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의 지도력에 일대 위기가 왔습니다. 가나안을 지척에 두고 엉뚱한 곳을 헤매다 어렵사리 가데스라는 곳에 진을 쳤으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곳에는 또 물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오랜 광야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리며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이 광야로 이끌어내 여기서 죽게 하느냐?>고 모세에게 대들었는데 사실 그들은 이번만이 아니고 툭하면 <애굽 시절이 좋았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사람들을 선동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마실 물이 없다는 것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엄혹한 현실이고 또 지도자로서는 반드시 해결돼야 할 중대한 과제였으므로 모세는 일단 꾹꾹 참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히 기도했는데 드디어 응답이 왔습니다. <지팡이를 잡고 회중들의 목전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라!>(민 20:8). 난데없이 지팡이를 잡으라는 것은 무슨 뜻이었을까요?
아마도 홍해를 갈랐던 기억을 되살리시려는 동시에 일체 다른 것에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에 대한 무한신뢰 하나로 문제 해결에 임하라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당시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방도는 그들이 처했던 곤경의 심각성에 비하면 어이가 없을 만큼 밋밋하고 싱거웠습니다. 모세로서는 위기에 몰린 자신의 위엄을 드높일 반전의 한 방을 기대했을 테고 늘 자기를 공격하는 불만 세력들에게 뭔가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을 텐데 하나님이 일러주신 방식은 아무래도 단조로워 뭔가 조금은 연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우선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지팡이를 손에 잡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인데 느닷없이 모세가 강경한 톤으로 이렇게 일갈합니다.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그동안 참고 눌렀던 울화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격렬한 욕설이 된 것입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반기를 들어온 이 나쁜 놈들아!> 이어지는 말은 더욱 심각합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해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마치 물을 주는 것이 자기 손에 달렸다는 듯 빈정대며 물 공급자 행세를 하는가 하면 그것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던지 팔을 높이 들어 하나님이 명하시지도 않은 퍼포먼스까지 감행합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차례나 지팡이로 반석을 후려친 것입니다. 그 순간 반석에서 생수가 터져 결국 사람들과 짐승들이 다 해갈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통쾌했을 것이고 이제 모든 문제가 다 잘 해결됐다고 안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민 20:12). 모세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말씀이고, 고달프고 억울한 리더의 입장도 좀 헤아려주셔야 옳지 않으냐고 항변하고 싶은 마음이 가슴 가득 차올랐을 법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 당시 모세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냥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모르긴 해도 아마 자기 뜻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누구든 가차 없이 제거해 버리는 전제군주와 다를 바 없었을 것이고 모든 공적은 자신이 독차지하고 책임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는, 그래서 오로지 자신의 영광만을 위해 사는 어리석은 지도자가 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그런 지도자를 따라야 하는 백성들은 또 얼마나 고달팠겠습니까? 백성들이 저지른 잘못보다 리더인 모세의 대응자세를 더 문제 삼으신 하나님의 처분은 오늘 이 시대 우리에게도 좋은 경고가 됩니다.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칫 자기를 내세움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경우 그 사람은 가나안으로부터 그만큼 멀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이 모세의 뼈아픈 실패에서 꼭 배워야 옳다는 것입니다.
* 노나라에서 온 편지에서
#조성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