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최근 한국은 <세계일보>의 '정윤회 국정개입 감찰보고서' 보도로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정부 주요부처의 인사가 공적인 인사 시스템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윤회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는 보도는 가히 충격적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모든 파문의 배경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 실패'에서 비롯된다. 취임 초기부터 공식적인 인사 시스템 보다 비선라인을 중시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나 홀로 인사', '불통 인사', '밀봉 인사', '수첩 인사'라는 수식어가 늘 뒤따라 다녔다. 일련의 사태를 보면, '비정상의 정상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던 박근혜 대통령이 '비선라인'을 중시함으로써 스스로 오류에 빠진 형국이다.
이는 비단 박근혜 대통령만의 문제라고만 볼 수 없다. 어쩌면 공식적인 절차와 시스템보다 '비선라인'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 교회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재정 및 중요한 의사 결정은 담임 목회자나, 또는 몇몇 장로들에 의해 결정된다. 더구나 교회 내 직분자나 사역자를 결정할 때도 대개 담임 목회자의 의중에 따라 좌우 되는 경우가 부지기 수다.
예를 들어 교회 사역의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는 부목사나, 교육 전도사를 청빙 할 때 대개는 담임 목회자에 의해 단독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담임 목사와의 친분관계나 인맥이 부교역자 청빙에 결정적인 요소가 된다. 한국 교회의 이 같은 현상은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인사', '밀봉인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교회 내 부교역자 청빙이 담임 목회자의 독단적 의사 결정에 의해 이루어 질 경우 담임 목회자와 부교역자가 서로 협력하는 팀 사역자라기 보다는 상명하복의 상하관계가 된다. 이 때문에 담임 목사의 리더십은 교회 내에서 더욱 권위적이고 독단적으로 되며, 때로는 부교역자가 반발해 기존 교인을 데리고 교회를 세우는 등, 분열과 갈등으로 치 닿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부교역자가 담임 목사의 잘못을 대신 변명하거나 은폐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한다.
이러한 한국 교회와는 달리 미국 교회의 의사 결정과정은 민주적이고 공정한 과정을 거쳐 결정된다.
예를 들어 부교역자 청빙에 있어서도 한국 교회와는 달리 엄정하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청빙 된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몸담고 있는 미국 루터 교회의 부목사 청빙 절차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담임 목회자는 Ministry Leadership Group(MLG·7인의 위원으로 구성된 한국 교회의 당회에 해당하며, 당회와 다른 점은 3년 임기제라는 점이다)에 교회 내 부교역자가 왜 필요한가를 설명하고 의논한다. MLG 위원들이 교회 내 부교역자의 필요성에 공감한다면, 곧 이어 부교역자 청빙 위원회가 구성된다. 한국 교회와 다른 점은, 이 청빙 위원회 역시 교회 정식 멤버 누구에게나 오픈 된다는 사실이다. 담임 목회자는 이 청빙 위원회에 단지 조언자(advisor) 정도의 자격으로 참여한다.
청빙 위원회는 먼저 모든 교우들을 상대로 부교역자 청빙을 위한 설문조사를 시작한다. 설문조사는 대개 7가지 항목으로, 곧 책임감·예배 스타일·리더십 스타일·설교·가르침의 항목으로 나누어져 있다.
<책임감> 부분에서는 부목사가 담임 목회자와 교회 다른 교역자들, 그리고 교회 리더들과 어떻게 책임감을 갖고 협력하여 사역 할 수 있는지를 묻는 질문들로 구성된다. <예배 형식> 항목에서는 부교역자가 성만찬이 있는 전통 예배와 열린 예배 중 어느 부분을 선호하는 지와 선호하는 악기 사용 등 매우 구체적인 질문들로 구성된다. <리더십 스타일> 항목에서는 어떤 리더십 스타일이 교회에 적합한가를 질문한다. <설교 스타일> 항목에서는 교회력에 따른 설교인지, 주제 설교인지, 원고 중심의 설교인지 등을 묻는 항목들로 구성된다. 마지막으로 <가르침> 항목에서는 장년부와 청소년부 중 어느 부서의 성경 공부를 인도할 것인가 등의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빙 위원회는 이 설문 조사를 토대로 교회 사역에 부합한 부교역자의 자격 요건이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교회 모든 교우들로부터 목회자를 추천 받는다. 교회 정회원이면 누구나 청빙하고 싶은 목회자의 이름을 써낼 수 있다.
청빙 위원회는 추천 받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후보군을 추리고, 추천인과 동료 사역자들을 중심으로 검증 작업에 들어간다. 이러한 검증과정은 목회자의 자질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사역할 교회와의 비전과 달란트가 서로 부합하는지를 검토하는 과정이다.
최종적인 후보군이 압축되면 청빙 위원회는 MLG 위원들과 담임 목회자에게 보고하게 되고, 수 차례 회의와 논의를 거쳐 최종적인 부교역자를 결정하게 된다.
이 같은 부교역자 청빙 절차 때문에 때로는 담임 목회자 청빙에 못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부교역자 청빙으로 인한 교회 내 분란이나 폐해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청빙된 부교역자는 사실상 담임 목회자와 한 팀을 이루는 팀 사역자로 일하게 된다.
최근 한국 교회가 몇몇 목회자와 교회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 교인 수 감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리한 교회 건축으로 인해 문을 닫는 교회가 속출하고 있고, 초 호화로운 교회 건축으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교회 내 목회자와 장로들의 비리와 횡령에도 문제가 개선되기는커녕 도리어 숨기고 은폐하기에 급급하다. 이러한 사실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뒤에도 개선의 여지없이 오히려 변명하고 은폐함으로 한국 교회 전체가 사회적 지탄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 교회의 이러한 문제의 배경에는 담임 목회자와 교회 내 일부 장로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의사 결정과정에서 기인한다. 이 때문에 한국 교회 개혁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제도가 바로 교회 내 '공정하고 투명한 의사 결정 과정'과 '인사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다. 물론 여전히 합리적인 토론과 논의 보다 권위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를 고려 할 때 아직은 이러한 시스템이 여러 면에서 시기 상조임에는 틀림없다. 또한 이러한 민주적이고 투명한 절차가 자칫 목회자의 리더십에 대한 도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두려움이 목회자에게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위기 극복 방안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교회 내 독단적이고 폐쇄적인 의사 결정과정을 개선해 나가는 일이야 말로 위기 극복을 위한 중요한 첫 걸음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