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최후의 유혹!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목회·신학
칼럼
편집부 기자

1. 말씀 : 마 27:27-44

(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40) 이르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이르되
(42)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2. 묵상

유다는 예수를 대제사장에게 넘겨주고, 대제사장은 빌라도에게 넘겨준다.
빌라도는 예수가 무죄인 것을 확신했으나 무리들에게 순응하여 십자가 죽음에 넘겨준다.
군병들은 예수를 넘겨받아 십자가를 지게 하고 골고다 형장으로 올라간다.

당시 십자가를 지는 것은 자기가 매달려 죽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십자가형을 받은 죄수는 십자가의 가로 나무를 지고 형장에 오른다.
가로 나무의 무게는 대략 125파운드(56kg) 정도가 된다.
밤새 심문당하시고 채찍으로 피가 범벅이 되신 주님은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신다.
그러자 군병들은 구레네 사람 시몬으로 하여금 대신 지게 한다(32절).

예수는 십자가를 지고 마침내 '골고다'(해골의 곳)에 이르렀다.
에스겔 선지자는 말씀과 성령의 역사가 중단된 하나님의 백성을 마른 뼈, 해골로 묘사했다(겔 37:1).
예수 그리스도는 영적으로 죽은 해골과 같은 우리를 위해 해골 골짜기에서 못박히셨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 곧 우리를 영적으로 살리기 위함이었다.

군병들은 십자가 죄수들에게 마취제로 쓰는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한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것을 거부하시고, 온전한 정신으로 십자가에 못박히는 고통을 감내하신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군병들은 예수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진다.
십자가 아래에서 자기 몫을 챙기는 군병들...
우리 역시 십자가 은혜를 고백하면서도 얼마나 자기 몫을 챙기는지...
옷을 나눈 군병들은 십자가 아래에서 거리낌 없이 탐욕을 채우는 우리들의 슬픈 초상이다.

예수는 두 강도 사이에서 십자가에 달려계신다.
이 때 두 강도들은 예수를 향해 머리를 흔들며 모욕하며 말한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40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도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조롱하는 데 합세한다.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42절).
"그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했으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게 하실 것이다"(43절).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향한 사람들의 조롱은 이것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 내려오라"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는 예수께서 공생애 시작 직전 광야에서 마귀에게 받으신 시험이다(마 4:1-11).
마귀는 예수로 하여금 기적, 종교적 신비, 세상 영광에 참여하라고 유혹하였다.
오늘도 마귀에게 속는 자는 이것들이 무슨 유혹이냐고 말한다.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행복에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들을 다 거절하셨다.

주님은 그 유혹을 물리치셨다.
그리고 말씀으로 사는 존재, 범사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 오직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인간의 참된 삶이라고 하셨다.
그러자 마귀는 떠나갔는데, '얼마 동안' 떠나갔다(눅 4:13).
유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인(sign)이다.

예수를 향한 유혹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재현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굴복하셨다.
기도로 유혹을 이기셨다. 그러나 최후의 유혹은 아직 남아있었다.
그것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향한 유혹이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유혹하는 자는 자신의 죄로 십자가에 달린 죄수들이다.
유혹하는 자는 종교 권력을 향유하는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이다.
그런데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유혹하는 그들 중에 우리가 있다.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려하는 자는 십자가에서 저주받기에 합당하다(갈 3:10).

우리가 바로 그런 자였다. 우리 모두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저주를 받기에 합당한 자이다.
그런데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외면하고 조롱하고 구원해보라고 외쳤다.
나 또한 '갈 2:20'의 십자가 죽음의 진리를 전하면서도 내 몫을 챙기며,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쓰는 자였다.

십자가의 주님을 멸시하는 종교지도자가 바로 우리들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멸시와 천대, 능욕을 부끄러워하고, 십자가에 머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혹자는 말하기를 목사는 성도들이 볼 때 보란듯하고, 사역도 잘되어야 하고, 가정도 행복해야 하고, 자식들도 성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성도들도 그렇게 '따라서' 복을 받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오호라... 이 땅에 십자가를 멸시하는 해괴망측한 목사관이 팽배하다.
진리와 무관하고,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무리들이 성도들을 미혹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최후의 유혹에서 승리하셨다.
'그는 끝까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다!'

그리스의 톨스토이로 불리는 '니코스 카잔차스키'는 '예수, 최후의 유혹'을 저술하였다.
그는 '만일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내려왔다면...'이라는 가정의 역설을 통해 진리를 설파한다.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하나님은 십자가 고난으로 만족하신다'는 천사의 속삭임을 듣는다.
이는 유혹이다.
그리고 죽음을 당하지 않으신 채 십자가에 내려온다.
그는 한 여인(마리아)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고 평범하게 살아간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이 원하고 바라는 '그리스도의 길'을 간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십자가 죽음을 면한 것으로 인해, 사람들은 구원의 여망이 사라진다.
그의 노년에 죄에서 구원받을 길이 무망한 영혼들의 고통과 절규를 듣는다.
그리고 다시 십자가로 올라가 죽임을 당한다.
예수께서 만일 십자가에서 내려오셨다면...
그 자신은 한동안 행복하게 살았을지 모르나 인류를 구원하여 자기 백성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뜻은 좌절되었음이 분명하다.

*******
나는 매일 최후의 유혹에 맞닥뜨린다.
남을 구원하였으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는가!
진리를 알고 영생을 살며, 영생을 전하나 현실의 문제들은 산처럼 거대하다.
나는 수시로 옷이 벗겨지고 수치를 무릅쓰고 십자가를 지고 허덕인다.
그리고 나는 십자가에 못박혀 있다.

육신의 사람들에게서 참소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굳이 그렇게 살 이유가 있는가!
보라,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람들이 위세를 떨치며 호령하지 않는가!
'예수가 십자가를 졌으면 되지, 그가 심판을 받았으면 되는 것이지...
우리가 다시 십자가를 지며, 다시 심판받을 이유가 무엇인가!'
번영신앙을 좇는 무리들은 매일 십자가와 무덤에서 영생을 사는 이들을 멸시한다.

더 무서운 것은 내 속의 육신의 참소이다.
구질구질하게 살지 말고 빚을 내서라도 체면을 지키며 살아라.
보란듯하게 강남에서 살았던 옛 사람의 족적들이 나를 주장한다.
십자가에서 내려오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제는 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인 것을...
그래서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는다! 십자가에서 견딘다!
최후의 유혹을 견딘다.

오늘 아침, 토막 신문기사를 읽었다.
1985년 뉴욕 타임스스퀘어 전광판에 한 줄의 글귀가 떴다.
'Protect me from what I want'(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날 지켜줘)
욕망과 소비로 점철된 현대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문구이다.
바삐 지나가던 뉴요커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르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봤다.

네가 원하는 것을 하라!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
'Do whatever you want!'
이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내려오라'는 최후의 유혹이다.
하지만 그것과 대치하며 싸우는 이들, 우리의 영혼은 여전히 하나님을 갈망한다.
나는 내가 오늘도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싸운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승리하는 것, 보호받는 것,
이것은 오직 위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3. 기도

아버지...
나는 십자가에 달린 강도들과 같이 예수님을 조롱하던 자였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처럼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유혹하던 자였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죽기에만 합당한 데, 죽음에서 건져달라고 외치던 자였습니다.
심지어 십자가 죽음의 진리를 전하면서도, 나의 몫을 챙기는 가증스런 자였습니다.
십자가를 멸시한 채 보란 듯한 목사, 보란 듯한 인생을 추구한 유혹자였습니다.

오, 주님, 오늘 제가 다시 십자가에 못박힙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저는 여전히 유혹받는 자입니다.
사람들은 보란듯하지 않는 나를 참소하고 비방합니다.
목사가 제 앞가림을 보란듯하게 해야지... 라며 비난합니다.
남은 구원했으되 다른 사람은 구원하지 못하는 자라고 참소합니다.
오, 주님... 저들의 소리에 반응하는 육신의 소욕이 반응합니다.

오, 주님...
다른 이들의 소리보다 내 육신의 생각이 더 무섭습니다.
고단하고 구질구질하고 가난한 삶을 벗어던지라고 합니다.
빚을 내서라도 체면을 차리고, 보란듯하게 살라고 합니다.
죄악의 현란한 세상, 육체의 소욕을 즐기라고 합니다.

오, 주님... 그러나 내 안의 주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과 연합된 나도 내려오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십자가에 못박힌 채 견디는 날 되게 하소서.
매일 매 순간 그리하게 하소서! 십자가만이 나의 자랑입니다.
멸시, 천대, 능욕의 십자가는 주님의 지혜와 능력입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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