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윤근일 기자] 북한 내 시장화가 북한 사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국가가 제공한 혜택을 받은 경험 없는 세대에게 시장과 개인이 정체성의 근간이란 의견과 함께 북한 주민들이 기존의 자국 문화에 대한 피로감에 같은 민족인 남한의 한류에 관심이 크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발언도 나왔다.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7일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발간 '한반도 포커스'에 게재한 논문에서 "부모 세대가 어려운 경제난을 겪으면서도 김일성 시대에 대한 향수와 국가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과 믿음을 정체성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다면 지금 북한의 새 세대는 국가가 제공하는 혜택의 경험이나 기억이 없는 집단으로서 시장과 개인이 자신들의 정체성의 주요 근간이 되는 세대"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장사를 위해서라면 뇌물을 주고 조직 생활을 회피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이 속한 조직을 활용해 좀 더 효율적으로 장사를 하거나 돈벌이에 나서기도 한다"며 "그만큼 시장이 이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장이 됐고 이들에게 있어 북한 체제나 정치의 문제는 시장의 부수적인 요소로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북한의 새 세대에게는 돈이 중요한 기준점이 됐고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한 방법으로 시장과 국가를 적절하게 넘나드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라며 "휴대전화를 활용해 금융업을 한다거나 외래 문물의 유통관련 사업을 하는 것,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장사 품목으로 만들어내는 것 등은 북한의 새 세대가 세대적 특징을 바탕으로 시장의 내연을 확대시키고 있다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특히 시장의 확대로 여성이 주요 경제주체가 된 현 상황을 반영하듯 북한의 여성은 결혼 시기를 조금씩 늦추거나 경제적으로 안정된 배우자를 선호하고 좀 더 평등한 가사분담을 요구하는 등 기존의 가부장제 가치관에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새 세대에게는 자유연애가 자연스러운 것이 됐고 여성의 혼전순결이나 남편에 대한 절대적 복종과 같은 가부장적 가치관은 이미 상당부분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오유석 성공회대학교 사회문화연구원 교수는 시장화로 인한 북한여성의 변화와 관련, "시장화가 발달할수록 더 많은 여성들이 생계유지가 아니라 이제는 물질적인 생활향상을 기대하며 시장경제에 참여하면서 여성의 가족부양능력과 역할이 커지고 가정에서의 발언권도 커졌다"라고 설명했다.
김병로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 교수는 북한 내 신흥자본가와 관련, "큰 시장이 형성된 대도시를 중심으로 이른바 '돈주'로 불리는 신흥자본가 집단이 성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자생형 돈주는 대개 지방에서 시장을 통해 재산을 축적한 사람들이며 재산규모가 적게는 5000~1만달러, 많게는 3만~5만달러에 이른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권력형 돈주는 해외거주자, 해외교포, 중앙당, 외화벌이 기관 간부 등으로 북한 당·정·군 등 권력기관의 비호를 받거나 그와 결탁관계를 유지하며 사업을 한다"며 "권력형 돈주는 자생형 돈주와는 달리 처음부터 군부나 당 등 권력기관의 대리인으로 활동하며 외화벌이에 직접 참여하면서 전문적으로 상업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 내 한류와 관련, "정치적 선전선동 중심의 기존문화에 피로감이 있었던 북한 주민들에게 자본주의 외부문화는 관심의 대상이 됐는데 특히 같은 문화적 배경을 갖고 있는 한류는 북한주민들에게 더욱 인기가 있었다"라며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던 남한 문화는 시장화가 심화되면서 수익 창출이 보장되는 중요한 상품이 됐고 결과적으로 한류의 확산이 더욱 가속화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