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속의 아이는 권 씨가 13년 동안 결연을 통해 방글라데시에서 키운 딸 타니아다. 처음 아동결연카드 속 사진을 통해 만난 타니아는 다섯 살의 어린 소녀였는데, 세월이 흘러 권 씨가 두 명의 아들을 둔 마흔 살의 엄마가 되는 사이에 타니아도 무럭무럭 자라 올해 대학생이 됐다.
최빈국 중 하나인 방글라데시는 한창 배울 나이에 학교 대신 일터로 향하는 아동노동인구가 무려 100만 명에 달한다. 만약 1998년 타니아와 권미선 씨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결국 이 작은 소녀도 지독한 가난의 굴레 속에서 고통받으며 살았을 것이다.
자신이 낳은 아이도 버리고 죽이는 무서운 세상에 13년간 ‘키다리 아줌마’가 되어 멀리 방글라데시의 아이를 후원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권 씨는 자신의 두 아들보다 타니아를 먼저 대학에 입학시킨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방글라데시의 현실을 알기에 딸의 대학 진학이 더욱 감격스러운 것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딸을 위해 13년 동안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총 150여 차례에 걸쳐 후원금을 보낸 권 씨는, 지난날을 회상하며 “몇 만원이 그리 큰 금액은 아니지만 방글라데시의 딸 타니아는 그 돈이면 한 달 동안 학교를 다니고, 끼니를 해결하며 몸이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어요. 그래서 작은 지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고 아껴서 후원을 하게 됐습니다”고 전했다.
권 씨가 처음 후원을 결심하게 된 것은 1998년 10월, 우연히 방글라데시의 굶주린 아이들에 대한 사연을 접하고 굿네이버스에 결연 신청을 하게 됐다. 권 씨는 “집으로 배달돼 온 아동결연카드에서 타니아의 사진을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빡빡 깍은 짧은 머리, 커다란 두 눈에 두려움이 가득했던 사진 속 타니아의 표정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납니다”라며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십여 년 전, 어린 타니아를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권 씨가 했던 결심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가진 것을 아주 조금 나누는 것. 다만 적은 금액이라도 타니아가 건강하게 자라 어른이 될 때까지 꾸준히 돕겠다는 소박한 마음이었다.
권 씨는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매년 굿네이버스에서 보내주는 아동성장발달보고서를 볼 때마다 타니아의 몸무게를 제일 먼저 확인했어요. 키에 비해 몸무게가 좀처럼 늘지 않아 걱정이었지만, 해가 다르게 쑥쑥 자라나는 키와 전보다 훨씬 밝아진 얼굴을 보면 저도 모르는 사이 입가에 미소가 번졌어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부보다 일을 해야 하는 방글라데시에서 학교를 꾸준히 보낼 수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아동성장발달보고서를 받을 때마다 지금까지 받은 타니아의 사진들을 모두 꺼내보며 ‘벌써 이만큼 컸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한국의 두 아들에 비해 어렵게 지낼 타니아가 못내 마음에 걸리곤 했어요”라고 말했다.
굿네이버스에서 보내 온 2009년 성장발달보고서에는 “아동은 활발하고 똑똑한 학생으로 지난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았습니다. 자원봉사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으며 개근상도 받았습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또한 2011년 보고서에는 “타니아는 학업성적이 뛰어나며 국어(현지어)를 좋아합니다”라고 기록돼 있다.
전 세계 최고의 교육열을 가진 한국의 엄마인지라 “딸이 공부를 잘 한다”는 말에 기분이 으쓱하지만 그러면서도 권 씨는 “타니아가 그저 건강하고, 밝게 잘 자라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특하고 고마워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한다.
권 씨는 “어느 날, 굿네이버스로 부터 타니아가 대학에 입학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어요. 벅찬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13년 전 후원을 처음 시작했을 때가 생각났어요. 만약 그 때 내가 이 아이 돕는 일을 미루거나 사는 것에 바빠서 후원을 잊었다면 사랑하는 딸 타니아에게 오늘의 이런 기적은 찾아오지 못했겠지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당당히 기적을 만들어 낸 내 딸 타니아가 자랑습니다”라며 감격의 마음을 전했다.
방글라데시의 대학 진학률은 20% 이하다. 취약계층 중에서도 여성이 대학을 가는 일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 할 수 있다. 13년 전 시작된 권 씨의 작은 나눔은 가난으로 꿈꿀 수 없었던 방글라데시 소녀에게 ‘기적’을 선물했다.
또한 권 씨는 “나눔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큰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던 게 아니었어요. 다만 “생각에 그치지 말자. 지금 당장 시작하자. 아주 작은 실천이라도 꾸준히 해보자”라고 생각했었죠. 그런데 나누면서 느끼는 것은 ‘내가 주는 것보다 얻는 것이 훨씬 더 많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이었어요. 타니아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마음을 가득 채우는 ‘충만한 무언가’가 있어요. 타니아와 같은 저개발국의 아이들을 돕는데 한 달 3만원의 후원금이면 충분하거든요. 우리가 조금만 불편하면 모을 수 있는 그 적은 후원금으로 아이들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되는 겁니다”라며 소감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권 씨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타니아가 졸업 후에도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돕고, 어려움을 당하는 지구촌의 아이들을 후원하는 일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