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세월호 희생자 합동 분양소를 찾은 박대통령 조문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한국의 뉴스는 박대통령의 조문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영정과 위패 앞에서 헌화 및 분향, 묵념을 하고 고인들의 넋을 기렸다"며, 박 대통령은 조용하고 차분한 가운데 추모의 뜻을 전하고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라고 보도했다.
반면에 미국 NBC 뉴스는 박대통령의 조문에 대해 "애도하는 부모들은 분향소에 조문한 한국 대통령에게 야유를 했다"며, 격노한 유가족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분양소 방문은 마치 "경호원에 둘러싸여 CF 찍으러 온 것 같다"라고 보도했다. 심지어 일부 네티즌들은 박대통령이 조문시 함께 사진을 찍은 할머니도 언론 보도를 위해 미리 청와대가 연출한 것이라며 분노했다.
일부에서는 박대통령의 조문이 누가복음에 나오는 세리와 같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바리새인의 기도처럼 박대통령의 조문도 연출되었다고 주장한다.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아마도 당사자가 제일 잘 알 것이다.
이와 연관하여 전 세계인의 마음을 울린 조문이 있다. 2차 세계대전 후 서독의 수상이 된 빌리 브란트(Willy Brandt)는 전쟁 이후 동유럽 국가들과의 관계 회복에 나선다. 그러나 피해자 동유럽 국가들은 그 진정성을 의심했다. 가해자 독일이 손을 내미는 것은 피해자 동유럽 국가 입장에서 보면, 그다지 반가운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생색내기 위함이거나 뭔가 속셈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인식은 빌리 브란트 수상이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유대인 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보여준 행동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겨울인 데다 전날 비가 와서 축축해진 콘크리트 바닥에 그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진실로 사죄했다. 그의 이런 행동은 전쟁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은 폴란드 국민들뿐만 아니라 동유럽의 모든 국민들에게 사죄와 평화의 메시지로 전달되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서도 이러한 예를 찾아 볼 수 있다. 1510년 가을에서 1511년 봄까지 루터는 로마로 여행을 떠난다. 베드로 성당에 도착한 루터는 무릎을 꿇고 "거룩한 계단"을 한 계단 한 계단씩 올라갔다. 한 계단 오를 때마다 루터는 계단에 입을 맞추고 회개하면서 올라갔다. "하나님 제가 죄를 많이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하면서 고통, 아픔, 후회, 회환 이 모든 것을 담아 계단을 올라갔다.
루터는 그때의 심정을 자신의 일기에 남겼는데, 기록에 보면 눈에서 흐르는 눈물 때문에 계단을 제대로 볼 수 없었고, 계단을 다 올라가서 뒤를 돌아봤더니 계단이 눈물에 젖어 있었다고 한다. 즉 루터는 하나님 앞에 진실로 회개하고자 했던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종교"개혁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루터가 시작한 이 개혁은 비록 면죄부 판매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됐지만, 과정과 결과는 예상을 뛰어넘어 엄청난 변혁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루터는 사실 종교를 바꾸려고 개혁한 것이 아니다. 성 베드로 성당 건물과 종교는 종교개혁 이후 하나도 변한 것 없이 남아있다.
개혁은 종교라는 껍데기의 변화가 아니다. 종교라는 틀 속에 담겨있는, 거기서 살아 숨 쉬는 신앙인들이 진실되게 회개하고, 오직 믿음을 갖고, 겸허하게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접하고, 그 말씀대로 살고자 했다. 루터는 이를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Sola fide, Sola Gratia, Sola Scriptura)라는 슬로건으로 표현했다. 종교개혁의 이 슬로건은 사람과 하나님이 함께 어울려서 사는 삶 전체의 변화를 외치는 개혁이지, 단지 종교와 삶을 만든 거죽의 변화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루터는 종교개혁 한답시고 시스템을 바꾸거나, 건물을 바꾸거나 대책을 세운 것이 아니다. 그가 원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로 회개함으로 그리스도 예수 그 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자신이 변화되는 것이었고, 그 복음을 전하므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세월호의 비극적인 참사 이후 여기저기서 개혁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시스템을 바꾼다. 사람을 바꾼다. 새로운 기관을 설립한다. 매뉴얼을 만든다. 그러나 결국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진실된 회개가 먼저다. 참된 행동이 수반된 참회가 먼저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 나 자신부터 변화하는 것 그것이 시작이다. 그것이 변화와 개혁의 첫 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