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곤 칼럼] 시작보다는 마무리가 즐거워야 한다

▲김칠곤 목사(미국 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기독일보] 인간이 살아가면서 뭔가에 대해 좋아하는 것도 다양하지만 싫어하는 것도 그 이상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살면서 본능적으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부정적인 요인들이 있다. 그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가 급변화 하는 것을 대부분 싫어하고 자신이 해 보지 아니한 일을 누군가 하라고 했을 때 그것을 새로이 시작하는 것에 대해 쉽게 짜증을 낸다.

이러한 현상은 가정에서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은 서로가 배우자에게 기대하는 것들이 있다. 남편은 아내를 통해 늘 편안하기를 바라고 아내는 남편을 통해 뭔가 삶에 변화를 바라는 것이 일반적인 가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의 변화와 새로운 창조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은 이것으로 볼 때 남편보다는 아내라고 볼 수 있다. 가정에서 아내는 간혹 오래된 가구를 새롭게 바꾸려고 하고 집안을 늘 새롭게 꾸미려고 한다. 그리고 때로는 가구를 방 안에서 이리저리 옮겨 방안의 구조에 변화를 주려고 한다. 그런데 남편은 결혼하기 이전에 아내를 대하는 모습과 결혼식을 한 이후에 가정을 꾸려가면서 새로운 변화 보다는 그냥그냥 살아가려고 하는 안주의 모습을 극심하게 나타낸다.

그래서 아내가 집안에서 가구를 좀 옮기려고 하면 "그냥그냥 두면 될 것이지 뭐 이지저리 옮기려고 하는 거야!", " 귀찮은 일을 뭐하러 사서 하려고 해"라며 아내에게 투덜거린다. 그리고 아내가 남편에게 아이들하고 가까운 곳에 함께 산행을 하자고 하면 남편은 나들이 하는 것을 귀찮아한다. "피곤한데 뭐하러 산을 가자고 해", "비싼 기름값 들여 거기까지 왜 가려고", "정이나 그러면 당신하고 애들하고 갔다 와", "난 집에서 축구나 볼거야"라고 너무나 쉽게 아내에게 말을 한다.

삶에 변화와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행복을 추구하려고 기대하며 살아가는 아내는 이렇게 말을 하는 남편에게 실망을 하게 된다. 결혼하기 이전에 남편은 분명 이 다음에 결혼을 하면 "당신을 정말로 행복하게 해 줄 거야", "가끔 멋진 곳에 여행도 같이 갈거고" 하지만, 살면서 그런 생각들이 지켜지지 아니하고, 그러한 꿈을 실행하며 살아가지 못했기에 나이가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것은 먼 나라의 동화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삶의 행복의 시작은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작은 일에서 부터 실천하는 것이 값진 것이다. 생각하는 것을 삶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작이 중요하다. 그래서 속담에서 "시작이 반이다"라고 한다. 이 말을 하는 것은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일을 마치는 데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한 해가 거의 다가는 것을 보면 지난날 수많은 것들을 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올해 무엇을 했는지'에 대해 뒤 돌아 본다. 그리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것처럼' 느낀다. 그러한 아쉬움과 함께 새해가 시작되면 뭔가를 새로이 시작하려고 한다. 그런데 그 생각이 며칠도 안 되어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주어진 말이 '작심삼일(作心三日)'이라고 한다. 또한 시작은 거창하게 했어도 그것이 마무리가 안 되는 것을 속담으로 용두사미(龍頭蛇尾)라고 한다. 이 말의 뜻은 용의 머리에 뱀의 꼬리는 시작은 거창했지만 결국 보잘 것 없이 우습게 끝났음을 말한다.

인간의 삶에 아름다운 미(美)는 꿈을 가지는 것이며 그 꿈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며 그것을 기쁨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끝까지 목적하는 것을 위해 포기하지 아니하고 기쁨으로 마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삶의 과정에 항상 '위기', '유혹', '질병'과 '고통'이 반복해서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세상의 축복은 많은 것을 가지고 인간들이 살아가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그 속에서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이러한 축복의 원리를 모르고 살아간다면 삶에 행복의 지수를 소유에만 두려고 하기에 가정의 부부애, 직장, 자녀들의 진로와 사회생활에 늘 불만족스럽고 아름다운 관계가 아니라 불편한 관계가 되어 종국에는 서로가 등을 지게 된다.

그러나 진정한 삶에 행복의 지수는 주어진 삶을 누리고 사랑하며 서로를 소중하게 아껴주는 것이다. 이러한 삶은 소유, 지위나 성적이 아니라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 삶의 진정한 승리의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그 드라마의 주연은 마라톤 경기에서 승리를 한 선수가 아니라 마지막까지 목적지에 도착한 탄자니아의 존 스티븐 아크와리 선수였다. 그는 수많은 관중들이 떠나고 대부분 선수들이 골인 지점에 들어온 한 시간 이후에 다리에 붕대를 감고 붉은 피를 흘리면서 고통을 참고 비틀 거리면서 골인지점에 도착하게 된다. 그때 경기장에 있던 수 천명의 관객들은 모두가 일어서서 그 선수에게 박수를 보낸다.

한 기자는 한 걸음 한 걸음 고통을 이겨내며 골인 지점을 향해 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하며 달리는 선수를 보고 이렇게 말을 했다.

"오늘 우리는 인간 정신의 가장 순수한 것을 한 아프리카의 젊은 마라토너를 보았다. 스포츠란 관연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한 행동이었다. 스포츠는 성숙한 인간이 하는 경기라는 스포츠의 수준을 한 단계 높여 주었고, 용기라는 말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한 행동이었다. 이 모든 영예를 탄자니아의 존 스티븐 아크와리 선수에게 바친다."

수많은 주목을 그는 그 때 받고 그가 경기를 마친 후에 한 기자가 "왜 경기를 포기 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마쳤는가?"에 대해 질문을 받았을 때 "당신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내 조국은 나에게 레이스에 출전만 하라고 7,000마일이나 떨어진 이곳까지 보낸 것이 아니라 레이스를 끝내고 오라고 나를 보낸 것"이라며 기자들을 꾸짖듯이 그는 대답을 했다. 그의 마라톤 완주를 보면 마지막 까지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유종지미'(有終之美)를 볼 수 있다.

인간은 개개인에게 삶을 목적을 주기 위해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완성하고 서로가 지탱하며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 가정(家庭)이라는 터와 제도를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다. 이것의 시작은 남녀가 둘이 만나 하나가 되는 결혼을 통해 부부애(夫婦愛)를 갖게 하고 그 속에서 자녀를 낳아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하나님이 예비하셔서 만드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가정은 거룩한 곳이며, 하나님이 주신 축복 가운데 마라톤 경주를 하는 것이다. 그 경기에는 혼자만 뛰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구성원들이 같이 가는 것이기에 삶의 '기쁨', '아픔', '즐거움' 과 '고통'을 같이 나누고 목적하는 지점 까지 함께 가야 한다. 거기에는 1등이라는 목표가 아니라 최선을 달리고 끝까지 경주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가정은 하나님 안에 하나가 되어야 하고 모두가 나에게도 소중한 구성원이지만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창조한 소중한 존재들이기에 감사와 기쁨으로 순간순간 발걸음을 함께 움직이며 마지막 까지 행복한 경주를 마치는 것이다.

글ㅣ크로스로드 한인교회 김칠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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