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한국교회언론회] 1월 29일 국민일보에는 "IS는 누구인가?"라는 이희수 교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칼럼이 실렸다. 이희수 교수는 기고문을 통해서 "도대체 IS는 어떤 조직이길래 이렇게 잔혹하고,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팔아 가장 반종교적인 만행을 일삼고 있는가?"라고 전제함으로, 이슬람은 마치 평화의 종교인데 IS만이 문제인 것처럼 묘사했다.
그러나 IS의 행동은 모두 꾸란에 근거를 둔 행위이며 무함마드가 보여준 행동모범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가장 헌신적인 이슬람집단인 것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리아 내전 등으로 인하여 부모형제를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상처와 분노가 적개심으로 작용했음을 부각시킨다.
IS가 성장해 갈 수 있는 이유를 미국의 이라크 침공, 아프가니스탄 전쟁,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20여만 명의 민간인 희생,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2,500명에 달하는 인명학살로 인해 생긴 복수심과 증오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IS가 어떤 합리적인 상식과 논리로도 치유되지 못할 트라우마와 강한 적개심을 갖게 된 것은 미국과 서방세계 때문이 아니라, 이라크에서의 순니파와 시야파의 분쟁 때문이다.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이 장기간 통치하는 동안 기득권 세력을 누려왔던 순니파가 사담 후세인이 제거된 후 시야파의 통치를 받게 된 것에 분노한 순니파 무장단체들이 시야파 제거를 기치로 내걸고 세력을 키워나갔던 것이다.
이희수 교수는 기사 본문을 통해서 "한국도 수많은 무고한 민간인 희생을 양산하는 대테러 전쟁에 참여 방식보다는 사랑과 나눔의 정신으로 가족을 잃은 극단적 증오심을 치유하는 노력에 더 많은 관심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할 때다"라고 충고했다.
이는 그럴듯한 충고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IS의 과격한 테러 행위는 서방세계에 대한 분노 때문에 일어난 사실이니, 그 분노를 치유하기 위해서 전사한 IS대원들의 가족들을 돕는 투자를 해야 한다는 뜻이고, 이는 IS테러 자금 후원을 독려하는 내용으로 들린다.
이희수 교수는 이슬람에 관한한 꽤 유명한 인사이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이슬람 학자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10년간 이슬람 여러 지역에서 이슬람 문화를 연구해 왔다고 말한다. 또 오랜 동안 대학교수이며, 한국 이슬람학회 회장이다.
그는 2007년 타쉬켄트가 이슬람 문화 수도로 결정되면서 열린, 이슬람세계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기도 하였다. 그의 저서도 이슬람을 소개하는 책들이 많다. 그러므로 그는 30여년을 이슬람을 위해 살아온 셈이다.
그는 2006년 1월 9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자신은 "이슬람 대중화를 위해서 목숨을 걸고 뛴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또한 그는 한국의 교과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이슬람은 한 손에 칼, 한 손에 꾸란"이라는 구절을 완전히 없애 버렸다고 승리선언을 한 사람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기에서도 명백히 선포하고 있는 폭력적 이슬람 사상을 평화의 종교로 바꿔놓은 장본인이다.
그는 강연 때마다 "이슬람과 적대세력인 서구의 눈으로 이슬람을 보지 말고 우리 눈으로 봐야 한다"고 할 때, 그가 말하는 '우리 눈'이란 무슬림의 눈을 말하는 것이다. 그는 이슬람을 일방적으로 두둔하고 미화해 왔다.
심지어 최근의 샤를리 엡도 잡지사 테러 사건과 관련된 인터뷰에서도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것은 영적 살인으로 느꼈을 것"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무슬림들이 프랑스에서 차별대우를 받아 극도로 분노가 쌓였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으로 평가하면서, 일방적으로 테러범을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왜 이런 필자의 글을 국민일보에 실었느냐 하는 것에 의아해 한다. 즉, 이희수 교수는 이슬람 전파자이고, 평소 그의 강연에서는 문화적 접근이라는 명제로 이슬람을 전파하고 있었으므로, 이슬람의 정체성을 확인하는데 매우 혼선을 가져다주는 내용들을 전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의 강연 내용을 들어보면, 유대교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뿌리가 같다는 것을 강조한다. 또 이슬람교의 '알라'와 기독교의 '하나님'은 같은 분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에서는 기독교계가 '알라'와 '하나님'을 같이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으나, 사용을 불허했다. 즉 '하나님'과 '알라'가 같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그리고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신성(神性)을 부정하고, 이슬람의 선지자 가운데 하나로 소개한다. 그렇다면, 이슬람교와 기독교는 결코 같을 수가 없다.
이슬람교는 기독교와 유사한 것 같지만, 확연히 다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온 우주 만물을 창조했다고 하지만(창1장),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에서는 알라가 '한 방울의 정액으로 인간을 창조했다'(꾸란 76장 2절)고 했다가 '엉킨 피로 인간을 창조했다'(꾸란 96장 2절)고 했다가, 또 다른 곳에서는 '흙으로 만들었다'(꾸란 15장 33절)고도 한다.
반면에 우리의 구세주이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슬람에서는 아담처럼 흙으로 만들었다(꾸란 3장 59절)고 한다. 또 예수 그리스도를 아론의 누이 미리암이 낳았다(꾸란19장 24~28절)고 한다. 그런가 하면 알라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다.(꾸란 5장 73절) 그런데 어찌 '하나님'과 '알라'가 같으며,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뿌리가 같다는 것인가?
기독교가 이희수 교수를 초빙하여 그의 강연을 듣는 것 자체도 위험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며, 더구나 그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2007년 모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에게 자꾸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문화인류학자로서 문화적으로 이슬람에 개종한 사람'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 집안에는 천주교인이 많고, 부인도 천주교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조선일보 모 기자의 질문에서, 이희수 교수는 무슬림인가를 묻는 질문에 "전형적인 유교적 가문에서 자랐고 지금도 그런 분위기에서 살고 있다. 대학 시절 터키에서 온 이맘(종교 지도자)이 아름답다는 뜻이 담긴 '자밀'이라고 이슬람 이름을 지어주기도 했지만, 이슬람은 내겐 신앙이 아니라 문화적 이해 차원의 문제다."고 답변했다.
그런 그가 한국이슬람중앙회 사무총장과 이사장을 지낸 것은 무슨 의미인가? 무슬림이 아닌 사람이 이슬람 중앙회 사무총장과 이사장을 할 수 있는가? 이는 불신자가 기독교단 총회장을 역임한다는 말과 같은 괴변이고, 거짓말과 같다.
그의 말에 의하면, 2009년도 모 교회에서 강연을 시작하면서 9.11테러 이후 지금까지 100개가 넘는 교회에서 강연을 해서 교회가 낯설지 않다고 했다. 교회가 매우 경계해야 할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무슬림인 그를 초청하여 강연을 듣는다거나 기독교 일간지에 그의 글을 싣는다는 것은 오해를 넘어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지난 해 중앙공무원교육원이 뽑은 최고의 강사 4인에(800여명 가운데)선정될 정도로 유명하다. 그러나 강사로서 유명한 것과 기독교와 연관하여, 이슬람에 대하여 교회가 초청하여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이다.
최근에 이집트를 비롯한 수많은 이슬람 지역에서 무슬림에 의하여 교회들이 집중적으로 공격당하는 모습을 월드뉴스는 끊임없이 전하고 있다. 이는 영적인 면은 물론, 모든 면에서 이슬람이 기독교를 박멸하려는 의도가 분명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희수 교수는 강조하기를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라고 하는데, 드러난 현상은 정반대이다. 일부 이슬람 지역에서는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을 강간해도 된다는 가르침이며, 지금은 IS가 세계적으로 지탄을 받아서 그가 IS를 때리는 발언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나, IS가 활개 치기 전에도 지구상에서 일어난 테러의 대부분이 무슬림에 의한 것임을 설명하지 않는 것은 정직하지 않은 것이다. 세치의 혀로만 평화의 종교라고 선전한다고 해서, 곧 평화의 종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타 종교를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교의 실체를 정확히 알아야 할 것이라는 것이며, 이슬람교도인 이희수 교수의 교회 초청 강연이나 기독교 언론에 그의 기고문을 게재하는 것은 기독교인들에게 오해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심각성을 밝히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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