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누가복음 7:36~50
'수건으로 머리를 가리고 긴 옷으로 신체를 가린 여성들'이라고 하면 쉽게 중동 여성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온 중동지역 여성의 복장이었다. 예로부터 그 지역 사람들은 여성의 머리카락에 성적인 의미를 많이 부여했다. 시스루 옷이 판을 치는 오늘날에는 참 웃지 못할 이야기일지는 모르나 남자나 여자 모두 헐렁한 옷으로 다 둘러 노출을 꺼리는 중동사회에서는 여성의 신체에서 가장 노출 빈도가 높은 머리카락, 목소리, 다리와 같은 부분들이 남성의 성적욕구를 자극시킨다고 생각하였다. 특히 여성이 남에게 머리카락을 모두 드러내 보이는 것은 오늘날로 따지면 자신의 섹시함을 보이는 것으로 매우 부끄러운 일이었다(반대로 현대 우리사회는 섹시함을 자랑처럼 여긴다)
이사야 3:23절에서는 여인들에게 내리는 징계가 "손거울과 세마포 옷과 머리 수건과 너울을 제하시리니"라는 말로 표현되었으며 고린도전서 11장에서 사도바울이 여성들에게 수건으로 머리를 가릴 것을 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런 문화적 배경에 의해서 권장한 것이다. 이런 것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서 가톨릭에서는 아직도 미사 중에 여성들이 수건을 머리에 얹고 있으며 어머니 하나님을 부르짖는 하나님의 교회라는 곳에서는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얹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새 언약이라고 믿는 일까지 벌이고 있다.
중동지역에서는 이것이 오랜 시간을 지나오면서 종교적인 요소로 편입되어 신실한 이슬람 여성이라면 머리에 히잡을 두르는 것을 강요한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어떨까? 일부 유대여성들도 머리를 가리는 것을 철저히 지킨다. 현대의 유대인들을 분류하자면 주로 세 부류로 분류한다. 세속적 유대인, 정통 유대인, 극정통파 유대인이 그들이다. 종교에 별로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유대인들이 있는데 이들은 세속적 유대인들이다. 반면 겉으로는 여느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지만 정결법에 따른 음식만 먹는다던가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며 여러 종교적 의무들을 잘 지키며 살아가는 자들을 바로 정통 유대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외모나 생활 모든 것을 철저하게 율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종교인들이 있는데 이들을 가리켜 극 정통파 유대인(Ultra-Orthodox Jews)이라고 부른다.
예루살렘 성에서 북서쪽으로 몇 분만 걷다 보면 메아쉐아림이라는 마을에 들어서게 되는데 이곳은 극정통파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그곳 사람들은 되도록 현대 문명을 지양하고 외부와는 전혀 구별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곳을 방문하면 과거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어떻게 대했는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정결'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유대 율법을 절대적 원칙으로 여기며 모든 삶에 적용시키며 살아간다. 흔히들 매체를 통해서 여름철에도 검을 털모자와 코트를 입고 있는 유대인들을 보았을 것인데 바로 그들이 극 정통파유대인들이다.
이곳에서 사는 여성들도 대부분 상의만 블라우스와 같은 것을 입을 뿐 머리에 스카프를 두르고 치마는 검정색 긴치마를 둘러 노출을 최소화시킨다. 신앙이 두터운 여성들은 자신의 머리를 짧게 깎거나 밀기도 한다. 이는 자신의 정숙함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한때는 정통 유대 여성들 사이에서 짧은 머리를 가리기 위해 가발이 유행하던 시기도 있었다. 메아쉐아림을 방문할 때는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복장을 조심해야 한다. 관광객이라고 예외는 없다. 만일 관광객들이 짧은 옷을 입고 이곳을 방문했다가는 험한 꼴을 당하기가 쉽고 심할 경우 바지 입은 여성에게도 위협을 가한다. 그래서 마을 곳곳에는 '정숙하지 못한 차림새를 한 여성은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라는 경고문이 걸려있다.
지금이야 이런 기준이 한 특별한 장소에서만 나타나지만 과거 이스라엘에서는 온 나라에 적용되는 불문율이었다. 그런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은 매우 고단했고 편협한 대우를 받기가 쉬웠으며 삶의 위기에 봉착할 때가 많았다. 당시엔 여성들이 사회적 생활을 할 수 있는 문이 철저하게 닫혀 있는 사회였기 때문에 외부로 노출된 여인의 부정적인 면들은 주로 성적 부도덕과 관련되어 나타났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주인공 여성도 죄인이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에서 등장하게 되는데 이 여성도 아마 이전의 삶에서 성적인 실수를 저지르거나 매춘업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선 오늘의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36절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눅7:36)
36절은 간략한 기록이지만 우리는 그 한절을 통해서 본 사건의 서두를 찾아볼 수 있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초청했다(본문의 헬라어 원문을 직역하면 '바리새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말로 해석된다). 예수님께 적대적인 감정을 품고 있는 바리새인의 무리가 있었고 그들은 한 사람을 내세워 예수님에게 모욕을 주고자 계획한 것이었다. 전통을 종종 무시하는 발언을 하고 예수님 자신을 선지자에 빗대서 하신 말씀들과 대중들의 폭발적인 반응은 바리새인들의 심경을 건드리기에 충분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공개적인 망신을 주기 위해 예수님을 식사자리에 초대했다. 이미 불순한 의도가 있었던 것을 예수님께서도 아셨겠지만 예수님은 개의치 않고 그 식사자리에 참석하신다. 그곳에서 만나야 하는 한 여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36절의 후반부는 단순하게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앉다 라는 말은 '기대어 눕다'라는 말로 유대인들이 음식 먹을 때에 가지는 자세를 뜻하는데 당시 유대인들에겐 이렇게 식사 자리에 기대어 눕기까지 일련의 절차들이 있었다.
손님이 집에 들어오게 되면 제일 먼저 그 손님이 손과 발을 씻을 수 있는 물을 내온다. 흙먼지가 날리는 환경에서 샌들을 신었던 발이 매우 지저분했기에 손님이 씻을 수 있는 물을 내오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기본적인 관례였다. 손님이 손과 발을 씻은 다음 주인은 손님을 반갑게 맞이한다. 그것은 바로 서로 입을 맞추는 인사인데 이것은 키스라기 보다는 서로의 볼을 어긋 맞대며 하는 중동의 정통인사법이다. 주로 교차형식으로 두 세 번씩 주고받지만 아주 반가운 사람을 맞을 때는 여러 번에 걸쳐서 볼을 맞댄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는 때론 손에 입을 맞추기도 하는데 이는 스승에 대한 존경의 의미를 표하는 것이다. 중동에서는 인사가 매우 중요하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 것은 서로간의 적대감이 없이 상대방을 환영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손님을 환영하는 마지막 순서로 올리브오일을 제공하는데 머리에 올리브 기름을 바르는 것은 흙먼지로 뒤집어 쓴 머리에 윤기가 흐르게 하고, 지친 심신을 풀어주며, 항균작용 역할을 해주는 것이었다. 올리브 기름이 흔한 중동지역에서는 당시 손님에게 올리브기름을 제공하는 것이 접대관례였다.
이 모든 것이 식전순서였고 이것을 마친 후에 손님은 식탁에 기대어 누웠다. 주인은 손님에게 이런 것들을 제공함으로 자신이 손님을 환대하고 있음을 보였으며 손님은 그런 환대를 받음으로 자신의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새인은 이런 과정을 모두 생략했다(44~46절). 그는 이런 과정을 의도적으로 생략함으로 예수님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귀빈을 모시는 식사는 사실상 마을의 공개적 행사였다. 우리는 1세기의 공동체성에 대해서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데 그런 행사들에는 단순히 vip들만 참석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참석했다. 마을 주민들은 함께 식사하며 귀빈석에서 오고 가는 대화들을 들을 수가 있었다. 또한 잔치의 구석 쪽에는 당시 공동체에서 버림받은 취급을 받는 사람들, 흔히 율법에서 죄인들이라고 취급 받는 사람들에게까지 자리가 주어지곤 했다. 마태복음 22장에 나와있는 혼인잔치 비유에 그런 모습이 잘 드러나있다(마 22:10). 그런 일들을 통해 주인은 자신이 죄인들에게까지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랑삼아 널리 선전했던 것이다. 오늘 바리새인도 잔치를 주관하면서 그런 죄인들에게까지 자리를 내어주었다. 어쩌면 죄인들과 어울리는 예수님을 그들 앞에서 공개적 모욕을 주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 잔치에 참석한 부끄러운 손님 중에 한 여인이 있었다(그 여인은 어디서 갑자기 불쑥 등장한 여인이 아니다). 이 여인은 그 동네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죄인이었다(39절). 그러나 여인은 잔치음식을 얻어 먹기 위해 참석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그곳에 있었다.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37절)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여인이 잔치에 참석하기 이전부터 예수님을 알았고 예수님을 일부러 만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녀가 예수님을 알았던 것은 직접 만났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분께서 하셨던 말씀을 전해 들어서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여인이 예수님의 메시지, 즉 죄인들을 부르시고 구원하러 오셨다는 메시지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님 사역의 특징이자 전체적인 메시지였다. 여인은 그 사실에 너무 감격하고 감사했다. 당시의 사회적 규정에서는 자신의 과거로부터 헤어나올 길이 보이지 않았고, 평생 하나님의 버려진 자로 살아가야 할 운명인줄 알았는데 자신과 같이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오신 예수님의 존재가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녀는 할 수만 있다면 예수님을 만나 감사를 표현하고 싶었다. 여인은 자신이 소유한 것 중 가장 귀한 것인 향유 옥합을 가지고 왔고 잔치가 끝나면 기회를 틈타 그분께 드리려고 했을 것이다.
애초에 그녀는 예수님께 뿌리고자 향유를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을 예수님께 선물로 드려 그것을 팔아 유용하게 사용하시라는 의도에서였다. 그녀는 양손으로 향유를 가지고 잔치석상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예수님께서 식사하시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바리새인이 예수님을 초대해놓고 계획적으로 욕보이는 것이 아닌가? 다른 바리새인들도 옆에서 비웃음을 띠며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든 과정을 지켜본 이 여성은 너무나도 충격을 받은 동시에 존귀한 분이 바리새인과 같은 위선자들에게 자신과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이 너무나도 마음 아팠다. 하지만 자신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예수님 주변에는 그 마을의 유력자들로 가득했고 그녀는 그 사람들에게 말조차 붙일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상황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참을 수 없어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1.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지 않는 믿음을 보였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녀가 그곳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자신은 그들과는 다른 죄인이었고 숨어있어야만 하는 초라한 존재였다. 혹여 앞에 나섰다간 쫓겨나거나 마을에서 추방당할 수도 있었다. 맘 같아선 자신이 예수님의 발을 씻겨드리고 싶었지만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물도 없고 닦을 수건도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지나 상황을 돌아보기보다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찾았다.
그녀는 용기를 내어서 예수님께 다가섰고 예수님의 발을 만졌다. 그 만짐으로 자신의 부정함이 예수님께 옮겨질 수 있었지만 눈물로 가득한 그녀의 눈에는 흙 뭍은 예수님의 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예수님의 발에 묻은 흙먼지들이 그녀의 눈물로 씻겨지고 있었다.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씻어낸 그녀에겐 발을 닦을 수건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풀어헤쳤다. 머리를 풀어헤친 그녀의 모습은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오해를 살 수 있었다. 머리카락을 보인 행동이 타인들에게 부도덕한 모습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저 여자가 여기까지 와서 저런 불경스런 짓을 하는군!"하면서 비난했을 것이다. 이미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스스로 다짐했던 그 여인이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드러내는 것은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자신의 아픈 과거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의 눈에는 예수님의 발밖에 보이지 않았다.
여인은 예수님을 위해 움직이고자 했을 때 결코 자신을 돌아보지 않았다. 새로운 삶을 위해선 타인들의 평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당할 모욕은 예수님이 당하고 있는 모욕에는 비할 수 없는 것이었다. 자신의 낮은 신분과 평판 때문에 "내가 뭘 할 수 있지?"하며 낙심한 채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현재 할 수 있는지를 찾아 나선 것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약 2:17)는 말씀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은 반드시 행동이 수반되어야만 한다. 용기 있는 믿음의 행동을 위해선 우리의 시선을 우리 자신이 아닌 온전히 주님께 맞출 때만 가능하다. 흔히들 주님을 위해 자신이 꼭 성공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목사들은 자신이 큰 교회를 세워야지만 성공한 목회사역이라 착각하고, 성도들은 사회에서 높고 성공한 위치에 올라가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인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생각이며 인본주의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주님을 위해 거창한 밑그림을 그리기보단 나는 지금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는 것이 우선이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좋지 않은 평판을 얻을 수 있어도 우리는 주님의 더러워진 발을 씻기는 일에 주저함이 없어야 한다.
내일을 위한답시고 오늘의 삶을 주님께 인색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만일 갑작스런 사고로 죽는다면 결국 아무것도 주님을 위해서 드리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해버리고 말기 때문이다(눅 12:20). 자신이 가진 것이 없고 능력도 없다고 해서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또한 세상의 환심과 평판을 얻어야만 주님께서 기뻐하신다는 인본주의적 사고도 버려야만 한다. 여인은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주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만을 생각했다. 물 대신 눈물을 흘리고 수건대신 머리카락을 이용해 주님의 발을 씻겼다.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도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자 했던 여인의 모습은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무엇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2. 그녀는 남의 허물이 비난하기보단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믿음을 보였다.
바리새인의 원래 목적은 주님을 대중들 앞에서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계획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를 참이었다. 하지만 중간에 이 여인이 끼어들어 모든 계획을 망쳐버리고 말았다. 여인은 죽음을 각오하고 비웃는 무리들을 향해서 그런 불경한 일을 저지른다고 욕하거나 소리를 지를 수도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녀의 선택은 달랐다. 그녀는 바리새인이 하지 않고 생략한 모든 일들을 하나 하나 이루어갔다. 물이 없어 눈물로 대신했고 수건이 없어 머리카락으로 대신했으며 감히 주님과 인사를 나누기가 황송하여 그분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마지막으로 그분의 머리에 바를 올리브 기름을 부어드려야 했으나 그 역시도 그녀에게는 없었다. 순간 여인은 예수님께 드리려고 챙겨왔던 향유를 생각해냈다. 그녀는 향유가 담긴 유리병의 윗부분을 깨뜨려서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이 향유는 당시에 매우 귀한 것이었다. 향유 한병의 가격이 노동자 일 년치 봉급에 달했다(요 12:5). 이처럼 귀한 향유를 그녀는 주저 없이 예수님에게 부었다. 진한 향이 온 잔치석상을 덮음과 동시에 모든 상황이 역전이 돼버리고 말았다.
예수님이 식전절차를 받지 못해 수치를 당해야만 했던 상황에서 이제는 그 어느 누구도 받아보지 못한 영화로운 식전절차를 받게 된 것이다. 그 어떤 사람도 올리브 기름대신 그처럼 귀한 향유로 식전절차를 치르지는 못했으니 말이다. 오로지 예수님께서 받으시는 모욕을 참을 수 없는 데서 시작된 여인의 행동은 결과적으로 모든 것을 바꾸고 말았다. 그녀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영화로운 손님으로 높여 드렸다.
예수님께서 살아계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분을 향한 모욕은 오늘날도 계속되고 있다. 각종 이단들은 더할 나위 없고 대형교회의 세습, 무리한 건축, 목회자의 부도덕함 등이 우리 주님을 욕되게 하고 있다. 각종 기독교 기관들의 비리와 기독교인을 표방했던 유명 정치인, 전문인, 연예인들의 부정부패도 심화되고 있다. 기독교 연합단체들은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기에 바쁘다. 그런 문제들이 붉어질 때마다 너도 나도 돌을 던진다. 문제들을 SNS로 퍼나르고 잘못들을 꼬집으며 개혁의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온전한 개혁을 위해선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여인이 만약 잔치석상에서 바리새인들을 비난하면서 맞서 싸우려 했다면 상황은 어떻게 변했을까? 잔치석상은 아수라장이 되고 사람들은 그 여인의 이력을 들먹이며 오히려 예수님을 더 코너로 몰았을 것이다. 여인이 잘못된 자들에 대한 비난하기보다는 스스로 바리새인들이 하지 못한 일을 했을 때 예수님이 존귀해지셨던 것처럼 우리도 이제는 주님을 모욕하는 자들이 하지 못한 일들을 능히 우리가 감당함으로 주님께서 마땅히 받으셔야만 하는 영광을 돌려드리는 일이 중요하다. 부정부패에 대한 관리감독과 자성을 촉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만행을 보고 있는 우리 자신의 온전한 헌신이다. 남을 탓하면서 내 자신은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면 자신의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습이다(눅 6:42).
여인이 드린 향유는 물질적 가치를 넘어선 놀라운 헌신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한 개인이나 조그만 교회라 할지라도 주님을 향해 헌신하고자 한다면 하나님은 그 헌신을 귀하게 받으신다. 예수님께 향유를 드렸다고 하니깐 무턱대고 교회에 헌금 많이 하라는 식으로 해석하지 말자. 예수님께 향유를 드려야하는 대상에는 교회도 포함된다. 그녀의 향유는 원래 주님께 드리려고 가져온 것이었고 주님을 위해 더 올바르게 사용하였다. 우리도 주께 가지고 나온 것을 어떻게 사용해야 주님을 높여드릴 수 있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의 힘은 교회 예배에만 몰두하고 물질은 쓸데없이 교회 건물을 확장하고 부동산을 사들이고 잡다한 행사들에만 집중하고 있다. 교회의 이런 이기적인 모습은 주님께서 영광을 돌리기보단 오히려 세상으로부터 모욕을 불러일으킨다. 교회공동체는 예수께서 하신대로 어려운 이웃들과 고통받는 자들을 위해 헌신하고 도와주는데 앞장서야만 한다. 그 일들은 대형교회나 특정인만이 감당해야 할 일이 아니라 믿는 자라면 누구나 감당해야만 하는 일이다. 목숨을 내걸고 타인의 잘못을 비난하기에 앞서 목숨을 내걸고 주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다.
이런 점을 몰라서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나 쉽게 행하지는 못하는 이유는 주님을 위해 우리가 가진 값비싼 향유병을 깨뜨릴 수 있는 각오가 없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모욕 당하시는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지 못하는 소심함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 신앙생활은 결코 즐기는 것이 아니다. 희생이 없이는 결코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 주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선 누군가가 향유병을 깨뜨려야 하고 그것은 타인이 깨뜨리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내자신의 것을 깨뜨릴 때 가능하다.
3. 여인의 믿음은 자신의 죄사함을 확증한 믿음이었다.
여인이 예수님을 접촉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께서 그 여인을 뿌리치지 않은 것은 그녀가 어떤 자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선지자와 같은 비범한 인물이 아니라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다. 이후에 예수께서 바리새인 시몬에게 들려주신 '빚진 두 사람의 비유'의 요지는 명료했다. 그 여인만 죄인인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 시몬도 죄인이라는 것이다. 비유는 오백 데나리온의 빚진 자와 오십 데나리온의 빚진 자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액수의 차이만 있을 뿐 둘 다 상환능력이 없었으며 똑같이 탕감을 받은 것이다. 죄인 된 여성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바리새인은 자신이 탕감 받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왜 예수를 믿는가? 그리고 복음은 무엇인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죄의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서다. 우리 신앙의 출발은 우리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인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그 빚을 탕감 받았다는데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 상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은 '다 이루었다'인데 이 "테텔레스타이"(tetevlestai)라는 말은 '빚을 청산하다' '지불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요 19:30). 즉 모든 사람은 바로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빚을 탕감 받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신실한 종교적 생활을 한 바리새인이라 할지라도 그 또한 빚을 탕감 받은 한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이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사람임을 망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아니 수많은 자들이 교회에 나오는데 그 시작을 죄인식에서 출발하지 않는 자들이 너무나도 많다. 교회는 왜 예수를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 없이 여러 갖가지 부차적 이유만을 들어 사람의 수를 늘리려고만 노력한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과 생명의 진리는 가르치지 않고 오로지 성도들의 환심을 사고 마음만을 위로하고 세상적 교훈과 교양으로 강단을 가득 매워 신앙의 기초를 변질시키고 말았다. 어떤 자들은 복을 받을까 하는 무속적인 신앙으로, 어떤 자들은 인적 네트워크를 얻기 위해서, 단순한 심적위로를 받기 위해서 나오는 자들도 많다.
죄의식에서 출발하지 못하는 신앙은 온전한 신앙이라 할 수 없다. 당신이 수억 원의 채무를 지어서 도저히 갚을 길이 없어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 채무를 갚아줬다면 당연히 그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그 은혜를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그를 만날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그 일에 감사하고 있는지 인사할 것이며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예수께서 우리의 죄값을 치르시기 위해 얼마나 큰 희생과 사랑을 아는 순간 그분을 향한 걷잡을 수 없는 감사와 사랑이 시작된다. 우리가 그 사실을 알기 이전에는 결코 주님을 진실하게 사랑할 수가 없다.
예수님은 그 여인이 행하는 모든 일의 근거가 바로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에 대한 빚을 예수께서 탕감해주신 사실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우리의 신앙이 이 여인처럼 담대하지 못하고 희생적이지 못한 것은 바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탕감을 받은 죄인임을 인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줄 인식 할수록 우리는 그 주님의 은혜에 더할 나위 없는 감사를 표하겠지만 자신의 죄에 대한 인식이 없이 단순히 종교적 행위로 하나님께 자신의 할 바를 다했다고 여긴다면 우리는 바리새인 시몬처럼 예수님을 알아볼 수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그분을 모욕하는 일에 몰두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로마서 6:20에서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는 말은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달아 알아갈 수록 자신에게 넘치는 주의 은혜가 더욱 커져감을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께 나온 이 여인은 이미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이 죄가 사해졌음을 알았고 믿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믿음을 통해 예수님께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었고 그 믿음을 바탕으로 오늘 본문과 같이 담대한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우리는 좀 더 올바를 신앙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그 출발점은 우리가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지를 인식하는데 있다. 자신이 무가치한 죄인이라는 성찰 없이는 내가 왜 그분께 가야만 하는지 그리고 그분을 위해 살아야만 하는지를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죄 사함에 대한 확신 있는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사모하게 만들고, 그분의 모욕당하심을 슬퍼하게 만들며, 기꺼이 그분을 위해 헌신하도록 우리를 이끈다. 이제 주님을 위해서 나의 머리수건을 풀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