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이동윤 기자] 대한성공회 대전교구는 지난 8월 30일 전국의회에서 주교 후보로 선출된 제7대 대전교구장 유낙준(모세) 주교의 성품식 및 승좌식을 오는 12월 6일 오전 대전 침례교신학대학 대강당에서 거행한다.
성품식의 주집전은 대한성공회 의장주교 김근상(바우로) 주교가 담당하며, 설교는 일본성공회 수좌주교인 우에마츠 마코토(植松誠) 홋카이도교구 주교가 담당한다.
교회의 전례적 전통으로 주교 안수를 위해서는 최소 3명의 주교가 필요하며, 주집전자인 김근상 의장주교와 부산교구장 박동신 주교, 그리고 대전교구와 자매결연관계인 일본성공회 토호쿠교구의 카토 히로미치(加藤博道) 주교가 공동 안수자로 참여한다.
일본성공회 동경교구장 오하타 주교, 요코하마교구장 미나베 주교, 큐슈교구장 무토 주교, 오키나와교구장 우에하라 주교 등과 호주성공회 뉴카슬교구 피터 스튜어트 주교, 홍콩성공회의 안드레 찬 주교가 참석한다. 영국에서는 가장 역사가 오랜 선교단체인 Us(전 USPG)의 세계선교 담당자인 하비브 나더(Habib Nader) 씨가 축하 사절로 방한한다. 국내에서는 초대 한국 관구장인 김성수 주교, 은퇴주교인 정철범 주교, 박경조 주교, 이대용 주교, 윤종모 주교, 권희연 주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교회 성직자와 신자 대표가 모인다.
■ 유낙준 주교, 화해사역 선언
특별히 이번 주교 성품식 및 승좌식에서는 영국성공회 코벤트리 대성당의 상징물인 못 십자가 모형을 대전교구 모든 성직자들에게 증정하는 예식이 함께 거행된다. 화해사역을 주교직의 중심 과제로 삼겠다는 신임 유낙준 주교의 각별한 다짐이 담긴 것으로, 이 화해사역은 세계성공회와 지난해 취임한 저스틴 웰비 캔터베리 대주교의 중점 사역이기도 하다.영국성공회의 화해사역은 영국 코벤트리 대성당이 2차 세계대전 후에 시작한 화해운동에서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
독일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코벤트리 대성당의 제단 잔해에 당시 주임신부는 타다만 지붕보로 목탄십자가(Charred Cross)를 만들어 세우고 "아버지 용서하소서(Father, forgive!)"라는 기도문을 걸었다. 주기도문의 일부이지만, 이 기도는 용서의 대상을 명시하지 않고 무조건적 용서를 상징하는 형제애적 화해사역의 강력한 원천이었다. 또 성당의 폐허에서 찾은 세 개의 못으로 만든 십자가(cross of nails)는 화해사역의 상징물이 됐다.
유낙준 주교는 성품식에서 이 못 십자가를 교구 성직자들에게 나누어 줌으로 대전교구의 성직자들이 교회 내적 화해와 더불어 우리 사회의 화해사역에 앞장서기로 다짐하는 새 출발을 선언한다.
■ 유낙준 주교의 삶과 사목
유낙준 주교는 1960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국악고등학교, 충남대학교를 졸업하고 대전 충남지역의 민주화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1994년에 성공회 대전교구 사제가 된 이래 20년간, 오롯이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서는 사목과 삶을 살았다.
그의 사역은 '대한성공회 나눔의 집'으로 알려진 성공회 사회선교의 모델을 제시한 삶이었고, 한국 사회복지 모델로 떠오른 사역이었다. 1987년 노동자와 시민이 주체가 되어 민주주의가 발전하며 경제적 풍요도 달성됐지만, 가난한 이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90년대 초에 성공회대학교 성직과정을 마친 새내기 성공회 사제들이 나눔의 집 운동을 시작했다.
서울의 상계동, 봉천동에서, 대전과 충북, 전라북도에서 나눔의 집을 세우고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받은 현장에서 교회의 새로운 사목을 시작한 성공회 사제들은 '나눔의 집 신부'로 불렸다. 그는 대전의 '나눔의 집 신부'였다.
가난한 철길옆 동네인 대전 동구 성남동에서 유낙준 사제는 처음 푸드뱅크라는 사업을 시작했다. 친구에게 빌린 차로 가난한 이들에게 음식을 실어 나른 이 일은 후에 정부가 푸드뱅크로 전국화시킨 단초가 됐다.
전국적인 사업으로 정착한 일 중 성공회 나눔의 집 신부들의 사목에서 비롯된 사례가 많다. 가난한 여성들에게 간병인 교육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돌볼 필요가 있는 노인 문제도 함께 해결하는 사업을 처음 시작한 것도 유낙준 사제였다.
거리 청소년들에게 직접 다가서는 청소년 아웃리치 서비스 팝콘차량을 고안, 대전 은행동 일대 가출 청소년들에게 일상필수품인 속옷, 생리대, 라면 등을 제공하며 접촉한 사례, 해변가 거리 상담과 청소년 일탈 예방 사업도 유신부가 처음 시도하여 지금은 정부 사업이 되었고, 밤새 일한 청소년들이 아침에 머무를 곳을 제공하여 그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청소년 드랍인 센터>도 그의 작품(?)이다.
학교 밖 학교인 대안학교공동체 '룩스 문디(세상의 빛)'를 설립하여 2년간 운영하여, 이 사례를 바탕으로 정부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센터 설립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유낙준 사제는 <룩스 문디>의 경험을 통해 공립형 대안학교인 가정형 위(Wee)센터를 만들었고 교육부가 이를 전국에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유신부가 만든 남학생 가정형 위센터(경청과 환대의 집), 여학생 가정형 위센터(경청과 환대 학교)는 학교 적응이 어려운 학생 15~20명 규모로 6개월간 함께 지내며 자기변화 도출을 지향하는 생활형 학교이다.
학생들이 길을 걸으면서 자신의 내면 문제를 풀어내는 걷기 학교로 시작한 <로드스쿨>은 일탈 청소년들을 변화로 이끄는 몇 안되는 대안으로 떠올라 최근에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소년원까지 오도록 방임되고 학대받은 청소년들이 길을 걸으며 참 자신과 만나고 새로운 삶의 희망을 가지게 되기까지, 함께 호흡하며 동행한 유낙준 사제의 애정과 열정이 있기에 가능했다.
나눔의 집은 하나의 모습이 아니라 새로운 교회, 새로운 사목의 다른 이름이다. 유낙준 사제는 나눔의 집 사역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나눔의 집 분위기가 참으로 신비로워요. 신비한 공동체기에 일반 사회복지기관과 다름을 항상 느낍니다. 그 이유는 무얼까? 아마도 나눔의 집 정신 때문일 거예요. '주고 빼앗지 않습니다', '섬기고 지배하지 않습니다', '도와주고 부수지 않습니다', 이런 삶의 원칙으로 살아가는 식구들의 향기나는 삶으로 인해 신비가 이루어지고 있지요.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우리 시대의 표상에 대하여 저항하는 삶이 나눔의 집의 삶입니다. 나는 약한 존재이고, 그렇기에 당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삶을 삽니다. 비인간적인 세상에서 인간적인 향내가 나는 곳이기에 나눔의 집은 신비로운 집, 거룩한 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