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일보] 신설된 인사혁신처장에 삼성전자 인사팀장을 지낸 이근면 전 삼성광통신 경영고문이 내정되면서 관가가 상당히 술렁이고 있다. 공무원들의 인사를 담당하는 사령탑을 민간, 특히 글로벌 기업인 삼성 출신이 맡게되면서 관가 인사기조에 일대 변화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일각에서는 혁신에 대한 상당한 기대를 나타내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민간식 밀어붙이기가 이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19일 관가 안팎에 따르면 이번 인사가 인사혁신처의 임무인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을 달성하기 위한 묘수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관료 출신 인사에게 공무원 사회의 혁신업무를 맡겼다간 관료주의적이고 온정주의적 접근 탓에 박근혜 대통령이 강조하는 '혁신'을 성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하에 삼성 출신인사를 전격 발탁했다는 분석이다.
과거 국민의정부 시절 김광웅 서울대 교수가 초대 중앙인사위원장을 맡긴 했지만 이번처럼 민간기업 인사 담당자가 공직개혁을 주도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끈다. 이 처장은 국내에서 가장 개혁적인 인사시스템으로 평가되는 삼성의 인사혁신을 주도해왔다. 이 처장은 2000년대 들어 삼성 내 정보기술 분야 연구원들의 직급체계를 선임·책임·수석으로 바꿨고 연공서열형 평가 대신 미국식 평가제도를 도입했다. 지금의 삼성그룹 인사체계는 이 처장의 작품이란 평도 있다.
이에 따라 관가에서는 이 처장이 삼성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성과주의 평가, 학벌 타파, 경쟁시스템 도입 등으로 공직사회를 개혁할 것이란 기대감이 확산되고 있다. 아울러 과거 삼성에 새로운 인사제도를 도입할 때처럼 공무원연금 개혁을 추진하는데도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안행부 출신 한 공무원은 "공무원 사회에는 인사혁신처 개편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와서 직원들 사이에 큰 동요는 없다"면서 "처장이 민간에서 와서 혁신 분위기가 강해질 것이란 내부 목소리가 많다. 변화에 대한 기대감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부처의 국장급 인사도 "아직도 곳곳에 남아있는, 틀에 박힌 듯한 관료사회의 무사안일식 관행과 인사행태 등을 이번에 혁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신임 처장에 대한 관심이 높은 편이다"라는 입장을 나타냈다.
그러나 우려도 만만찮다. 민간 전문가 기용이 그간 기대만큼의 효과를 보지 못했던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민간 출신인사들이 관료사회의 특성을 충분히 감안치 않다보니 업무 동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내부 반발까지 야기하는 등 부작용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당시 중앙인사위원장에 학자 출신 인사들을 기용해봤지만 현실인식 부족 등 이유로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이외에도 그간 정부 각 부처에는 민간 인사들이 다수 투입됐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자리를 떠난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부처의 한 직원은 "민간에서 훌륭한 업적을 거뒀다는 점에서 신임 인사혁신처장에 대한 기대가 있으나 민간과 공무원 조직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며 "이런 점을 간과하고 밀어붙이기식 혁신을 추진하다간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중앙부처 간부는 "인사혁신처장이란 자리는 임기가 길어야 2~3년 정도 밖에 안될텐데 그 짧은 시간에 공무원 조직의 특성을 파악해서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며 "일반적으로 민간과 공무원 조직은 성격이 다른데 삼성에서의 인사문화를 그대로 심을 수도 없는 일이다. 공무원 조직의 특성을 파악해서 삼성의 인사 장점을 여기에 결합해야 할텐데 그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우려했다.
인사혁신처장이 차관급이라는 점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인사처장이 관할해야 하는 소속 기관인 중앙공무원연수원과 소청심사위원회는 물론 지난 8월 신설된 청와대 인사수석도 같은 차관급이어서 자칫 이해충돌 등으로 업무수행에 차질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안전행정부 산하 인사 기능을 기계적으로 국무총리실 산하로 바꾼 데 그쳐 별 차이가 없다는 비판도 있다. 소속 공무원들 사이에선 민간기업식 개혁에 대한 거부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