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김종엽 기자] 고객에 대한 은행의 손해배상 책임이 한층 강해질 전망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은행약관 및 상호저축은행 약관을 심사해 19개(은행약관 13개, 상호저축은행약관 6개) 불공정약관 유형에 대해 금융위원회에 시정을 요청했다고 22일 밝혔다.
은행법 및 상호저축은행법에 따라 금융위는 은행 및 상호저축은행의 약관을 공정위에 통보해야 하고, 공정위는 이 약관을 심사한 후 약관법에 위반되는 경우 시정을 요청할 수 있다.
공정위가 지적한 대표적인 불공정 약관은 은행의 손해배상책임을 불합리하게 제한하는 조항이다. 그동안 일부 은행은 '은행이 중대한 과실 또는 부주의로 발생한 손해 또는 손실에 대해 고객이 은행에 납부한 과거 1년 간 수수료 합계 금액 이내에서 배상한다'는 조항을 유지해왔다.
공정위는 "은행의 귀책사유로 고객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고객이 은행에 납부했던 수수료 상당액에 한해 손해배상을 하는 것은 사업자의 책임을 제한하는 조항으로 약관법 위반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앞으로 은행의 고의 또는 과실로 고객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 은행은 손해금액 한도안에서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은행의 고의·중과실에 대해 책임을 면제받도록 한 약관조항도 시정된다. 펌(기업)뱅킹서비스 이용계약서에 따르면 '은행은 이용기관이 전송한 거래지시 또는 자료 등이 착오, 오용, 유용, 위조, 변조 및 기타의 사고에 의한 것이라도 그 처리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공정위는 "해당 약관조항은 회사의 고의 또는 과실 여부를 불문하고 책임을 배제하고 있으므로 약관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은행의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해 업무처리 결과 고객에게 손해가 발생했다면 은행이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외환거래약정서에 담긴 은행·상호저축은행의 추가담보 요구 조항도 시정된다. '거래처는 외환거래의 채무와 관련해 은행의 요구가 있을 때 만족할 만한 담보를 제공하며 환율·금리 등의 변동으로 담보가치가 하락할 경우 추가 담보를 제공하거나 보증인을 세워야 한다'는 조항이다.
공정위는 "해당약관은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하고, 기한이익 상실 등 예상치 못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이는 사업자가 부담해야 할 위험을 고객에게 이전시키는 조항으로 약관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외환거래약정서상 은행의 해지권 행사요건을 완화한 조항에 대해서는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이익을 줄 우려가 있는 조항"이라며 "계약위반이 있더라도 계약의 존속을 무의미하게 할 정도가 아니라면 계약의 해제·해지를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는 심의결과를 내놨다.
공정위는 "채무이행이 불가능하게 될 때나 관련 법규에서 정하고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상당한 기간을 정해 그 이행을 최고하고, 그 기간 내에 이행하지 않았을 때 비로소 그 계약을 해지 또는 취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폰뱅킹서비스 이용약관에서 은행의 일방적인 서비스 변경 조항도 불공정약관으로 지적됐다. 공정위는 "불가피한 경우에 매우 제한적으로 인정돼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사유 또한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며 시정을 요구했다.
상호저축은행이 대출이자를 산정할 때 평년과 윤년을 구분하지 않는 조항에 대해서는 "1년이 366일인 윤년의 경우 고객은 평년에 비해 더 많은 이자를 지급하게 되므로 고객에게 부당하게 불리한 조항"이라고 봤다.
금융위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금융감독원을 통해 시정 조치를 취해야 한다.
공정위는 "금융약관은 전문용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내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아 불공정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소비자들의 이의 제기가 쉽지 않다"며 "이번 시정 조치로 금융소비자들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번에 시정된 은행, 상호저축은행의 약관 뿐만 아니라 금융투자, 여신전문금융 등 금융 약관 전반에 대한 심사를 통해 불공정 약관을 시정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