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삼성그룹이 이번에 사상 최대규모의 계열사 매각에 나선 것은 그룹을 '이재용의 삼성'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작업에 다시 속도를 내려는 의도로 해석되고 있다.
최근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무산으로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사업재편이 암초에 부딪혔지만 큰 그림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특히 이번 한화그룹과의 '빅딜'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접 지휘한 것으로 알려져, 삼성을 전자와 금융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이 부회장의 구상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26일 삼성은 삼성테크윈, 삼성탈레스, 삼성종합화학, 삼성토탈 등을 한화그룹에 넘긴다고 발표했다. 삼성그룹이 주요 계열사를 매각하는 것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삼성자동차를 프랑스 르노그룹에 넘긴 이후 처음이다.
이번 계열사 매각은 확장 일변도였던 삼성의 사업구조가 축소로 방향을 틀었다는 의미가 있다.
"칩(Chip)부터 쉽(Ship)까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양한 사업부문에 진출했던 지금까지와는 달리 비주력 사업 정리에 나서겠다는 의도가 확인됐다.
재계는 특히 흩어져있던 그룹의 역량을 이재용 부회장이 선택한 사업에 집중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삼성의 의지가 표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재용식 사업재편에 속도를 내왔다.
제일모직의 패션 사업은 삼성에버랜드에 넘기고, 소재산업은 삼성SDI와 합병했다. 이후 삼성에버랜드는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바꿨고, 건물관리사업을 삼성에스원에 양도했다. 급식사업은 삼성웰스토리로 분리하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삼성SNS는 삼성SDS와 합병했고, 삼성코닝정밀소재는 미국 코닝사에 팔았다.
올해 들어서는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의 합병을 단행하고, 삼성SDS와 제일모직은 상장을 결정했다.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됐지만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결정도 이어졌다.
재계는 삼성의 숨가쁜 행보가 '이재용의 삼성'이라는 하나의 큰 목표 아래 진행되는 시나리오로 해석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을 승계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를 단순화하고, 그가 선택한 사업인 전자와 금융, 건설 중심으로 사업부문을 재편한다는 것이다.
중화학부문의 경우 당초 계열사간 추가 합병을 통해 그룹 포트폴리오에 남기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수익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지면서 철수로 최종 결론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을 합친 뒤 삼성토탈까지 합병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를 위해 삼성토탈의 합작사인 프랑스 토탈이 보유한 지분 50% 인수를 타진했지만 토탈 측이 이를 거부했다는 후문이다.
삼성은 삼성종합화학과 석유화학간의 합병만으로는 수익성 확보가 어렵다고 보고 아예 사업을 접는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방위사업부문 역시 비주력사업으로 분류돼 매각이 결정됐다.
삼성테크윈은 지난 2008년 카메라사업을 떼내 삼성전자에 넘겼고, 반도체부품도 올해 초 별도 법인을 설립하는 방식으로 정리하는 등 몸을 가볍게하는 작업을 진행해 왔다.
이들 중화학·방위산업 계열사들의 경우 그룹 지배구조와 무관하다는 점도 매각을 결정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삼성은 현재 제일모직을 정점에 두고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이 양대 지주회사 형태로 떠받치는 새로운 출자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으로 파악된다.
기존의 순환출자구조를 단순화해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수월하게 만든다는 것인데, 중화학과 방위산업 계열사들은 지분구조상 출자구조에 포함되지 않은 회사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