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언어가 다른 타인종, 타민족들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공통 분모 아래 하나될 수 있을까?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 서로의 같음을 확인하는 것"이라는 말대로라면 한 교회를 사용하며 민족별로 예배드리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서로를 한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파사데나장로교회에는 백인, 한인, 라티노가 공존한다. 이 교회는 지난 140년 역사동안 파사데나를 지켜 온 백인들이 주를 이루었다. PCUSA 교단의 총회장도 4명이나 배출했고 성도 수가 무려 5천명에 육박하던 대형교회였다. 그러나 전반적인 미국교회의 감소 현상에 따라 이 교회의 성도도 점차 줄기 시작했다. 교회 측은 "다민족 목회"라는 새로운 목회 패러다임 아래 타민족들을 교회로 초대했고 10년 전 성현경 목사가 파사데나장로교회의 한인 목회를 위해 이 교회의 지붕 아래서 개척을 시작했다.
10년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성 목사 부임 당시 350명이던 백인 회중은 이제 150명 가량으로 줄어 들었다. 반면 한인들은 500명으로 늘었다. 한인 유입 인구가 적은 파사데나에서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성도 대부분이 이 교회에서 새롭게 세례받은 성도란 점이다. 참, 한가지 더 있다. 불신자 때부터 세례받기까지 성 목사에게 훈련받은 20대, 30대 한인 장로들이 당회원이 되어 타민족들과 함께 전체 파사데나장로교회를 이끌고 있단 점이다.
수평이동 없이 이뤄진 청년들의 부흥 스토리를 성현경 목사가 털어 놓는다. 그러나 인터뷰에서 정작 그는 '부흥'이란 단어이나, '청년 목회'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백인교회의 감소 현상에서 미래 한인교회의 감소 현상을 미리 본다", "헌금이 감소되지 않고 재정적으로 교회가 잘 운영된다고 안심하면 그 말은 곧 청년들이 빠져 나가고 있는 현상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미국교회보다 더 커졌다고 자랑하기보다 그들이 한국에 뿌린 신앙의 씨앗이 지금 거두어져 그들을 섬기고 있다고 본다"는 말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장로교회는 민주적 교회입니다. 민주적 절차를 위해 회중들의 대표가 당회를 구성해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파사데나장로교회에는 백인회중, 한인회중, 라티노회중이 있습니다. 이들은 단순히 한 교회 건물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한 교회에 속한 하나의 회중입니다. 예배는 언어별, 문화별로 드리지만 한 당회 아래 그 당회와 자신이 속한 회중을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이 참여해 교회를 함께 이끌어 갑니다. 이들이 파사데나장로교회의 다문화, 다인종 사역을 대변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인종, 어느 민족이 위에 있고 밑에 있다는 개념이 없이 모든 회중이 수평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많은 한인교회들이 다민족 목회를 시도했지만 한국문화에 기반한 수직적 관계성을 극복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었지요. 이런 모델을 시도하신 계기가 있나요?
저는 신학교를 다니며 "한인교회의 게토화"를 고민했습니다. 미국에 이민 온 한인들이 한인교회를 통해 위로받고 은혜를 경험하고 신앙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한인교회가 미국 사회와는 동떨어져 문화적 게토화되어 버리면서 한인교회가 한인들로 하여금 미국의 구성원이 되지 못하게 가로막는 장벽이 되어 버렸습니다. 처음 온 사람들이 미국에 정착하게 도와 주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미국에 적응하는 것은 오히려 막는 이중적인 문화장벽이 한인교회에 있습니다.
실제로 80년대 말, 90년대 초, 한인교회들에도 다민족 교회 사역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저는 한인교회에서 EM 사역도 해 봤고 미국교회에서 아시안 미니스트리 디렉터도 해 보면서 여러가지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백인이건, 한인이건, 다 좋은 사람들이고 훌륭합니다. 그런데 서로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 갈등이 빚어집니다. 왜일까요? 함께 같은 테이블에 앉아서 진지한 대화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교회의 신앙에 있어서 내면화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시에 공동체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소신 아래 다민족 목회에 비전을 갖게 됐습니다.
-어떻게 파사데나장로교회의 한인사역을 시작하셨습니까?
이 교회는 140년 역사를 가진 유서깊은 교회입니다. 그러나 현재 대다수의 미국교회들이 백인들은 교외로 이사가고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크고 강했던 옛 모습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이 교회 역시 40,50년대, 미국사회 최고의 지성들과 일꾼들이 섬기던 교회였습니다. 성도도 5천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곳에 부임했을 때 성도는 350명으로 줄어 있었습니다. 이런 도시공동화라는 현실적 문제에 이 교회는 다민족 목회를 돌파구로 찾았습니다.
마침 저는 교회 개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PCUSA 교단에서는 교회를 개척하고자 하는 제 뜻을 알고 파사데나장로교회를 연결해 주었습니다. 이 교회는 다민족 목회를 시작할 사람을 찾고 있었고 저는 개척을 원했으니 이것이 공통분모가 된 것입니다.
-파사데나장로교회라면 다민족 목회와 청년 목회로 특징지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다민족 목회는 공통분모를 늘려 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로 하나된다는 것이 어느날 갑자기 "시작"하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다문화라 해도 우린 한국적인 것이 편하고 좋습니다. 우리는 민족별로 각자 예배하고 자율적으로 사역합니다. 그러나 서로를 존중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라티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도 그렇습니다.
민족 간의 차이는 물론 큽니다. 그런데 민족 간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가 교회 안에 존재합니다. 바로 세대 간의 차이입니다. 예를 들면, 백인 자녀들과 한인 2세 자녀들의 문화 차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문화 속에서 같은 노래를 부르고 함께 살아 갑니다. 그런데 50대 한인 어른과 10대 한인 청소년의 문화 차이는 어떻습니까? 이런 세대 차이가 문화 차이보다 커졌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다민족 목회가 단순히 민족 간의 차이를 극복하자는 차원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저는 한국교회에서 청년들의 이탈을 목격했습니다. 한국교회의 문화 가운데 성경적이기보다는 유교적인 것이 많습니다. 당회가 중요하긴 하지만 당회장 중심의 문화나 한국교회의 평신도-집사-장로 식의 줄서기 문화는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청년들이 볼 때는 마치 질식할 것 같은 문화입니다. 교회에 오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한국이 서울시장 선거를 통해서 받는 충격은 무엇입니까? 너는 나와 같은 한국인이고 사용하는 언어도 같고 머리카락 색깔도 같은데 어떻게 나와 이렇게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느냐? 이것에 대한 충격입니다. 소통의 방식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우리가 다문화라고 하면 백인, 라티노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우리 자체가 빠른 사회 변화를 겪으며 다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민온 지 20년된 분이 다르고, 갓 이민온 분이 다르고, 유학생이 다릅니다.
-그런데 파사데나장로교회는 젊은이들이 많은 교회로 유명하지요?
공존의 문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50대, 60대 장로들이 구성하는 당회가 청년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연륜있는 분들이 가진 장점이 많지만 전체를 아우르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을 리더십으로 포함시켜야 합니다. 그리스 유대인과 히브리 유대인이 갈등할 때 일곱 집사를 세우는데 이 일곱 집사 모두 그리스 유대인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 당시부터 20-30대가 주류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이 장로가 됐습니다. 남의 교회에서 50-60대 장로를 빌려 올 수도 없고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훈련받고 성장한 젊은이들을 장로로 세웠습니다. 우리 교회는 20대에서 40대가 90% 정도를 구성했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성장하면서 50-60대도 늘어나 지금은 40대를 기준으로 해서 40대 이하가 6, 40대 이상이 4 정도 됩니다.
청년들이 무엇을 하고 싶을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안수집사를 찾아 가서 이야기 해야 합니다. 그러면 안수집사가 장로에게 말합니다. 그럼 장로가 당회에서 이것을 이야기 합니다. 청년들의 의견이 잘 반영될까요? 우리 교회는 20대 장로가 당회에서 청년들의 요구 사항을 말합니다. 30대, 40대 장로들이 더 잘 반응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세대, 모든 세대를 이끌려면 그들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당회가 구성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국장로교단의 원리입니다.
-청년들이 대형교회로 간다는 이야기는 들었어도 개척교회로 몰렸다니 놀랍군요.
제가 개척을 원했던 것은 새로운 문화의 교회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미 시스템이 잡힌 교회에 청빙을 받았다면 이런 일들을 시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기성교회를 바꾸려다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그럴 바에야 저는 개척이라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성교회를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교회들은 자신들의 전통을 따라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목회자가 꿈꿀 자유는 있다고 봅니다. 여태까지 미국교회에 큰 영향을 준 릭 워렌이나 빌 하이벨스는 모두 새로운 것을 원했고 그래서 개척을 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개척을 했기 때문에 불신자들을 전도하는 데에 치중했습니다. 저는 청년 목회보다 전도 목회를 했습니다. 전도를 열심히 하다 보니 청년들이 전도된 것입니다. 새롭게 전도된 청년들은 솔직합니다. "목사님 설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처럼 직격탄도 날아 옵니다. 이들은 눈치를 보지 않고 말합니다. 다음 세대를 목회하려면 예의바른 목회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소통하는 목회를 해야 합니다. 소통은 내 중심이 아니라 타인 중심입니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아닌 것은 빨리 고쳐야 되는 목회입니다.
-꿈꿀 자유는 있지만 그런 꿈을 꾸는 목회자는 드물 듯 합니다.
목회가 무엇인가? 저는 "목회란 나에게 주신 길을 찾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목회는 제게 있어서 저의 구원입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하나님의 저를 향한 뜻과 구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교회 부흥도 그렇습니다. 저는 성도들이 제 목회의 성공을 도와 주기 위해서 우리 교회에 온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은 모두 개개인의 구원을 위해서 교회에 오는 것입니다. 저는 큰 교회 부목사로 가는 것이나 큰 교회에 청빙받아 가는 것이 문제의 초점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르심이 자신의 구원을 확증하는 것인지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개척을 한 것은 제가 더 고민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이 절 그렇게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행복합니다. 저는 성도가 20명일 때도 행복했고 50명일 때도 행복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월급을 제대로 받아간 적이 없고 받더라도 대부분 사역비로 써야 할 지경이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지금은 오히려 기성교회화 될까 고민이 늘었습니다.
-전도 목회란 말이 참 와 닿습니다.
우리 교회는 세례가 많은 교회입니다. 불신자가 전체 성도의 80-90%였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 드릴까요? 믿음이 좋은 사람 옆에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 있고 불신자 옆에는 불신자가 있습니다. 한명 불신자를 전도하니 그 옆에 있던 불신자들이 전도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이들이 믿음을 갖게 되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이들만 2백명이 넘고, 교회를 떠났던 분들이 우리 교회에서 다시 회복되는 사례도 많습니다. 우리 교회의 정체성은 "불신자를 위한 교회"입니다.
파사데나는 목회하기 어려운 곳이라 합니다. 일단 한인들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와 함께 개척하신 분들이 한 열 분 정도 되는데 모두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기존 교회의 스타일을 답습했기 때문이라 봅니다. 그런 스타일을 가진 큰 교회들이 이미 있었기에 경쟁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한인들이 급속히 성장한 것에 대해서 파사데나장로교회 측의 반응은 어떤가요? 일반적으로 미국교회에서 보는 한인교회의 시선이 썩 고운 것만은 아닐텐데요.
백인에 비해 성도 수는 우리가 3배이고, 헌금도 2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 이 교회의 주인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것으로 주인행세를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고 또 그렇게 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미국교회도 이런 변화에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아마 그들이 느끼는 것은 "Feel of Dying"이 아닐까 합니다. 자기들은 줄어들고 있는데 우리들은 청년들이 커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저는 말합니다. "우리의 역사를 봐라. 한국은 너희들이 선교한 나라다. 너희의 선조들이 뿌린 열매가 지금 이렇게 자라서 파사데나에서 꽃피고 있다. 우리는 외부에서 온 외계인이 아니라 너희의 열매들이다"라고 말입니다.
미국교단은 소속 한인교회의 분열이나 갈등에 대해서 경험하고 들으면서 큰 트라우마를 겪었습니다. 이런 충격들로 인해 미국교단에서 보는 한인교회에 대한 인식을 썩 좋지는 않습니다. 법을 지키고 회의하고 의사소통하는 문화가 한국교회 안에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우리는 기다림의 미학을 배웠습니다. 기다리고 인내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도 많은 고비를 겪었지만 서로를 배워가는 기간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한인교회가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기본을 익히고 그 위에 우리의 창의성과 열정을 더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목회적 가치로 보면 가난한 교회였습니다. 젊은이들이다 보니 헌금을 제대로 했겠습니까? 젊다 보니 여기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타주로 떠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재능으로 무형의 헌신을 했습니다. 우리가 목회자로서 사역의 가치를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5천명 되던 미국교회도 지금 저렇게 줄어 들었습니다. 헌금은 여전히 잘 나옵니다. 헌금은 경제적 기반이 있는 나이든 분들이 내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모습에서 한인교회, 한국교회의 미래를 봅니다. 20대, 30대가 떠나 버린 교회들, 헌금은 여전히 잘 나옵니다. 그렇다고 안심하며 “잘 되고 있다”고 하면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있을까요? 다 함께 고민해야 할 때가 이미 왔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