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멘토가 있었더라면..' 하는 바램 이제는 교회가 채워춰야

[리뷰] 이 시대 수많은 '완득이'에겐 멘토가 필요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작년 크리스마스이브에 나온 책이 1년이 다 되어가도록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0개월 만에 100만부를 넘었으니 폭발적인 반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그만큼 이 시대의 청년에게 멘토가 필요하다는 반증이 아닌가 싶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는 청년실업대란에 취업하려면 실력에 외모까지 스펙으로 쌓아야 하는 이 시대의 청춘에게 좌절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렇기에 이들은 그가 저에게도 멘토가 되어줄까 싶어 책을 통해, 영화를 통해 나타난 멘토도 꼭 붙든다.

멘토와 멘티의 이야기라는 컨셉으로 지난 달 20일 개봉한 '완득이'도 이달 7일로 250만 관객을 돌파하며 3주 연속 예매 순위 1위를 기록했다.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먼저 손 내밀어 이끌어주는 멘토에 대한 소망, 바람에 대한 기대심리를 <완득이>는 등장인물 동주를 통해 충족하게 해주었다.

극중 고2인 완득이의 담임선생으로 나오는 동주는 학생들과 격의 없이 친구같이 편하게 소통한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에 있는 완득이의 사정을 알고 그 마음을 헤아리고 도우려고 한다. 그리고 완득이와 소통하려 한다.

또한 동주는 가난한 자, 소외된 자의 편이다.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가 이주노동자들에게 피도 눈물도 없이 매정하게 대했던 것을 보아서인지 동주는 이주 노동자의 편이 되었다. 그래서 동주는 동네의 작은 교회를 중심으로 이주 노동자들을 모으고 그들을 돕는 일도 병행한다.

그리고 영화에서 동주는 늘 완득이와 가까이에 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둘은 서로의 목소리가 들리는 거리에 있다. 동주의 집은 완득이가 사는 집의 옆집 옥탑방이다.

지금의 20-30대는 SNS로 수백, 수만의 익명의 사람과 네트웍을 가진 온라인의 세대이다. 또한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세대라 타인과 거리를 두고 자신의 세계를 사는 것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기에 더욱 얼굴과 얼굴을 마주보는 오프라인상의 만남, 살과 살이 맞닿는 따뜻하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멘토를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무튼 영화 안에서 완득이와 동주의 물리적인 거리는 가까웠다. 하지만 완득이에게 동주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다.

'당신이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든 꼽추 아버지를 두어 보셨나요? 꼽추로 할 수 있는 일이 카바레에서 춤추는 것 밖에 없는 아버지, 키가 작아 자신을 어른으로 여기는 사람은 지적장애인인 민호 삼촌뿐인 아버지를 두어 보셨나요? 18살이 될 때까지 어머니가 누군지도 모르고 한번 보지도 못하고 살아 보셨나요?'

완득이의 속마음은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사회 구조상 꼽추 아버지가 할 수 있는 것은 캬바레에서 춤추는 것뿐이었다. 그 캬바레가 문 닫고는 시장에서 광대 분장을 하고 춤추고 노래하며 채칼을 파는 그런 아버지의 자식인 것을 바꿀 수 없는 현실은 고스란히 완득이의 몫이다.

그래서 완득이는 '얌마, 완득아'하며 거칠게 관심을 표현하며 자꾸 다가오는 동주에게 "선생님, 나한테 왜 이래요?"하며 반감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완득이는 동네 작은 교회에서 '동주를 죽여 달라고' 기도한다.

가족 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던 완득이가 그나마 마음을 열고 입을 연 존재가 '하나님'이었다. 그리고 '자매님'하며 자기에게 인사하는 교회에서 만난 외국인 노동자 '핫산'도 교회에서 만난 새로운 세계였다.

이어 완득이는 동주를 통해 어머니를 만난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필리핀 국적을 가진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18년 만에 어머니를 만난 완득이는 필리핀인인 어머니도, 필리핀인 어머니를 둔 자신도 담담히 받아들인다.

그렇게 완득이의 세계에 어머니가 함께 하니 더 따뜻해졌다. 그 이후 영화는 완득이가 자신의 꿈과 만나게 해준다. 교회에서 자주 마주치던 '핫산'이 킥복싱을 하다 얼굴이 멍이 들어 와서는 완득이에게도 킥복싱을 해보라고 권한 것이 시작이었다. 그리고 꿈을 찾은 완득이에게 같은 반 일등인 윤하가 다가오며 그의 세계는 좀 더 밝아진다. 또한 자율학습을 빼주며 그의 꿈을 지원해주는 동주에게도 완득이는 마음을 더 열게 된다.

한편 완득이는 동주가 완득이가 가끔 가 기도하던 그 교회 전도사인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그리고 동주는 그 교회를 전 재산을 털어서 샀다고 했다. 자기 소유를 팔아 보화를 사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말이다.

'나에게도 이런 멘토가 있었으면...'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동주가 교회 전도사라는 설정이 놀라웠다. 영화는 요즘 시대 누군가 좀 말해주었으면 하는데 아무도 말하지 않던 걸, '왜 못해?' 하듯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말해 주었다. 그것이 작가의 '교회'에 대한 견해인지, 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영화 마지막에 동주는 동네 주민을 대상으로 교회에서 다문화 가정 문화센터를 연다. 그날 완득이의 꼽추 아버지, 지적 장애인인 민구 삼촌, 예민한 욕쟁이 동네 화가, 화가의 여동생인 무협지 작가 '호정', 동주, 완득이, 완득이의 친구 윤하까지 각자의 재능을 살린다. 완득이 아버지와 삼촌은 춤을 가르치고 화가는 벽화를 그리고 윤하는 한글을 가르치는 등 영화는 그 자리를 빌어 차별 없는 신나는 세상을 보여준다.

그러고 보니 산동네의 교회가 의미하는 것은 가난한 동네의 교회만은 아닌 것 같다. 그 설정은 제자들에게 '숨겨지지 못할 산 위에 있는 동네',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신 시대를 초월한 영원한 멘토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시켜 준다.

다행히 영화 <완득이>는 분명 수많은 트위터리안의 마음을 밝혀 주었고 동주는 숨겨지지 못할 멘토로 인정받았다. 이제는 한국교회의 차례다.

#완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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