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신문을 드니, 머리기사가 실망스럽다. "고위급 접촉 무산 南·北 다시 급랭." 늘 남북관계가 그래왔기에 새삼스러울 것이 없지만, 그래도 박근혜 정부 들어 조금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열매 없는 공허한 하늘 몸짓으로 끝나고 말았다. 그렇다면 박근혜 정부는 통일에 관한 미사여구를 언론에 대서특필하기 전에, 파트너인 북한을 좀 더 치밀하게 연구하고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워낙 북한이 상대하기 힘든 상식을 뛰어넘는 파트너인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박근혜 정부의 남북관계의 실책도 쉽게 양해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면 오산이다. 남북관계는 말이 아니라, 분명하고 정확한 정책과 이에 따른 신중한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역사의 판단은 엄격하고 분명하다는 점이다. 믿기로는 역사는 요새 한국사회에 팽배한 진영논리를 무가치한 것으로 평가할 것이다.
한국사회에는 북한을 바라보는 서로 어긋나는 두 관점이 있다. 어느 진영에 속하는지를 알 수 있는 척도라는 것이다. 보수는 북한의 인권문제를 집중적으로 지적하고, 진보는 북한 돕기를 강조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영논리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만나는 사람에게 자기 나름의 테스트를 하려든다. 인권을 강조하면 보수로, 북한 돕기를 강조하면 진보로 판단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태도는 종종 무례하고 옳지 않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크리스천들이다. 물론 나 역시 성경대로 믿고 살고자 하는 신학자이며 크리스천이다. 쉽게 말해 예수님을 닮기를 갈망하며 기도한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늘 신중히 생각하며 따르려 노력한다.
그러기에 크리스천은 먹고 입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자가 있다면 그 어떤 조건을 따지지 말고 도와야 할 것이며, 힘을 가진 몹쓸 인간에게 천부적인 인간의 소중한 권리가 유린당하고 있다면 이에 분연히 일어나야 할 것이다. 쉽게 말해 기독교인은 성경의 음성에 따라 마땅히 그렇게 말하고 살아야만 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진영논리에 함몰되어 잘못된 분열적 사고로 사람들을 판단하려 든다. 심지어 예수님도 진영논리에 가두려 하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군부 독재 시절 수많은 사람들의 인권이 유린당할 때 침묵했던 사람들이 역사적 반성과 회개도 없이 어떻게 그토록 뻔뻔하게 인권을 강조하며 큰 소리를 칠 수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인권을 위해 갖은 희생을 감수하며 분연히 일어났던 소위 말하는 진보 측 인사들이 어떻게 북한의 처참한 인권상황에 대해서는 언급을 회피하는지에 대해서도 이해하기가 힘들다. 게다가 그토록 인권을 강조하면서도 북한의 기본권인 먹고 살아야 하는 생존권을 볼모로 북한의 인권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북한을 도와서는 안 된다고 힘을 주어 말하는 사람들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먹고 죽지 않을 권리인 생존권은 최소한의 기본 인권임이 분명한데, 그러한 것을 도외시하면서 북한 인권만을 말하는 식이 된다면 이 역시 내용 없는 어불성설이다. 수용소의 인권도 말할 것도 없이 강조되어야 하고,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는 북한 사람들의 먹을 권리도 함께 강조되어야 말이 되고, 균형이 있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북한 동족의 기본권인 생존권을 존중하면서 함께 북한의 수용소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처참한 인권을 언급하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은 것인지? 더 효과적으로 북한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 것인지 생각한다.
사실 필자가 명예회장으로 섬기는 '기독교통일학회'는 기독청년대학생 통일대회 선언을 통해 이런 잘못된 진영논리를 벗어나서 북한 인권과 북한 돕기를 동시에 강조하였다. 그런데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 할 수 있다. 70년 동안 분단되어 여전히 오도 가도 못하는 남북관계가 만약 이런 어정쩡한 진영논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조바심이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