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주교회의 김희중 신임 의장 "직분보다 조정자 역할이 소임"

교육·학술·종교
윤근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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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선출 후 기자간담회
천주교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신임 의장으로 선출된 김희중 대주교가 13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 내 천주교 서울대교구청 회의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뉴시스

[기독일보] "저는 심부름꾼입니다. 의장이라는 직분보다는 코디네이터, 조정자 역할이 저의 소임입니다."

얼마전 천주교주교회의 의장으로 선출된 김희중(77) 대주교는 지난 3일 "주교님들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최대 공통분모를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공감대를 확산시켜 함께하고 싶다"며 "주교님들이 편하게 사목하도록 해주는 게 저의 소임이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이어 정치인들도 이러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선거 전에 90도로 인사했던 마음으로 4년간 봉사한다면 4년 이후에는 선거 운동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장은 이날 오전 한·일 주교교류모임에 참석했다. 한·일 주교 교류모임의 성과에 대해 그는 "사람은 만남을 통해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나 책을 통해 보거나 스크린으로 만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 "개인 간, 국가 간 문제는 자주 만나서 대화하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공감대도 형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날 한국과 일본의 주교 20여 명이 경기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집을 방문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만났다. 김 의장은 "일본 주교들이 그동안 간접적으로 들었던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기회였다"며 "직접 할머니의 증언을 듣고 그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사진 자료 등을 봤기 때문에 더 공감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4년부터 교회 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종교 간 갈등의 해결은 "원칙이라기보다는 상식선에서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으면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종교 간 대화를 함에 있어 우리는 다른 종교라고 하지 않고 이웃종교라고 한다. 이웃종교가 가진 신앙이나 가치를 설령 수용할 수 없어도 존중하는 마음은 있어야 한다. 인정과 존중은 다르다. 교리는 다를 수 있지만, 다름을 인정하자. 다름이 틀린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의구현사제단 문제는 "그들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 추구하는 목표는 같다"고 했다. "광주에서 서울 갈 때 기차나 버스, 비행기를 탈 수 있듯이 표현 방식은 다양하다. 같은 사안에서도 어떤 사람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또 어떤 사람은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천주교회가 가야 할 방향은 "주교회의 차원보다 나의 바람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씀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를 위해 한국교회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구체적으로 실천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교회는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장애인, 이주민, 무의탁 노인 등 사회적 소외계층과 함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각 교구에서 사회복지 시설을 운영하고 있지만,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성당이라는 공간에 들어와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고 함께 신앙의 기쁨과 보람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개인적인 소망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들었다.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있으면 안 된다. 남북 화해와 평화공존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경제뿐만 아니라 민족의 동질성 회복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인 방안으로 잦은 만남이 필요하다"고 했다. "원칙을 정해 놓고 만나면 안 된다. 정부는 원칙을 지켜야 하지만, 민간인의 만남은 정부에서 폭넓게 여유 있게 지켜봐 주고 필요하면 도와주고 해야 한다"고 짚었다. 러면서 독일 통일을 예로 들었다. "흡수 통일은 감당할 수 없다. 이념적, 사상적, 경제적으로도 무리다. 민족 동질성의 점진적 회복을 위해서는, 그래도 우리가 힘이 더 있으니까 나눔을 확산하는 게 어떨까 한다. '퍼준다'는 표현은 슬프다. 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 의장는 탈북자 단체들의 삐라 살포는 반대했다. 김 재주교는 "큰 틀에서 봤으면 좋겠다.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택할 때도 있다. 삐라를 보내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이며 일시적인 자극으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탈북자들은 그들의 실상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하지만 과연 삐라로 그들이 변화될까? 오히려 남북관계가 경색된다면 우리가 얻을 게 뭐냐.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세월호 사태 해결과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이 언급한 대로 고통 앞에서는 좌우가 없다. 고통 그 자체에 함께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가족의 가장 큰 고통은 진상이 안 밝혀진 것이다. 진상이 밝혀지도록 함께 하겠다. 처벌받고 안 받고는 두 번째 문제다. 그런 일이 우리 사회에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그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우리 사회가 편 가르기 하는 데 한발 물러섰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도 했다. "서로를 형제, 자매로 받아들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어색한 관계가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천주교에서도 보수다, 진보다 나누는데 진보 쪽의 순도 99.9% 순금과 보수 쪽의 순도 99.9% 순금은 다르지 않다. 누구 손에 있으나 순금은 순금이다. 진리도 어느 편에 있든 진리다. 우리는 복음의 정신으로 진리와 정의를 선택한다"고 말했다.

김희중 신임 주교회의 의장은 1975년 사제 서품을 시작으로 광주대교구 보좌주교, 광주대교구장을 거쳤다.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 위원장, 아시아주교회의연합회(FABC)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 위원,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위원,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 위원, 주교회의 교리주교위원회 위원장, 주교회의 민족화해주교특별위원회 위원이다.

주교회의는 지난 달 30일 제주시 한림읍 엠마오 연수원에서 추계 정기총회를 열고 김 의장을 비롯해 부의장에 장봉훈 주교, 서기에 최기산 주교, 상임위원에 유흥식 주교와 염수정 추기경을 임명했다.

한국 천주교의 최고 의사 결정기구인 주교회의 정기총회는 국내 16개 교구의 주교가 모여 전국 차원의 사목 임무를 논의하는 자리다. 매년 봄, 가을 2회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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