 득보다 실이 많을 수 있다"며 "중장기적인 체질 개선에 매진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