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최장수 총리 베를루스코니 사임

유럽
베를루스코니, 시민들 환호에 "매우 씁쓸";몬티 거국내각, 이르면 내일 오후 출범

이탈리아 최장수 총리였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75)가 12일 오후(현지시간) 공식 사임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이날 하원에서 경제 안정화 법안이 통과된 직후 조르지오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대통령을 만나 사임을 표명했으며,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이를 수용했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1994년 정계에 입문한 언론재벌 출신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17년의 정치경력 중 10년 동안 3차례 총리를 지냈다.

재임 중 온갖 성추문과 비리의혹이 끊이지 않았던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이날 하원 표결 직후 관저에서 마지막 내각회의를 주재하고 나폴리타노 대통령에게 사임 의사를 밝히기 위해 승용차를 타고 출발할 때 군중은 '어릿광대(buffoon)'라며 야유를 보냈다.

이날 밤 로마 시내에서는 베를루스코니에 반대하는 수천명의 군중이 사임 소식이 알려지자 일제히 환호했다.

이 광경을 본 베를루스코니는 측근에게 "매우 씁쓸하다"고 말했다고 이탈리아 뉴스통신 안사(ANSA)가 전했다.

베를루스코니의 뒤를 이어 이탈리아 경제개혁을 이끌 총리로는 유럽연합(EU) 경쟁담당 집행위원을 지낸 마리오 몬티(68) 밀라노 보코니대학 총장이 유력하다.

경제위기를 타개할 중립 성향의 관료 중심으로 새 내각 구성을 준비 중인 몬티 거국내각은 이르면 13일 오후 또는 14일 오전 출범할 예정이다.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자유국민당(PdL)은 이날 총리의 사임 직전 성명을 통해 몬티 거국내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보수 북부연맹이 반대하고 있지만, 최대 정파인 자유국민당이 지지하고 나섬에 따라 몬티 내각 출범은 중대한 문턱을 넘은 것으로 평가된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지난 8일 2010년 예산지출 승인안 표결에서 과반 확보에 실패한 사실이 확인되자 유럽연합(EU)에 약속한 경제 안정화 법안이 통과되는 대로 사임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사임은 지난 11일 상원에 이어 이날 하원에서도 연금 개혁과 일부 국유재산 매각 등의 내용을 담은 경제안정화 방안이 찬성 380표 대 반대 26표, 기권 2표의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가결된 데 따른 것이다.

경제안정화 방안은 유로존 3위의 경제국 이탈리아가 1조9천억 유로에 달하는 정부부채를 줄이고 균형재정을 회복하기 위해 ▲경기 부양을 위한 세금 감면 ▲2014년까지 150억 유로 상당 국유재산 매각 ▲2026년까지 연금 지급연령 67세로 상향 ▲노동시장 유연화 등을 추진하는 내용이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국채 금리 급등에 따른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정치 리더십 교체의 속도를 높이고 있으며, 여야 정치인들에게 눈앞의 작은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국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해달라며 비상 거국내각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나폴리타노 대통령은 13일 각 정파 대표들과 만나 새 내각 구성 문제를 협의할 예정이다.

헤르만 반 롬푀이 EU 정상회의 의장 등 EU 수뇌부와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몬티 내각을 지지하고 나섰다.

그러나 의회를 통과한 경제안정화 방안에는 연금 지급시기 연기와 노동시장 유연화 등 노동계와 서민들의 희생과 양보를 요구하는 사안들이 포함돼 있어 비상 거국내각의 경제개혁 실행 작업에는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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