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길 떠나는 가족', 화가 이중섭의 삶을 무대위로 불러내다

한국 근대 화단을 대표하는 서양 화가 이중섭(1916~1956)은 본 것, 아는 것만 그리고자 했다. 내용과 형식을 일치시키려 한 셈이다.

연극 '길 떠나는 가족'도 마찬가지다. 이중섭에게서 본 것, 그에 대해 아는 걸 무대 위에 그린다. 그림 같은 배경과 소품은 소재(내용)에 알맞은 도구(형식)다.

이중섭은 사실주의 화가가 아니다. 대담한 변형과 색감이 특징인 야수파였다. 특히 격렬한 붓놀림을 통한 황토적인 소재로 주변을 자기 것으로 체화했다.

연극이 재현하고자 하는 부분이다. 식민치하 일본 여성과 결혼, 1·4 후퇴로 인한 남하, 정신병원에서 죽음 등 예술가가 억압받는 상황에서도 이중섭은 치열한 예술혼을 불살랐다.

평면적인 이야기 전달보다 중요한 것은 인물의 내면이다. '길 떠나는 가족'의 장면 하나하나는 그림이다. 느릿느릿하면서도 리듬을 타는 배우들의 대사와 몸짓이 그렇다. 인물의 속사정에 대해 더 관찰할 수 있는 시간·마음적 여유가 생긴다.

사실적인 모습 대신 2차원 회화로 꾸민 소품과 배경은 적절한 선택이다. 컵, 주전자 등 일상 용품을 비롯해 게와 물고기, 새 등 대부분이 평면 그림이다. 이영란 디자이너의 오브제들이다. 이중섭을 비롯한 등장 인물들은 덕분에 더 입체적이다. 내면이 상대적으로 자연스레 풍성해지는 효과로 이어진다.

놀랍도록 닮은 외모로 주목 받은 지현준은 이중섭을 무대 위로 불러낸다. 순수와 광기를 오가는 지현준의 메소드 연기는 이중섭을 바로 눈 앞에서 목도하게 만든다. 황소 그림도 뚝딱 그려낸다.

연극 제목 '길 떠나는 가족'은 이중섭의 유화 '길 떠나는 가족'(1954)에서 따왔다. 흐드러진 꽃이 실린 달구지 위에 여인과 두 아이가 즐겁게 나들이를 떠나는 장면이다.

달구지를 소가 끌고 이 소는 어느 남자가 몰고 있다. 연극의 마지막에서 이 모습이 재현된다. 이중섭이 그리던 그 황소 뒤를 그가 주로 그렸던 소재들이 따른다.

이중섭은 세상에 없지만, 그의 혼을 따르는 이들도 여전하다. 그가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음이 새삼 입증된다. 무대 위에서 또 살고 있다.

1991년 초연했다. 극작가인 김의경 백민역사연극원 원장의 대표작이다. 당시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 감독이 연출했다. 23년 만의 무대도 이 예술 감독이 연출한다. 낡은 느낌이 전혀 없이 여전히 새롭다. 이중섭과 같다.

이중섭의 아내 '이남덕'은 명동예술극장의 '햄릿'(연출 오경택)의 '오필리어'로 주목 받은 전경수, 초연 당시 '아이' 역을 맡았던 배우 문경희가 중섭의 어머니로 변신했다. 음악 월드뮤직그룹 '반(VANN)', 조명·영상디자인 조인곤, 안무 김윤규, 작곡 반·전상민, 의상디자인 김경인, 분장디자인 최유정. 2만~5만원. 명동예술극장. 1644-2003

한편,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난 이중섭(1916~1956)은 한국 미술사의 찬란한 빛과 같은 작가였다. 또 타계 후에도 위작 사건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작가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았다.

총 300여 점으로 알려진 이중섭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재는 어린이, 소, 가족, 물고기, 게, 달과 새, 연꽃, 천도복숭아 등 우리의 전통적인 소재들이다. 특히 이들 소재 외에 소재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반복적으로 그렸으며, 때로는 복합적으로 보여주었다. 또한 이러한 소재들은 다양한 기법과 매체로 표현됐다.

이중섭을 대표하는 작품의 소재는 아무래도 '소'라고 볼 수 있다. 통영에서 보낸 시절 선보였던 '소' 연작은 이중섭 작업의 백미로 꼽힌다.

#길떠나는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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