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투자자에게 약 1조6000억원의 손실을 입힌 동양 사태는 금융당국의 관리 소홀과 업무 태만이 주요 원인이었던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감사원은 동양그룹이 회사채 돌려막기로 부실을 눈덩이처럼 불리고 있는데도 오히려 금융위원회는 이를 금지하는 법규정을 삭제했고, 금융감독원은 동양증권의 불완전판매를 알고도 뒷짐만 지고 지켜보면서 '개미'들의 피해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시민단체들의 공익감사 청구에 따라 지난 1월부터 금감원과 금융위, 한국산업은행 등을 대상으로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등 시장성 차입금 관리·감독 실태를 점검하고 총 11건에 달하는 결과조치를 시행했다.
◇금감원, 동양증권 불완전판매 알고도 방치
감사원은 동양증권이 투기등급의 계열사 CP와 회사채를 개인에게 판매하는 과정에서 금감원이 '불완전판매(상품의 기본내용과 투자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는 것)'를 알고도 사실상 방치했다고 봤다.
동양증권의 다수 지점이 투자 위험성 표시를 생략한 불법 광고전단을 이용해 CP와 회사채 투자를 권유하고 있는데도 금감원은 특별한 조치 없이 이를 내버려뒀다는 얘기다.
동양이 2008~2011년 발행해 동양증권을 통해 개인에게 대부분 판매한 투기등급 회사채는 2조원에 달한다. 기관투자자 중심의 회사채 시장에서 투기등급 회사채는 수익률에 비해 위험이 너무 높아 발행이 불가능한 실정이란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 때문에 2011년 동양증권에 대한 금감원과의 공동검사를 실시한 예금보험공사도 2012년 2월 "동양증권에서 회사채를 불완전판매하고 있다"는 취지의 검사결과를 금감원에 보냈다.
"기관투자자와 다른 증권사를 통해서는 소화하기 힘든 투기등급의 동양 회사채 대부분이 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통해 정보가 부족한 개인에게 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불완전판매나 손해배상소송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같은 검사결과를 받아든 금감원은 같은해 6월 금감원장 및 금융위 보고에서 동양증권의 계열사 CP와 회사채 불완전판매에 대한 지도·검사를 강화키로 방침을 세웠다. 불완전판매 예방을 위한 조치가 담긴 '동양 관련 세부추진 계획'도 금감원 금융투자검사국에 전달됐다.
하지만 금감원 금융투자검사국은 동양증권의 계열사 회사채 판매내역을 분석해 보는 등의 조치는 취하지 않은 채 "회사채 불완전판매가 발생하지 않도록 내부통제절차를 강화하라"는 공문만 한 차례 동양증권에 보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동양증권은 당시 고객 1만500여명에게 투기등급의 동양 회사채 2581억원을 판매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완전판매 발생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금감원은 실효성 있는 조치없이 이를 방치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금감원이 불완전판매 지도·검사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동양증권의 회사채 판매잔액은 2012년 6월 8903억원에서 이듬해 9월 1조844억원으로 1941억원 증가해 투자자 피해도 그만큼 늘었다.
◇계열사 지원용 CP 팔아도 '솜방망이' 처벌
금감원은 동양그룹이 한창 부실을 키워가던 당시 동양증권이 계열사 지원 목적으로 CP를 부당판매하고 있는 사실을 적발하고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감사원에 따르면 금감원은 2006년 동양증권 종합검사를 위한 사전조사 당시 '신탁업감독규정'을 위반한 계열사 자금 지원행위 여부를 중점 점검하기로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같은해 6월 막상 종합검사에 들어가고 나서는 동양증권이 계열사의 투기등급 CP 1조494억원을 보유한 것에 대해 당초 계획대로 계열사 지원행위인지 여부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대신 2007년 3월 막연히 "투기등급 계열사 CP 규모를 자발적으로 감축하라"는 취지의 '경영유의사항'을 보냈다. 동양증권은 이미 금감원 종합검사 때마다 계열사 부당 자금 지원행위로 여러번 적발되는 등 자발적 감축을 기대하기가 곤란했던 실정인데도 제재를 가하지 않고 경미한 조치로 갈음했던 것이다.
특히 금감원은 2008년 9월 종합검사에서 동양메이저 전략기획본부의 지시 하에 동양증권이 투기등급 계열사 CP를 조직적으로 판매한 사실을 적발하고도 신탁업 일부 정지나 인가 취소 등의 강력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당시 금감원은 대표이사 개인에게 문책경고를 보내고 CP 규모 감축을 유도하는 MOU를 체결했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는 것이어서 솜방망이 처벌만 반복한 셈이 됐다.
동양증권은 결국 2011년 7월 MOU를 이행하기 어렵다고 금감원에 통보했으며 계열사 CP 편입규모를 크게 늘리고는 개인고객들에게 이를 적극적으로 팔았다.
◇금융위, '오락가락' 규정 변경…무차별 CP·회사채 판매 가능
동양그룹이 개인투자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회사채와 CP를 불완전판매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융위의 오락가락한 규정 변경도 한몫을 했다.
금융위는 지난 2005년 신탁업무규정을 개정하면서 증권사들의 수익 기반 확대를 위해 신탁업을 겸업할 수 있도록 했다. 신탁업은 금융사가 고객 요청에 따라 다양한 대상에 투자하는 것으로 과거에는 은행권에만 허용됐다.
대신 금융위는 관련 규정에 '계열사 지원금지 규정'을 넣었다. 대기업이 대주주로 있는 증권사의 경우 신탁업으로 모집한 고객의 돈을 부실 계열사를 부당 지원하는데 쓸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금지규정에도 불구하고 동양증권은 2006년 6월 동양레저 등 투기등급의 계열사가 발행한 1조원 규모의 CP를 취득해 고객을 위험에 노출시킨 사실이 금감원에 적발됐다. 이후에도 동양증권은 신탁 자금을 이용해 계열사 CP의 취득규모를 계속 확대했다.
대기업 계열 증권사에 신탁업을 허용하면서 우려했던 일이 실제로 발생한 것이다. 그런데도 금융위는 2008년 8월 신탁업감독규정과 증권업감독규정 등을 통합한 '금융투자업규정'을 만들면서 기존에 있던 '계열사 지원금지 규정'을 삭제해 버렸다.
증권사의 계열사 부당지원 행위로부터 신탁고객을 보호토록 한 빗장을 풀어버린 셈이다. 동양증권이 고객들의 신탁자금으로 동양그룹 계열사 회사채와 CP를 무차별적으로 사들이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나 금융위는 관련 규정에 대한 개정 필요성을 검토조차 하지 않다가 3년 5개월이 지난 2012년 7월 뒤늦게 금지 규정 마련에 착수했다. 개정된 금융투자업규정도 동양 사태가 터진 뒤인 지난해 10월에야 시행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산업은행, 동양 계열사 인수용 자금 부당 지원
산업은행은 동양그룹 주력기업인 동양메이저의 주채권은행으로서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약정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부당한 자금지원으로 부실을 키우는데 일조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동양메이저는 산업은행과의 재무구조 개선 약정에 따라 2006년 6월 동양시멘트 주식 499만주(지분율 49.9%)를 외국계 펀드인 PK2에 2245억원에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인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과 PK2는 해당 주식을 되사고 팔 수 있는 '콜·풋옵션' 계약을 별도로 체결했다.
이후 2008년 초 동양시멘트 상장 실패 등으로 PK2가 현 회장에게 풋옵션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되자 동양메이저는 대주주 부당 지원 문제 등이 노출되지 않도록 현 회장 대신 동양시멘트 주식을 매입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동양메이저는 우선 리더스사모투자전문회사로 하여금 PK2가 보유한 동양시멘트 주식을 2899억원에 인수토록 하고 여기에 일정 수익을 더해 되사주기로 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해당 거래가 대주주인 현 회장을 부당지원할 소지가 있고 동양메이저의 재무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도 2008년 4월 주식매입자금으로 1400억원을 대출해 준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동양메이저는 산업은행이 빌려준 자금을 바탕으로 2010년 1월과 2011년 3월 동양시멘트 주식을 공정가치(1468억원)보다 2336억원이나 비싼 3804억원에 매입해 재무구조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금감원 담당 국장 등에 문책 및 주의 요구
감사원은 이번 감사결과와 관련해 동양증권의 회사채 불완전판매 행위에 대한 감독을 태만히 한 금감원 금융투자검사국 담당 국장과 팀장의 문책을 요구했다. 계열사 지원 목적의 CP 판매에 대해서는 검사를 강화하고 영업정지 등의 강력한 제재 방안을 마련토록 주의를 요구했다.
금융위에 대해서는 금융투자업규정에서 계열사 지원금지 규정을 삭제하고 이를 뒤늦게 개선한 관계자 4명에게 주의를 요구했다.
산업은행에게는 동양메이저에 주식매입용 자금을 부당 지원한 사실을 관련 팀장 2명의 인사자료로 활용하라고 통보했다. 현 회장 대신 동양시멘트 주식을 매입한 동양메이저 관계자에 대해서는 업무상 배임 소지가 있다고 판단, 검찰에 수사참고자료를 제공했다.
한편 감사원은 이번 감사를 통해 계열사 지원금지 규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를 확인한 결과 A증권이 지난해 4월부터 올해 1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계열사 회사채 900억원을 다른 증권사를 우회해 실질적으로 인수·판매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