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묵상] '저들이 의논한 결과' 악한 일이 하나님의 뜻 이룬다?

목회·신학
오피니언·칼럼
편집부 기자
마태복음 27장 1~10절

1. 말씀 : 마 27:1-10

(1) 새벽에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함께 의논하고 (2) 결박하여 끌고 가서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라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2. 묵상

"아버지,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 저는 벌레와 같나이다. 심히 두렵고 떨리나이다. 육신의 생각, 악한 생각에서 나온 일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말씀 앞에 전율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짐을 보고 얼마나 태만하며 자만하던 자인지요! 종을 불쌍히 여기소서. 범사에 복종하며 사는 것만이 저의 본분임을 알게 하소서. 아멘"

가룟 유다가 은 삼십을 받고 예수를 대제사장에게 넘겨주었다(파라디도미).
대제사장과 온 공회는 예수를 신성 모독죄로 정죄하고 사형을 언도한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신성모독죄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하는 극악한 죄이다.
즉, 예수를 돌로 쳐 처형시킬 권리는 유대 당국에 있었다(행 7:54 이하).
그러나 예수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하지 않고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진다.
이는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의논한 결과'이다(1절).

이 때 예수를 그들에게 판 유다가 나타난다(3절).
유다는 예수가 유죄판결을 받은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이 점에서 성경 연구자들은 유다의 배반이 은 삼십을 탐해서가 아니라 정치적 동기라고 말한다.
즉, 예수가 신적인 능력으로 현세적 왕이 되기를 고대했다는 것이다(26:47-56 묵상참조).

유다는 대제사장에게 은 삼십을 돌려준다.
그러면서 자기가 죄없는 자의 피를 팔아넘기는 죄를 지었다고 자백한다.
죄에 대한 자백과 회개는 1차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행해져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백함이 없이 사람 앞에서 자백하는 것은 무참한 결과를 가져온다.
유다의 자백을 들은 대제사장은 "그것은 너희 문제다"라고 하며 냉담하게 반응한다.
유다의 참회가 예수를 죽이기로 작정한 그들의 마성을 바꾸지 못한다.
반전의 길이 무망한 유다는 은화를 성전에 던지고 밖에 나가 자살한다.

대제사장은 유다가 성전 안에 던진 은화를 즉시 거두어들인다.
피값을 성전에 두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이유에서이다.
예수를 죽이면서도 경건의 모양에 집착하는 이들이 실로 가증스럽다.
이들은 이 돈의 용처를 두고 서로 의논한다.
'의논한 결과,'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기로 한다.
참으로 나그네를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진데, 이들은 외식의 극치에 이른다.

예수를 돌로 쳐 죽이지 않고 빌라도에게 넘긴 결정은 사뭇 진지하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의 '악한 결정'은 곧 하나님의 뜻이다.
가룟 유다가 예수를, 대제사장이 예수를, 빌라도가 예수를 넘겨주어 십자가에 못박는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내어주신 것이다(행 2:23).
이들의 악행은 하나님의 권능과 뜻을 이루려고 하나님이 예정하신 일을 성취한다(행 4:28).

그래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는 그 뜻에 죽음으로써 복종하신 것이다(빌 2:8).

한편 대제사장들이 피값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산 결정 역시 하나님의 뜻이다.
곧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들이 은 삼십을 가지고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10절).
하나님은 이렇게 악한 자의 결정 또는 악한 일을 통해서도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

그래서 한 사건에 인간의 악행과 하나님의 뜻이 공존한다.
이렇게 인간의 악행이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룬다면 그 악행은 면책되는가?
결코 아니다! 인간의 악행이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룬다고 해서 '정죄 당함'을 면할 수 없다(롬 3:5-8).

유다의 죽음이 이를 확증한다.
물론 유다의 배반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뜻을 성취하였고 아들의 복종을 완성하였다.
그런데 그로 인해 유다가 면책된다면 죄의 책임은 하나님에게 있고 구속의 공로는 유다에게 돌아간다.
결코 아니다! 유다의 악행은 즉각적인 심판을 받는다.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 26:24).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행동은 서로 구별되어야 마땅하다.
종교 개혁자 '존 칼빈'은 이 문제를 매우 진지하게 다루었다(기독교 강요 1권).
선악 간에 인간의 행동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은 각자의 몫이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너의 문제다"(4절, 쉬운성경).
유다를 향해 일갈한 대제사장의 말, 저들의 말은 옳다(마 23:3).
우리의 악행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어도, 우리의 악행은 심판에만 합당하다.

예컨대 어떤 아들에게 병든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를 병으로 데려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는 감추어져 있다.
그런데 선한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치료한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으나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에 복종한다.
반면 나쁜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짐작으로 치료를 방치한다.
그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어겼다.
결과적으로 보면 선한 아들이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행동했고, 나쁜 아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동했다.하지만 선한 아들은 계명을 따랐고, 나쁜 아들은 악행한 자이다.
하나님이 묻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계명에 복종하고 있느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
그런데 하나님과 연합되어 온전히 복종하는 자의 행동만이 선하다.
하나님과 분리된 채 행해지는 행동은 비록 선한 행동이라도 '자기 의'를 이루는 것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

대제사장들이 "의논한 결과"는 자기들이 볼 때 선할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악하다.
그런데 이들의 악한 결정과 악한 행동은 결국 하나님의 선한 뜻을 이룬다.
이들은 자신들의 결정과 행동이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과 그 뜻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인간의 결정과 행동을 초월한다.

즉, 하나님의 섭리는 신자에게도 감추어진 신비의 영역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이 신자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
그것은 모든 상황에 있어 계명에 복종하는 삶이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 우리의 신앙, 우리의 일을 어떻게 인도할지 다 알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 우리가 할 일은 현저하다.
소극적으로 악인들의 결정을 따르지 않으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앉는 것이다(시 1:1).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며,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구할 바를 아뢰는 삶이다(빌 4:8).
적극적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그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시 1:2).
하나님의 평강에 붙들려 무엇에든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한 삶이다(빌 4:8-9).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통해 자신의 때에 자신의 뜻을 이루신다(시 1:3).

하나님은 요셉의 삶을 이렇게 인도하셨다.
그는 노예로 팔려간 하나님의 섭리를 다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으로 계명을 지켰다(약 1:27).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 39:9).
하나님은 계명에 복종하는 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언약을 성취하셨다.

이 세대 누가 복된 자인가?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경외하며 범사에 복종하여 경건하게 사는 자이다.
하나님은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된 영생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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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앞에 심히 두렵고 떨린다.
나의 육신의 생각, 악한 생각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니...
말씀 앞에 전율한다.
내가 의논하고 결정한 수많은 일들, 매일 결정하는 크고 작은 일들...
비록 악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고 하신다.
그래서 심히 두렵고 전율하는 것이다.

아... 나는 얼마나 많이 미혹당하는 자였던가! 얼마나 많이 기만당하는 자였던가!
한 때 사역이 잘되고, 영혼들이 회복되고, 교회가 안정되어갔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뜻을 행하는 나는 하나님과 분리된 자요, 영생이 부재한 자였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행하는 자였다.
그런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악행을 간과하고 도리어 정당화하였다.

교회하기가 두렵고, 목회하기가 망설여진다. 하나님의 일 하는 것이 떨린다.
외적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뜻'을 빌미로 얼마든지 내 야욕을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별반 다를 바 없는 나이다.

영생을 살며 전하는 것은 확고한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내게 먼저 요구하시는 것은 범사에 복종하는 삶이다.
그런데 나는 벌써 계명 지키는 일에 둔감해지고 있다. 사망의 잠을 잘까 두렵다.
하나님의 뜻을 지레 짐작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나의 악행을 변호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유다처럼 심판받아 죽기에만 합당하리라!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버지 앞에 엎드린다. 티끌과 재가 되어서...
오직 아버지의 자비와 긍휼을 구한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이유로 계명에 철저하지 못한 나를 고발한다.
'오, 주여! 나는 스스로 아무런 선을 행할 수 없는 자이나이다!'

내 인생, 내 신앙, 내 사역의 장래 일은 감추어져 있다. 하나님만이 아신다.
그런데 그런 일들이 모호해지면 육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침체되고 계명을 거스른다.
다시 십자가로 나아간다. 주의 피로 이룬 샘물이 깊고도 넓어 내 죄를 씻는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외치는 나는 십자가에서 죽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인다. 나는 매일 세상을 향해, 죄에 대하여 죽은 자이다.
오직 하나님께만 산 자이다. 나의 지체를 의의 도구로만 드린다.

내일 일을 모른다.
그러나 오늘 할 일은 분명하다.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으로 계명에 복종하는 삶이다.

3. 기도

아버지...
말씀 앞에 심히 두렵고 떨리나이다.
대제사장들이 심사숙고한 결정은 결국 악행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의 결정을 통해 뜻을 이루셨습니다.

오, 아버지... 이 말씀 앞에 심히 두렵고 떨리나이다.
나의 존재와 행위가 하나님의 뜻을 이룬다는 명분으로 얼마나 계명을 멸시했는지요!
한때는 만사가 하나님의 뜻대로 되면, 어떻게 살아도 좋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리에서 나의 악행까지도 정당화했습니다.

아버지...
유다의 악행에 임한 심판은 진실로 합당했습니다.
제게 임한 심판 또한 합당한 공의였습니다.
그러나 불충한 죄인, 죄인중의 괴수인 제게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심판의 자리에서 진멸하지 아니하시고 영생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것도 부족하여 하나님의 온전한 뜻, 영생을 전하는 자로 세우셨습니다.
오, 놀라운 아버지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시 계명을 경홀히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계명을 지키는 일을 소홀히 합니다.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허랑방탕합니다.
악한 일을 행하는 의지만이 왕성합니다.
십자가로 나아가는 종을 불쌍히 여기소서!
보혈로 정결케 하소서! 추하고 더러워진 영혼을 정결케 하소서!

아버지...
제게 선한 일을 행할 의지는 전혀 없나이다!
비참하여 엎드린 자에게 선을 행할 의지를 주소서!
내일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허탄한 뜻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소서.
오직 오늘 내게 주신 계명에 복종하는 자로 살게 하소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으로 범사에 주님을 기쁘게 하게 하소서!
그렇게 하루하루, 순간순간 살다가 주님을 맞이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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