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내한공연

전시·공연
현악.목관.금관 3색 화음에 팀파니의 멋진 울림

우리는 진정한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들었다. 시원한 현악과 충실한 목관, 그리고 호방한 금관과 리드미컬한 팀파니의 한 방은 가슴 뛰도록 멋진 울림을 만들어냈다.

지난 9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의 연주는 과도한 감정 표현을 의도한 연주가 아니었음에도 음악을 듣는 이들의 가슴은 갖가지 감정으로 들끓었다.

음악회 전반부에 사라장의 협연으로 연주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협주곡에선 사라장의 열정적인 표현력과 굵고 풍부한 음색이 돋보였다.

3악장에서 템포가 다소 불안정하고 오케스트라와 앙상블이 좋지 않았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으나 언제나처럼 자신감과 확신 있는 태도로 음악에 몰입하는 사라장의 정열적인 연주는 청중의 마음을 고양시키는 힘이 있었다.

휴식 후 연주된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은 이번 음악회의 백미였다.

이 곡은 국내외 악단들이 매우 자주 연주해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의 연주로 구현된 차이콥스키 교향곡은 지극히 참신하고 매혹적인 음악으로 다가왔다.

선율의 달인이면서도 &#39;단순하게&#39;(semplice)라는 악상 지시어를 많이 사용했던 차이콥스키의 음악은 때때로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연주되곤 한다. 그러나 테미르카노프가 이끄는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은 지나친 템포 변화를 시도하거나 격정적인 소리를 내려 하기보다는 악보에 나타난 음표들을 충실하면서도 질서정연하게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연주는 마치 한 편의 소설로 느껴질 정도로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이는 지휘자 유리 테미르카노프의 음악적 통찰력과 상트 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단원들의 정연한 합주력에 힘입은 바 크다.

테미르카노프는 차이콥스키의 교향곡을 세심하게 이끌어갔다. 그는 1, 2악장을 부드럽게 연결해내며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냈으며, 주요 주제 사이를 연결하는 단순한 경과구에서도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개성과 아름다움을 끄집어내며 각 악절 하나하나를 의미 있게 다듬어냈다.

두 대의 클라리넷 연주로 문을 연 1악장 서주에서 클라리넷의 어두운 음색은 현악의 우울한 여운과 극적인 휴지부에 힘입어 운명적인 느낌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차이콥스키는 클라리넷이 연주하는 멜로디를 &#39;운명의 테마&#39;라 칭했으며 각 악장마다 그 모습을 바꿔 등장시켰다. 운명의 테마가 나타날 때마다 테미르카노프의 지휘봉은 의미심장하게 움직였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더욱 강렬하게 에너지를 뿜어냈다.

특히 2악장에서 두 차례 나타나는 운명의 테마에서 폐부를 찌르듯 강렬한 트럼펫 연주와 트롬본과 튜바의 악마적인 음향은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번 공연에서 금관악기의 활약은 특히 돋보였는데, 이는 금관악기 자리배치의 영향도 있는 듯했다.
보통 금관악기들은 목관악기 바로 뒤에 배치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번 무대에선 호른과 트럼펫, 트롬본 등을 무대 오른쪽 뒤에 따로 배치하여 금관악기군의 소리는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났다. 또한 강렬하고 개성적인 음색을 지닌 제1트럼펫 주자를 보강해 결정적인 클라이맥스에서 솔로 연주를 하거나, 적절한 순간에 호른 주자들이 악기의 벨(관악기에서 나팔 모양의 끝 부분)을 들어 올려 연주함으로써 연주효과를 극대화한 점도 눈에 띄었다.

전반적으로 현악 연주자들의 운궁법(활 쓰는 법)은 속도감이 있으면서도 현을 무리하게 누르지 않아 매우 날카롭고 싸늘한 음향을 만들어냈고, 클라리넷과 바순의 어두운 음색이 강조된 목관악기군은 그 어느 오케스트라보다도 충실하면서도 개성적인 음색으로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극적으로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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