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선교신문 이지희 기자] "20년을 아프리카를 위해 살면서 제 안에는 '내가 왜 이들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이 끊임없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사람들이 변화되고 성장하는 것을 보여 주며 위로해 주셨죠. 인생의 마지막 때, 제가 늙어 쉬는 곳에 선교회에서 자란 아프리카 지도자들이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하는 발걸음이 그치지 않는다면 이젠 그보다 행복한 일이 없을 거에요."
1994년 르완다 대량학살 현장을 취재한 이후 지금까지 고통받고 상처 입은 아프리카인들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위로하고 변화시켜 온 선교사가 있다. 건강하게 사는 세월을 60년으로 보고, '6년을 십일조로 드리겠다'는 생각으로 르완다 전쟁고아와 미망인들을 위한 유치원 사역부터 시작한 그는 이후 '월드미션 프론티어'를 설립해 르완다, 탄자니아, 콩고, 부룬디, 우간다 등 아프리카 5개국에서 대규모 복음화 대회를 개최하고, 교육사역, 복음화 사역, 구제사역 등을 열정적으로 펼쳐왔다. 한국 기독교 기업의 아프리카 진출을 돕고, 아프리카의 이슬람화를 방어하기 위한 비영리 아프리카 개발기구 KAID(Korea Africa Investment and Development)의 대표로도 활동하는 김평육 선교사(58)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김 선교사는 지난달 27일 기독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아프리카가 개발 붐을 타고 하루가 다르게 도시화되면서 가치관에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고, 이슬람권은 아프리카 전 대륙을 이슬람 벨트로 선언하여 이슬람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며 "그 어느 때보다 아프리카를 향한 관심과 기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3백 개의 미국과 한국의 한인교회가 월드미션 프론티어와 아프리카 복음화에 뜻을 같이한다면 아프리카의 이슬람화를 쉽게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한 교회가 매년 5천 달러의 아프리카 복음화 기금을 지원하고 5명의 선교단을 파송하면, 총 150만 달러의 기금으로 1천5백 명의 선교단원이 매년 한 나라씩 복음화하는 전략"이라고 소개했다.
김 선교사는 또 "한국교회가 우리를 위한 성전 짓기에만 무리하지 말고, 아프리카 사람들이 마음껏 예배할 수 있도록 '아프리카 성전 짓기 운동'에 참여하고, 현지인 신학교, 중고등학교, 복음화 대회 사역을 위한 단기사역자들도 많이 보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56년 목사 가정에서 출생한 그는 한국항공대학교 대학원에서 컴퓨터 통신을 전공하고 1986년 도미하여 실리콘밸리에서 '데이터링크 시스템사'를 세웠다. 또 '크리스찬 라이프'를 창간하고 르완다 전쟁 현장을 취재한 것을 계기로 사역에 뛰어들어 1996년에는 월드미션 프론티어를 설립했다. 현재 월드미션 프론티어는 미국, 한국, 아프리카 5개국에 등록된 국제 NGO로 성장했다. 풀러신학교를 졸업, 2001년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크리스찬 라이프 발행인, 월드미션 프론티어 국제대표, KAID 설립자 및 대표로 섬기고 있다. 김연란 사모와의 사이에는 딸 한나, 아들 창건을 두고 있다. 다음은 김평육 선교사와의 인터뷰 내용.
-20년 전 아프리카의 사역 환경과 지금은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 지난 사역들을 통해 얻은 은혜와 사역의 열매는 무엇입니까.
- 사역하면서 부딪힌 여러 가지 어려움 중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 지금까지의 사역 방향에서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까?
- 앞으로의 비전이 궁금합니다.
- 한인교회가 월드미션 프론티어의 아프리카 사역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