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 압둘라 살레(69·Salehr) 예멘 대통령의 권력이양안 서명은 예멘 사태 해결을 위한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살레 대통령이 걸프협력이사회(GCC) 중재안 서명 약속을 3차례나 번복한 전력(前歷)을 감안할 때 권력 이양이 실제로 이행될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자말 빈 오마르 유엔 특사의 중재 하에 GCC 중재안을 토대로 여야가 합의를 이루는 과정에서 살레는 차기 대선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관철했다.
물론 압둘 라부 만수르 하디 부통령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하기로 했지만, 앞으로 90일간 명목상이나마 대통령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차기 정부 구성에 살레 대통령이 개입할 여지를 남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살레 대통령은 또 자신과 가족, 측근들의 면책 보장도 얻어냈다.
이에 반대해 온 시위대는 앞으로 면책 보장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갈 전망이다.
아울러 권력이양안 합의와 서명 과정에서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최대 반정부 세력인 알리 모흐센 알 아흐마르 장군과 하시드 부족을 이끄는 셰이크 사디크 알 아흐마르가 배제된 점도 향후 전망을 불투명하게 한다.
이들이 공개적으로 이번 합의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향후 권력 이양과 새 정부 수립 과정에서 배제된다면 또 다른 반란을 시작할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이 밖에 북부의 후티 시아파 반군과 남부의 분리주의 세력, 아비얀 주를 중심으로 한 알카에다 연계 무장단체가 여전히 건재해 새 정부의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예멘 사태의 장기화로 파탄 상태인 민생경제 회복 역시 새 정부의 몫이다.
일각에서는 극심한 빈곤과 기아에 내몰린 도시 빈민층과 지방 부족세력의 민중 봉기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살레 대통령이 결국 권력이양 안에 서명하게 된 배경에도 10개월간 이어진 시위는 물론 이처럼 피폐해진 경제 상황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폭탄 테러 부상을 치료하고 지난 9월 귀국하면서 권력 이양 합의를 전제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지원받은 석유 300만 배럴도 최근 바닥이 나 더는 정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독재자의 처참한 최후 역시 살레 대통령이 퇴진을 적극적으로 고려하게 된 배경이 됐다는 후문이다.
실제 살레는 카다피 사망 직후 자신의 퇴진을 촉구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가 채택된 지 이틀 만에 이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렇게 권력이양안 서명을 결심한 살레는 사후 면책을 보장받는 데 집중하면서 미국과 유럽, 사우디를 비롯한 GCC에 그 이행 보장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권력이양안 서명식이 사우디아라비아 수도에서 압둘라 국왕와 나이프 왕세제는 물론 미국과 유럽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된 데에는 이런 배경이 깔려 있다.
예멘 사태가 지속되면 알카에다 세력과 난민의 발호, `아랍의 봄' 영향의 전파 등을 우려한 인접국 사우디 역시 합의 도출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10개월간 항쟁을 이어간 예멘 시위대의 결집된 노력과 국내 상황, 국제사회의 압박이 이날 살레 대통령의 퇴진 약속을 이끌어냈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그러나 권력 이양의 차질 없는 이행, 민생 경제 회복, 분열된 예멘 부족 사회 통합 등 과제가 산적해 있어 예멘 시민혁명은 `절반의 성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살레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90일 안에 물러나더라도 중동 최대 빈국 예멘이 안정을 되찾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 나오는 까닭이다.
박규옥 주예멘 한국대사가 이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살레 대통령의 권력 이양안 서명을 "예멘 사태 해결의 첫 걸음을 내디딘 것"이라고 평가하면서 "실제 권력 이양 절차가 합의대로 이행돼 예멘이 조속히 안정을 되찾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살레 대통령이 퇴진함에 따라 올초 북아프리카 튀니지를 시작으로 이집트, 리비아 정권을 차례로 무너뜨린 `아랍의 봄' 물결이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예멘 다음으로 어느 정권으로 향할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