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이야기하는 속성을 통해 인간됨의 정체성을 밝히려는 심리학의 한 분야인 '이야기 심리학'이 인간 내면의 아픔도 치유하는 목회 상담학 분야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지난 5일 끝난 서울 강동구 명일동 명성교회 '새벽기도 국제 컨퍼런스'에서 '이야기 심리학과 목회상담'을 주제로 발제한 연세대학교 연합신학대학원장인 정석환 박사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인문사회과학의 전 영역에서 인간의 이야기하는 속성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연구가 특별한 관심을 끌어왔다"며 "특히 인간됨의 정체성을 밝히는 심리학의 분야에서는 '이야기하는 인간(Homo Farbans)'으로서 인간의 자기발견의 과제를 풀어가려는 노력이 있어 왔다"고 소개했다.
정 원장은 "지난 십여 년간 미국을 중심으로 일고 있는 이야기 심리학을 간략히 소개하고, 같은 과제를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 목회 상담학 분야에 '이야기 심리학'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를 살펴보고자 한다"고 말을 이었다.
그는 '개인의 신화 만들기'가 진행되는 19~33세에 관해 설명하며 매카담스가 말한 성인기의 이야기 안에 발견되는 건강한 이야기의 공통된 특성 6가지 요소를 소개했다.
정석환 원장은 우선 첫째 요소에 대해 "각 이야기의 발달 단계에 걸맞은 이야기의 연속성이다"며 "우리 인간은 결국 환경의 지배하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각 발달 단계에 따른 발달의 목표에 걸맞은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을 때 건강한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고 말했다.
둘째는 개방성으로, 건강한 이야기는 각 발달단계에 따른 환경과 문화의 도전과 변화에 민감하고 창의적으로 대응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추구하는 개방성이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신뢰성, 넷째는 구별성, 다섯째는 화해의 속성으로 이에 대해 정 원장은 "인간의 삶은 때론 고통과 상처, 불완전성의 연속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며 이 세상 어느 인간도 이러한 삶의 상처와 단절의 위협으로부터 예외일 순 없다"며 "건강한 삶의 이야기는 이러한 삶의 모호성과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고 화해하여 이야기의 탄력성과 연속성, 견고성을 유지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 "여섯째는 성숙한 이야기 대본을 어느 만큼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다"며 "인간의 삶은 누구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을 넘어설 수 있는 이야기, 즉 타인과 세계에 대해 무언가를 기여하며 공헌하는 나눔의 이야기가 존재할 때 비로소 '사랑하며 일할 수 있는' 건강한 인간의 이야기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고 전했다.
이어 정석환 원장은 최근 이야기 심리학의 총체적 인간이해의 연구 방법론과 치유적 효과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목회 상담학 분야의 대표적 학자로는 거킨(Gerkin, Charles V.), 브라우닝(Browning, Don S.), 팻튼(Patton, John), 윔벌리(Wimberly, Edward P.), 래스터(Lester, Andrew D.), 애쉬부룩(Ashbrook James B.) 등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들의 공통적 관심은 이야기 심리학의 방법론이 내포하고 있는 자서전적 이야기 진술의 치유적 효과이다"며 "즉 자서전적인 이야기의 진술을 그 이야기를 말하는 자로 하여금 자신의 과거와 재연결의 기회를 제공해 줄뿐만 아니라, 이 과정을 통해 이때껏 무의식에 어둠 속에 묻혀 놓았던 자신의 과거와 새롭게 화해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해 줌으로써 막혀있던 삶에 새로운 통찰과 해석, 그리하여 계속되는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치유적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위 후기 산업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경험들은 우리들의 이야기는 부서지기 쉬운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며 "극작가 유진 오닐의 말처럼 '우리 인간은 부서진 채로 태어나서 그의 일생을 그것을 다시 붙이는데 보낸다. 하나님의 은혜란 바로 그 일을 수행하는데 접착제의 역할을 한다' 이처럼 우리들의 살아가는 세상 속의 이야기는 실존적으로, 또한 지나친 경쟁과 소유의 욕구들로 인해 서로를 소외시키고 파괴시키는 파편처럼 흩어진 이야기들이 되기 쉽고, 따라서 더 이상 삶에 의미와 희망을 제공하는 이야기가 아닌 단순한 사건들의 보고서처럼 때론 지나간 신문들의 빛바랜 기록들처럼 의미 없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가 있다"고 진단했다.
정 원장은 "이러한 때 우리는 우리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잃고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는 우리의 자아를 잃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의미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이 우리들의 삶을 의미 없이 끌고 다니는 조각난 삶, 깨어진 삶의 파편을 살고 있는 것이다"며 "상담학의 개념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자아의 모습은 상처 입은 자아의 모습, 깨어진 인간의 이야기라 부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목회 상담학자인 팻튼은 깨어진 이야기의 치유에는 깨어진 자아의 회복과 치유가 필수적이라 말하며, 깨어진 자아의 치유행위에 관여하는 목회적 돌봄의 행위, 목회상담의 행위를 '기억함(Remembering)'이라 말하고 있다"며 "목회 상담이 목표하는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돌봄의 사건'의 기본적 요체는 '하나님이 인간을 기억하고 계신다'는 기본 명제 하에서 출발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하나님의 인간 기억의 행위 안에서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 안에서 인간은 누구인가를 기억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시각의 연장선에서 이웃과 공동체를 돌아보는(기억하는) 돌봄의 행위가 가능하다고 팻튼은 말한다"면서 "팻튼에 의하면 기억함의 또 다른 중요 요소는 우리가 분리시켜 놓았던 또 다른 우리들의 자아의 모습, 분열된 자아의 모습, 열등하고 그림자에 가려져 우리의 의식 안에 아직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오직 타인들에게만 투사의 과정을 통해 발견되어지는 공격적이고 방어적인 우리 안의 그림자적 자아의 모습을 통전시키고 받아들이는 행위를 포함하는 기억함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가 아직 우리 안에 참 자아의 한 멤버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모습, 그리하여 우리의 의식의 영역 안에 분리시키고 흩어 놓았던 우리 자아의 또 다른 모습을 다시금 기억하여 자신의 한 멤버로서 포용하고 용납하는 행위가 곧 기억함의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이다"고도 했다.
정석환 원장은 "이러한 기억함의 사건으로서의 목회상담은 거킨에 의하면 네 가지 과정을 거치며 단순한 기억으로서의 사건이 이야기화 된다"며 "첫째는 어떠한 일이 발생했는가를 말하게 함으로서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사건을 재조명케 하고 둘째는 왜 그러한 일들이 발생했는가를 물음으로써 과거의 발생했던 사건들이 말하는 사람의 어떠한 행위와 동기와 선택에 의한 사건들이었는가를 깨닫게 한다"고 말했다.
이어 "셋째는 이러한 이야기가 말해지고 들려지는 소위 안전하고, 안아 주는(Holding environment) 상담적 분위기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며 "마지막으로 이렇게 발견된 이야기하는 자아의 모습은 자신의 이익과 주장만을 앞세우는 지금까지의 좁은 울타리, 조각나고 단절되었던 이야기 세계에서 보다 넓은 이야기의 세계-하나님 안에서 서로 연결되고 관계 맺는- 넓혀진 이야기 지평의 세계와 만남으로 나아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리하여 마침내 새로운 자아의 탄생으로 만들어지는, 삶에 대한 새 틀과 새 지평(이름하여 지평융합)을 얻게 되는 것이다"며 "애쉬부룩은 이러한 거킨의 이야기적 목회상담의 과정과 과제에 동의하며 지평융합으로서의 새로운 자아의 발견을 틸리히가 말하고자 했던 새로운 존재의 탄생이라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탄생되는 새로운 존재는 곧 목회 상담학이 목표하는 궁극적인 인간의 지향점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목회상담에 요청되는 요소들로 첫째는 이야기를 말하는 자, 상담을 받으러 오는 내담자를 들며 "내담자는 대개 깨어진 자아의 모습 속에서 더이상 자신의 이야기에 의미를 담지 못한다고 느낄 때, 즉 '두려움과 희망'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찾기 위하여 목회상담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며 "거킨의 말을 빌리며 위기 속의 인간은 '절망의 해석학'과 '희망과 기대의 해석학' 사이에서 목회상담이란 '라하이 로이-도움의 우물가'를 찾게 된다"고 했다.
이어 둘째 요소로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듣는 자, 목회상담자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진정한 치유적 상담이 되기 위해서 참여적 들음의 훈련이 필수적"이라며 "참여적 들음의 훈련에서 가장 중요한 요건을 팻튼은 칼 매닝거의 말을 인용해 섣부른 해석의 자제함이라 말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상담자는 이야기를 말하는 자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사건들을 이야기화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하며, 자세한 관찰과 공감의 마음, 그리고 참여적 대화의 과정(해석학적 과정)을 통해 내담자가 자신의 내적 기억들을 현실의 단어(몸과 마음의 단어)들로 구체화해서 표현해 낼 수 있도록 돕는 자일 뿐 결코 그 이야기의 주체자가 아님을 명심해야 된다"며 "상담자가 내담자의 언어와 비언어적인 표현들에 온전히 귀 기울일 수 있는 들음의 과정을 제대로 해낼 수 없을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상담자의 이야기를 허공 속의 독백으로 만들어 버릴 뿐만 아니라 그를 다시 두려움과 좌절 속에 갇힌 외로운 존재로 방치해 놓는 결과를 빚게 한다"고 말했다.
또 "상담자의 온전한 들음이 없이는 내담자의 내부 안에 깊숙이 갇혀 있는 이야기가 끌어져 나올 수 없으며, 따라서 기억을 통한 사건의 이야기화가 불가능해 지고, 이야기가 불가능한 상담의 현장 속에는 결코 치유의 사건과 경험이 발생할 수 없게 된다고 팻튼은 강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셋째 요소는 이야기적 관계의 경험으로, 정석환 원장은 "거킨은 우리 안에 경험되어진 좋은 대상과 나쁜 대상들에 대한 경험의 이미지들 사이의 간극, 여기에서 빚어지는 자신과 타인 사이의 간극, 참 자아와 거짓 자아와의 간극, 마침내는 자기의 모습과 하나님의 모습 사이의 간극의 벽들이 우리들의 이야기를 조각난 파편의 이야기, 의미 없는 빛바랜 이야기, 병든 이야기를 만든다고 한다"며 "목회상담의 환경 속에서 이야기의 치유적 사건이란 내담자와 상담자 사이의 신뢰적 관계를 통해 사건들이 이야기로 성육화하고 몸과 마음들의 언어들로 부활되어질 때 그럼으로 이러한 간극들을 메우는 관계의 경험이 체험될 때 비로소 파편화된 사건으로서의 기억들은 연속성을 지닌 삶의 이야기로 거듭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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