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 차분하게? 뜨겁게?-한국교회 예배에 대한 역사적.신학적 고찰'을 주제로 열린 제34회 신촌포럼(대표 이정익 목사)에서 초대교회 예배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22일 오전 11시부터 신촌성결교회(담임목사 이정익) 아천홀에서 진행된 포럼에서 조기연 교수(서울신학대학교)는 '성결교회의 예배, 그 기원과 방향'을 주제로 발제하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가 원하셨던 예배와 그 말씀을 따라 진행된 예배는 초대교회부터 3세기까지, 기독교가 공인된 4~6세기까지 드려졌다고 보았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이 만든 예배의 변화와 19세기 북미대륙에서 출현한 새로운 예배의 긍정적. 부정적 결과를 제시하기도 했다. 또 19세기 북미 선교사들의 예배로부터 한국교회의 전통예배가 유래됐다고 말하며 1905년도 출판된 감리교 찬송가에 나타난 '공예배순서'가 오는날 한국교회의 예배형식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닮은 꼴이라고 입증했다.
조 교수는 "19세기 미국에서 생긴 예배는 예수께서 명한 예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종류의 예배였다"며 "광활한 대륙에 흩어져 교회도 목사도 없이 살아가던 유럽으로부터의 이민자들을 회심시키기 위한 대규모 천막집회(Camp Meeting)가 새로운 예배의 산실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시의 천막집회는 크게 3부로 구성돼 1부는 한 시간씩 계속되는 열정적인 찬송, 2부는 '구원이냐 멸망이냐'의 2분법 도식으로 회심을 촉구하는 강력한 복음전도 설교, 그리고 마지막으로 결단을 촉구하는 초청의 순서가 바로 그것이었다"고 했다.
이어 "소위 '찬송 샌드위치(Hymn Sandwich)라고 하는 예배형식으로, 찬송, 기도, 성경봉독, 설교 등을 적당히 배열한 것인데 특징은 순서 중간 중간에 찬송이 들어간다는 점, 그리고 설교가 예배의 맨 후반에 위치하고 설교 후에는 초청(Altar Calling)으로 예배를 끝맺는 것이었다"고 했다.
이는 "성경봉독과 설교의 사이에 광고, 헌금, 찬송 등 많은 순서들이 삽입되는데, 그 이유는 설교 후에 곧바로 초청을 하고 예배를 끝맺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설교 앞에 오는 순서들은 모두 설교로 나가기 위한 하나의 준비순서 정도로 인신식되었다"며 "이러한 예배형식의 밑바탕에는 예배는 오로지 '복음제시'와 '회심의 촉구'를 위한 수단이며 방편이라는 개념이 자리해 있다"고 했다.
그는 "따라서 좋은 예배를 판단하는 시금석은 그 예배에서 얼마나 많은 회심자를 만들어냈느냐 하는 것이었다"며 "종교개혁자들이 '예배'를 교육으로 대치했다면, 19세기 복음의 프론티어 예배는 '예배'를 '전도'로 대치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했다.
이어 "소위 '뜨거운 예배'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출현한 것이었다. 설교자는 참여자들을 회심시키거나 재헌신 시키기 위해 참여자들에게 영적인 도전을 주어야 했고, 따라서 열정적이며 감정적인 접근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었다"며 "이들에게 있어서 회중의 '영적 온도'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고 했다.
그는 "예배와 전도의 결합, 회심자를 많이 만들어내면 좋은 예배라는 실용주의적 발상, 신자 개개인의 영적 온도를 중시하는 개인주의적 성향, 예배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스러운 예배 진행 등은 19세기북미 개척자예배의 특징이었으며, 이는 선교사들을 통해 고스란히 한국에 전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척자예배의 유산은 한국 땅에서 1907년 대부흥운동과 새벽기도 운동을 통해 '뜨거운 신앙', '뜨거운 기도' , '뜨거운 예배'를 더욱 꽃피우는 계기를 맞게 되었다"며 "이러한 토양에서 출발한 성결교회가 '뜨거운 예배'를 선호하게 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했다.
이어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는 목적으로 주일 저녁에 행해졌던 '구령회'와 기존 신자들을 위해 주일 오후에 은사집회로 열렸던 '성별회' 등은 성결교회 예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며 "초기성결교회의 이름이었던 '복음전도관'은 성결교회 예배의 특징을 표현하는 적절한 이름이었다"고 했다.
또 조기연 교수는 "최근 20여년 전부터는 역시 북미에서 시작되어 한국교회를 강타하고 있는 소위 열린예배 또는 경배와찬양 형식의 예배의 등장으로 인하여 일선 목회자들이 혼란을 겪고 있는 중이다"며 "작금 한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위 '예배전쟁'은 다른 아닌 이 두 예배 형식 사이의 갈등이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북미는 본래 실용주의적 성향이 강한 곳이며 따라서 19세기에 생성된 소위 '전통예배'나 20세기 후반에 생성된 소위 '열린예배' 모두 이 실용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지닌 예배들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논의해야 할 것이다"고 전제했다.
초대교회 예배, '강론'과 '떡 뗌' 기본 구조
그러면서 "열 두 사도를 비롯한 최초의 교회공동체는 예배를 스스로 창안한 것이 아니라 예수에게서 명령받았다"며 "예수께서는 공생애를 마치실 때에 마지막 만찬석상에서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나의 몸이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 또 잔을 들어서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후에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다. 너희가 마실 때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셨다(고전 11:23-25)"고 했다.
조 교수는 "우리는 신약성서에서 예배에 관한 체계적으로 구체적인 진술을 찾아볼 수 없다. 고린도교회가 모였을 때에 방언과 예언을 했다는 기록(고전 14장)이나 교회 공동체가 모였을 때에 떡을 떼었다는 이야기(행 2장, 20장), 그리고 초대교회가 세례를 주었다는 이야기(행2장) 등 여러 곳에 흩어진 단편적인 기록만을 접할 수 있을 뿐이다"고 했다.
그는 "다만 실제로 초대교회 예배의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고 추론되는 부분은 앞서 언급한 사도행전 20장 7절 이하의 기록이다"며 "이 본문에는 당시 교회가 주일에 모여서 '강론'과 '떡 뗌'을 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이 본문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나타나는 예배의 구조가 신약성경 이후에 작성된 여러 문헌들에 기록된 예배의 구조와 일치되기 때문이다"고 했다.
이어 "신약성경보다 약 60여년 후에 기록된 순교자 져스틴(Justin Martyr)의 '첫 번째 변증문(First Apology, 165 A.D.)은 당시 로마지역에서 행해지던 예배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최초의 문헌으로서 이러한 예배의 구조를 명료하게 보여준다"며 그의 글을 소개했다.
"그리고 일요일이라 불리는 날에 한 장소에서 도시나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집회가 있는데, 거기서는 사도들의 언행록이나 예언자들의 글이 시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낭독됩니다. 낭독자의 낭독이 끝나면 그 집회의 인도자는 강론을 통하여 이러한 고귀한 일을 본받으라고 권고합니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모두 함께 일어서서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기도가 끝난 후에는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떡과 포도주와 물을 가져오고 인도자는 마찬가지 방식으로 힘있게 기도와 감사를 드리며 회중은 아멘으로써 화답합니다. 그 다음에는 성별된 떡과 포도주와 물이 각자에게 분배되고 부제들은 결석자들에게 그것을 가져다줍니다"
조기연 교수는 "이 문헌에 의하면 당시 주일 낮 예배는 성경봉독-설교-기도-(떡과 포도주의)봉헌-(성찬감사)기도-성찬참여 이 여섯 가지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며 "이 여섯 가지의 순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분되는데, 첫째 부분은 '성경봉독-설교-기도'이고, 둘째 부분은 '봉헌-성찬기도-성찬참여'이다. 앞의 세 요소는 성경봉독과 설교가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말씀예전'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뒤의 세 요소는 성찬기도와 성찬참여가 중심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성찬예전'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이렇게 본다면 여기에 기록된 예배의 구조는 사도행전 20장 7절 이하에 기록된 '강론'과 '떡 뗌'이라는 구조와 정확히 일치한다"며 "본래 예배는 속성상 쉽게 변하지 않는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기록을 가지고 역으로 1세기 후반 또는 그 이전 최초의 사도들이 행했던 예배의 형식을 추론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초대교회 구약-신약 봉독 '시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그는 "순교사 져스틴의 '첫 번째 변증문'은 성경봉독이라고 하지 않고 '예언자들의 글과 사도들의 언행록'을 읽었다고 기록한다"며 "'예언자들의 글'은 구약성경을 뜻하며, '사도들의 언행록'은 신약성경을 뜻한다"고 했다.
그는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정경화 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신약성경이 한권으로 묶여져 있지 않았고 '누구에 의한 복음' 또는 '누가 누구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이름의 두루마리들이 이 교회에서 저 교회로 회람되던 시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들의 언행록'이라는 말로 표현되었을 것이다"고 했다.
덧붙여 "그때는 (사도들이 자신의)기억을 떠올리거나 구전하는 내용을 말했을 것이고, 데살로니가서나 교린도서 등의 편지들이 기록되면서부터는 그 편지들을 회중이 모인 가운데 봉사자가 읽고 좌장이 거기에 해석과 권면을 더하는 방식이었을 것이다"고 추론했다.
이어 조기연 교수는 "구약을 읽은 이유는, 십자가에 달린 나사렛 목수의 아들 예수가 바로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 즉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함이고 신약을 읽은 이유는, 그것이 지상의 예수를 따라 다니면서 그 분이 일으키시는 기사와 이적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통해 그 분의 메시아 되심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도들의 증언이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동방정교회에서는 지금까지도 신구약 성경 중에서 특히 복음서만을 별도의 책으로 묶어서 금박을 입힌 표지를 붙여서 소중하게 다루며 예배시간에 복음서를 들고 행렬하는 의식을 행한다"고 덧붙였다.
또 "순교자 져스틴의 기록에 의하면 구약과 신약의 봉독은 '시간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행해셨다. 이 표현으로 미루어보아 당시의 성경봉독은 꽤 긴 시간동안 이루어졌을 것으로 추측되며, 성경봉독의 이유와 시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에 성경봉독 그 자체가 중요한 예배의 순서였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예배에서 성경봉독은 설교를 위한 하나의 보조문서로 밀려나 버렸다. 성경봉독은 설교를 위한 하나의 증거본문(Proof Text)일뿐 그 자체로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심지어는 찬송설교, 드라마 설교 등 아예 성경봉독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며 "이처럼 성경봉독을 약화시키는 것은 예배의 구속사적 차원을 약화시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봉독한 후에 '이러한 고귀한 일을 본받으라고 권면'하는 것이다. 설교는 어디까지나 봉독된 성경에 대한 해석과 권면이어야 한다는 것이다"며 "설교의 본 취지는 신구약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신 이야기, 즉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서 절정을 이룬 하나님의 놀라우신 구원의 행위를 선포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조기연 교수는 "예배에서 한 곳만 읽혀지는 성경봉독은 신약과 구약을 봉독하는 예배형식 자체에 내포된 예배자의 구속사적 차원을 상실하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예배의 구조와 형식에 담긴 본질 파악 후, 예배 변형 꾀해야
조 교수는 "예배의 형식이 시대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명제 하에 예배의 구조나 형식을 바꾸려 한다면 우리는 먼저 기존 예배의 구조와 형식 속에 들어있는 예배의 신학 즉 예배의 본질을 파악하여 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 기존의 예배에 있는 문제점을 개선하거나 보완하는 방향으로 예배의 변형을 꾀하여야 할 것이다"고 했다.
그는 "2천년 교회의 역사를 살펴볼 때에 예배의 개혁이나 변화는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백 년에 걸쳐서 조금씩 이루어졌으며, 거기에는 많은 신학적 토론과 심도 깊은 여구가 수반되었다"며 "제가 보기에 작금 한국 땅에서 진행되는 급진적이고 산발적으로 행해지는 예배의 변화들은 대부분 목회자 또는 교회 관계자들의 개인적인 자의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로 인해 생성되는 새로운 예배들은 대부분 신학적으로 부실하거나 잘못된 영성으로 이끌 위험성이 큰 것들이다"며 "이러한 예배개혁은 사람들로부터 폭발적인 호응을 받을수록 그 폐해가 커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또 조기연 교수는 최근 논쟁이 되고 있는 "'뜨거운 예배'와 '차가운 예배'를 감성적 접근과 이성적 접근으로 구분한다면 두 예배 모두 미흡하다고 판단된다"며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예배자는 지정의, 오감을 총동원해 전인격을 가지고 전인적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예배의 현장에서는 동일한 형식의 예배를 가지고도 집례자의 패토스(Pathos)에 따라서 그리고 예배자의 열심정도나 상황에 따라서 '냉랭하게' 예배할 수도 있고, '뜨겁게' 예배할 수도 있다"며 "다시 말해서 뜨겁게 예배할 것인가 차갑게 예배할 것인가는 집례자와 참여자의 신심과 열심에 따른 것이지 예배의 구조와 형싱을 논하는 자리에서 다루어질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고 결론지었다.
이어 "예배서를 개정하는 작업이나 예배를 구성하는 작업을 맡은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절정을 이룬 하나님의 인류를 위한 사랑과 구원사역에 대한 성서적 구속사적 충실성을 예배의 텍스트 안에 얼마나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