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도홍 칼럼] 군대 폭력

오피니언·칼럼
편집부 기자
백석대 주도홍 교수

윤일병의 비참한 죽음은 나의 마음을 심히 아프게 한다. 어느 사이 수십년된 군생활로 나를 부른다. 1976년 입대하여 1979년 육군병장으로 제대하였다. 그러니까 35년이 흐른 오래된 이야기임이 분명하다. 나 역시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끝내고 자대에 배치를 받고 난 후 많은 구타를 당했다. 논산훈련소에서는 함께 받는 얼차려가 대부분이었으나, 엘리트들이 모였다는 서울의 자대에서는 말 그대로 폭력이 행사되고 있었다.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는데 견디기가 힘들었다. 어떤 땐 가슴의 멍이 빨갛다 못해 시퍼렇게 변해 갔다. 가만히 가슴을 스쳐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폭력의 불안을 종종 잠자리를 힘들게 하였고, 자살을 문득문득 생각하게 만들었다.

종종 육군본부와 국방부 등 상위부대로부터 비폭력과 내무반의 평화를 위한 지침이 하달되었고, 그럴 때마다 함께 강당에 모여 교육을 때론 구호를 외치곤 했다. 매달 한 번씩 장교와 사병이 함께 듣는 특강이 있었는데, 특강 강사를 사병인 내가 찾아나서 섭외를 하기도 했다. 어떤 땐 강사섭외가 마땅치 않아 비폭력에 대한 특강을 일병인 내가 졸지에 맡아 하기도 했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대단한 일을 한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지금도 예 이야기를 기억하며 한 군대친구는 '주도홍의 무용담'을 꺼내기도 한다. 사실 나 역시 맞기 싫어 간디, 토인비, 베르그송, 예수님 이야기를 하며 비폭력을 역설하였다. 거기다 예수님의 제자로 살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한 것이 주된 이유였다.

나는 많이 맞았지만, 군대에서 한 번도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물론 같은 내무반 동료병사들이 졸병들 교육을 시킨다고 줄을 세워 잔소리를 하는 것을 몇 번 목격을 하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조금은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역시 가톨릭교회의 신부수업을 받는 신학생이었기에 그 역시 폭력을 쓰는 것을 보지 못했다. 나는 목사, 그는 신부의 길을 가고 있었기에 같은 서열의 다른 두 동료병사가 어쩔 수 없이 졸병교육을 전담하였다. 그럼에도 우리 내무반은 대체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했고, 오순도순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나의 옛 부대이야기를 대학후배를 통해 들었는데, 폭력이 심하다는 것이었다. 점점 사라지는 줄 알았는데, 폭력이 더하다는 소식을 들으며 마음이 좋지 않았다. 조금은 배신감까지 들었는데, 맞지 않고 고참이 된 사람들이 졸병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간단하게 결론을 맺으면, 군대폭력은 비정상의 삶의 발로라는 것이다. 곧 인성의 망가짐이 주된 원인이다. 사람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먼저는 부대 지휘관들이 철저한 비폭력에 대한 인식을 갖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사실 사병들만 폭력을 쓰는 것이 아니다. 장교들이 그리고 하사관들이 폭력을 쉽게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은 사병들에게 일종의 나쁜 교육이 되고 있다. 그러기에 이 점을 보다 전문적으로 사관학교나 훈련소에서부터 교육을 해야 한다는 점이다. 군대폭력이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기에 연구소를 두고 이를 장교나 하사관들에게 의무적으로 정기적으로 이수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사병들도 다르지 않다. 그저 땜방식으로 넘어가려는 임기응변으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폭력을 쓰는 문제 장교나 하사관 그리고 병사를 엄격하게 먼저 찾아 내야 한다. 습관적으로 폭력을 쓰는 자들을 파악해서 그들을 집중적으로 교육해야 하고 안 되면 전역을 시키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게다가 군대폭력은 대물림되어 가정폭력으로, 사회폭력, 학교폭력으로 직장과 부부지간의 폭력으로까지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군대폭력의 근절을 위해 폭력이 사라진 해외 선진부대들의 좋은 예를 가져와 한국 국군을 새롭게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폭력을 쓰는 자는 그 폭력으로 망할 것이다!"는 성경의 음성을 한국사회는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도홍 #윤일병 #군대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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