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칼럼] 글로벌 시대 맞는 기독교적 통일교육이 필요하다

▲김동석 평화향기교회 담임목사ㅣ평통기연 운영위원

[기독일보=평화통일을위한기독인연대] 초등학교 시절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자연스럽게 혹은 당연한 진리로 여기며 자라온 세대 중 한 명으로서 아직도 통일의 당위성을 확신한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맞추어 조금은 다른 생각이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다음 세대와 함께 통일을 추구하기 위한 보다 폭넓은 개념과 교육이 요청된다.

시대를 지칭하는 표현들이 있다. 근대와 전근대 시대라든가 현대와 포스트모던 시대 등의 명칭들이 그러하다. 그 명칭들에는 세부적인 의미와 개념 그리고 이념 등이 반영되어 있다. 현대를 묘사하는 다른 표현 중에 글로벌(화)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세계가 하나의 단위로 이해되고 그런 관점에서 세계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이론 혹은 현상이다.

글로벌 시대의 중요한 개념 중의 하나가 상생이다. 개인의 신체가 부분적으로 장애를 갖거나 질병에 걸리게 될 때 아픈 곳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위험해질 수 있는 것과 같이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지구 위의 어느 한 국가와 개인, 심지어 자연까지 소중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전체 지구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구 위의 한 개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개체의 생존도 지켜줘야 한다.

그동안 한국의 교회는 개인의 구원과 축복이라는 자기의 생존을 중요하게 가르쳐 왔다. 반면에 사회는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개인의 수고와 희생을 감수하고 국가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정신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공적인 사회화는 자발적이기보다는 희생에 대한 강요로 여겨지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더더욱 개인적인 축복의 개념을 추구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적으로 기독교의 이기적인 면으로 발전되었을 여지가 크다. 개인적인 축복신앙으로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자연스럽게 통일과 같은 공적인 축복에 대해 무관심하게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본래적이고 핵심적인 신념은 사적인 축복과 공적인 축복을 모두 포함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세에 대한 구원관은 현세에서의 책임적인 삶을 부각시킨다. 지역적인 한계를 넘어서기 어려운 고대부터 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곳이며, 땅끝까지 이르러 다스리고 관리하는 것을 기독교적 신념으로 내면화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는 매우 지역적이면서도 매우 세계적인 성향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참된 기독교적 신앙의 결여일 수 있다.

다음 세대에게 기독교 신앙을 전수함에 있어서 개인의 구복과 함께 민족과 국가의 안위를 비롯하여 세계평화와 행복을 추구하도록 격려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과 평화를 이룬 사람은 평화의 직분을 받게 된다. 그 핵심은 기독교적 책임의식(responsibility), 관용(tolerance), 경청대화(listening communication)와 조화(harmony)를 이루는 방법 과 같은 고상한 지식이다. 통일을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개인적 축복으로 해석하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통일이 국가적 축복이기보다는 통일비용과 같은 부담으로 여길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통일은 한국의 지역적 안위의 수준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평화와 행복이며 신앙의 중요한 목표들 중의 하나로 바라보고 소중하게 다루어져야 시대로 나아가야 한다.

글ㅣ김동석 평화향기교회 담임목사(평통기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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