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계열사 70곳, '의문의 대출' 3747억

사건·사고
편집부 기자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계열사들이 금융권으로부터 4000억원에 육박하는 거금을 빌린 것으로 드러나면서 석연찮은 대출 과정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금융권이 부실한 담보를 대가로 거액의 대출을 제공한 배경에 정관계 로비나 리베이트 등이 있었을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이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의 계열사 70곳은 42개 금융사로부터 3747억원을 빌렸다. 1997년 3000억원에 이르는 부도를 내고 회생절차를 통해 2000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탕감받은 세모그룹이 또다시 금융권으로부터 4000억원에 달하는 대출을 받은 것이다.

문제는 이들 금융사들이 유씨 일가 계열사에 수천억원대 대출을 해주면서 완전자본잠식 상태인 회사의 자산건전성을 '정상'으로 분류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특혜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우리·산업·기업·경남銀서 2645억

유병언 일가 계열사와 관계인들이 금융권에서 빌린 돈 3747억원 중 90% 수준인 3033억원은 13개 은행에서 제공됐다. 특히 우리·산업·기업·경남 등 4개 은행에서 이뤄진 대출은 2645억원에 이른다.

우리은행이 가장 많은 926억원을 빌려 줬고, 뒤를 이어 산업(611억원), 기업(554억원), 경남(544억원), 하나(87억원), 농협(77억원), 국민(64억원), 신한(54억원), 외환(37억원)은행 등의 순이다.

은행권에서 제공된 대출은 대부분 용도대로 쓰여지지 않은데다 일부 담보의 경우 가치가 부풀려진 것으로 드러나 당국의 제재가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국민적인 불매운동의 대상이 된 세모 관련 계열사들이 법정관리나 파산절차를 밟게 될 경우 대출금 회수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권순찬 금융감독원 기획검사국장은 "유씨 일가의 금융회사 특혜대출, 금융회사 대출금 유용, 외화밀반출, 재산 해외도피, 회계분식,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일부 금융권의 부당 대출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권 국장은 "시설자금은 설비를 제공하는 업자에게 돌아가야 맞고, 운영자금은 기업의 일상적인 영업활동에 사용돼야 한다"며 "그러나 유병언 일가 계열사들은 관련 업자에게 자금을 보내지 않고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저신용 회사에 자금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은행 외에는 11개 상호금융사가 322억원(9.6%)의 대출을 제공했고, 여신전문회사(8곳), 보험사(3곳), 저축은행(1곳) 역시 유병언 계열사에 자금을 제공했다.

유병언 일가 계열사 중 청해진해운의 대주주인 천해지의 여신금액이 934억원으로 전체의 28%를 차지했다. 뒤를 이어 기독교복음침례회(515억원), 아해(249억원), 온지구(238억원) 순이었다.

관계인 중에서는 에그앤씨드의 대표이사인 이석환씨가 가장 많은 금액인 92억원을 빌렸으며, 장남 대균씨(69억원), 차남 혁기씨(35억원), 김혜경씨(27억원), 처남 권오균씨(15억원) 역시 금융사로부터 수십억대 대출을 받았다.

◇초과 대출·미래수익 부풀리기 '특혜'

문제는 42개 금융사가 유병언 일가 계열사에 대출해준 3700억원대의 대출이 부실 투성이라는 것이다. 미래수익성 과대평가, 한도초과 대출, 대출조건 미이행 방기 등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금감원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에 대출을 취급한 한 금융사는 담보를 받으면서도 중요사안인 청해진해운의 운항관리능력과 선박우선특권에 대한 검토는 하지 않았다.

또 기독교복음침례회가 자금잠식으로 은행대출을 받기 어려운 관계사 트라이곤코리아의 채무상환 지원을 위해 대출을 받는 것을 알면서도 자금용도 심사를 생략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담보가액을 평가할 수 없는 교회건물과 토지 등이 담보로 잡혔다.

이 외에도 완전자본잠식으로 부실징후 기업에 해당하는 관계사(트라이곤코리아 등)의 대출금 자산건전성을 '정상'으로 분류하는 등 부적절한 관리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이 외에도 대출승인조건이 이행되지 않았음에도 별도 조치가 이뤄지지 않거나 이자가 연체되는 상황에서 특별한 조치 없이 대출기한이 연장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발생했다.

또 유병언 계열사 하니파워에 대해 연체 중인 은행대출 8억2800만원을 대환취급하고, 은행(10.8%)보다 낮은 금리(8.8%)를 적용하는 한편 연체이자 3000만원을 감면해주는 일도 발생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회사와 임직원의 위법·부당행위에 대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검사과정에서 드러난 금융관행과 제도상 문제점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관계 로비에 겨눠진 '칼끝'

검찰의 칼끝은 '정관계 로비' 가능성에 겨눠져있다. 유병언 일가가 금융권에서 4000억원에 육박하는 대출을 받는 과정에서 거액의 리베이트가 오갔거나 정관계 로비가 이뤄졌을 수 있다는 판단이다.

세월호 실소유주 비리를 수사 중인 인천지검 특별수사팀은 유병언 전 회장과 인척관계인 A회장이 2008~2009년을 전후에 50여억원 어치의 고급 골프채 수백 세트를 구입한 정황을 잡고, 자금출처와 정관계 로비 관련성 등을 캐고 있다.

검찰은 A회장이 유 전 회장의 부탁을 받고 정관계와 금융계 로비를 벌인 것이 아닌 지를 파악하기 위해 골프숍과 A회장 자택 등을 압수수색해 회계장부와 골프숍 판매장부, 하드디스크 등을 분석 중이다.

검찰은 특히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정부가 지분을 소유한 우리은행 등이 유병언 일가 계열사에 거액의 자금을 빌려줬다는 점에서 '관피아'의 개입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금감원 기획검사국은 이와 별도로 유병언 계열사에 대출을 해준 국책은행들의 여신 심사 적정성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따져본다는 계획이다.

금감원은 이와 함께 유병언 일가 계열사들의 자금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금융권의 건전성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회사와 임직원의 위법·부당행위에 대해 강력한 제재조치를 취하겠다"며 "위법, 부당한 대출이나 당초의 대출목적과 달리 사용된 대출금에 대해서는 즉시 회수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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