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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우익 통일부 장관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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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게 하는 상황이다"
한 정부 당국자는 22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우리 정부가 대북정책 기조를 어떻게 가져갈지를 놓고 고심중인 속내를 여과없이 드러냈다.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갑작스럽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한반도 안보의 유동성이 크게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아직 우리 정부가 뚜렷한 남북 관계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주변국들이 발 빠르게 대북 레버리지 강화에 나선 것은 우리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을 비롯한 9명의 중국 수뇌부는 주중 북한대사관을 찾아 파격적 조문을 했다. 미국도 뉴욕채널을 통해 김 위원장 사망 이후 첫 북미 접촉을 가진데 이어 북한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의 성명을 발표했다.
문제는 우리 정부의 기존 비군사적, 비정치적 부문에 대한 방법론적 유연성이 '김정은 체제'의 북한을 끌어내고 적절히 관리할 수 있느냐 여부다.
류우익 통일부장관은 최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 중대한 변수가 생긴 것은 사실"이라면서 상황의 엄중성을 언급한 바 있다.
또 다른 당국자는 "김정은 체제가 앞으로 한반도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변수인 만큼 대북 레버리지 강화를 위해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고민이 있다"고 전했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천안함ㆍ연평도 사건에 발목이 잡혀 있다.
두 사건에 대한 최고 책임자인 김 위원장이 사망했지만, 그동안 정부가 공언했던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를 하루아침에 접기에는 부담이 있다는 것이다.
류 장관도 천안함ㆍ연평도 사건과 김 위원장 사망과의 관계에 대해 "별개 사안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천안함 및 연평도 사건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정부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현재 대북정책 기조변화보다는 안정적 상황관리에 주력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사망에 대해 북한 주민에게 조의를 표하고,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 대한 방북 조문을 결정했다. 민간 차원의 대북 조전 발송도 허용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조속히 안정을 되찾아 남북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협력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그러나 더욱 적극적인 자세로 김 위원장의 사망을 남북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각에는 이산가족 등 인도주의적 문제를 매개로 대북 식량지원 같은 적극적인 카드 제시를 주문하고 있다.
이봉조 전 통일부차관은 "현재 남북관계는 불안정, 불투명성, 불가예측 등 3가지 요소가 공존하고 있다"면서 "위기적 요소가 있지만, 위기보다는 기회 쪽으로 가능성을 열어놓고 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기존 방법론적 유연성에서 전략적 유연성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대화에도 시기가 있으며 시기를 놓치면 상당기간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각종 정치적 일정이 시작되는 내년 2월에 앞서 1월께 적극적인 대화제의를 주문했다.
이를 통해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은 아닐지라도 차기 정부가 남북관계를 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대북정책 기조에 변화를 줄지 아니면 기조를 유지할지는 북한의 조문 정국이 일단락되는 내년 초 북한 신년공동사설 이후에나 윤곽이 잡힐 것으로 관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