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를 수정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샬롬나비가 11일 논평을 내고 "아베정권의 고노담화 수정시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우는 유치한 짓이다"고 규탄했다.
먼저 샬롬나비는 "고노담화 검증보고서는 교묘한 역사 왜곡이다"고 했다.
샬롬나비는 "지난주 아베 정부가 발표한 고노(河野) 담화 검증 보고서는 일본 정부의 각 부처가 보유한 문서를 조사한 결과 '강제 연행'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썼다"며 "총칼로 위협해 납치·연행하는 것만 강제 모집이 아니다"고 했다.
이어 "대부분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좋은 데 취직시켜 주겠다는 사기(詐欺)에 속았다고 증언하고 있다. 혹은 '정신대(挺身隊)에 안 가면 부모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는 식의 압박에 굴복했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할머니들은 자기 의사에 반해 성 노예로 끌려갔음을 일관되게 밝히고 있다"며 "이를 뒷받침하는 서류는 하나 둘이 아니다"고 했다.
이에 샬롬나비는 2차 대전 직후 일본 각처에서 일어난 공문서 소각에 대한 자료들을 소개했다.
먼저 2차 대전 직후 일본의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파헤친 걸작 미국 존 다우어 MIT 명예교수의 저서 『패배를 껴안고』가 그린 1945년 8월 15일 패전일(敗戰日)의 풍경을 소개했다.
"일본 전역에서 미친 듯이 서류를 폐기하는 군 장교와 관료가 꼬리를 물고 나타났다. 미군 공습이 끝난 뒤에도 도쿄의 하늘은 여전히 연기로 시커멓다는 농담이 나돌 정도였다. 미군 소이탄이 내뿜던 지옥의 불길 대신에 서류 더미의 모닥불이 곳곳에서 타올랐다."
또 일본 측 증언인 1965년 발간된 '대동아전쟁 전사(全史)'의 기록은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는) 각료회의 결정이 이뤄졌을 때 육군 중앙 시설이 들어선 도쿄 이치가야에선 기밀 서류의 소각이 시작됐다. 모든 육군 부대에 대해 서류 소각 통첩이 내려졌다. 서류를 태우는 검은 연기가 8월 14일 오후부터 16일까지 계속됐다"고 했다.
또 "패전 당시 내무성 문서 담당 사무관이었던 오야마 다다시는 이렇게 회상했다"며 "내무성 문서를 전부 소각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나중에 어떤 사람에게 어떤 피해가 갈지 모르기 때문에 선별하지 말고 전부 태우라는 명령이었다. 내무성 뒤뜰에서 사흘 밤낮으로 활활 밤하늘을 그을리며 태웠다(속내무성외사·續內務省外史·1987년)"고 했다.
그러면서 "패전 후 일본 각처에서 일어난 소각행위는 전쟁범죄에 대한 증거인멸 행위였다"고 강조했다.
또 "위안부 강제 사실은 한국만이 아니라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에서도 드러나고 있다"며 증거를 댔다.
샬롬나비는 중국 중앙당안국(기록보관소)이 지난 7월 3일부터 한 편씩 홈페이지에 공개하는 일제 전범(戰犯)의 '중국 침략 죄행(罪行) 서면자백서' 첫 편에 "한·중 부녀자를 유인해 위안부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당시 일본군 사단장에 의해 쓰였다고 했다.
또 네덜란드 헤이그에 있는 '일본명예채무촉구재단'(SJE)은 태평양전쟁 당시 인도네시아를 점령한 일본이 현지 네덜란드 주민 30만 명을 수용소에 가두고, 젊은 여성들을 강제로 성 노리개로 삼은데 대한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단체다.
이 단체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2014년 5월) 매달 둘째 화요일 낮 헤이그 일본 대사관 앞에서 집회를 갖고,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일본 총리에게 전달해왔다.
샬롬나비는 "아베 정권이 과거 주변국들에게 일본제국주의의 이름으로 행했던 끔찍한 잘못들에 대하여 주변국들이 받아들일만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 그리고 피해회복을 위한 성실한 노력 없이는 진정한 화해와 평화는 없다"며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솔직한 인정과 반성 그리고 사과를 할 수 있는 정직함과 용기야 말로 일본의 현재의 자국에 대한 진정한 자신감과 애국심의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또 "이를 위해 일본은 여전히 살아있는 주변국의 피해자들, 특별히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진정한 사과와 만족할만한 피해보상을 즉각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