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을 살펴보면 이 뼈들이 살겠느냐(3), 너희가 살리라(5), 살게 하라((9), 살아 일어나서(10), 너희로 살게 하고(14)라는 단어를 눈여겨볼 수 있는데 골자는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찌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계1:117-18), 예수님은 지금도 죽은 자가 운데 계시지 않고 살아 계시는 주님이십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하루, 하루를 절망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에스겔은 민족의 비참한 현실과 조국의 암담한 장래를 전망하면서 눈물로 기도하는 가운데 여호와의 신에 이끌리어 큰 계곡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뼈가 심히 많았으며 그 뼈가 아주 말라 있는 음산한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홀연히 귓가에 들려오는 음성이 있었으니 곧 여호와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인자야 이 뼈들이 살겠느냐?' 에스겔의 소견에는 아무리 생각해도 뼈들이 살아날 가능성은 없어 보였습니다.
이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타나매 사방에 분산되있던 뼈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뼈들이 서로 연락이 되고 힘줄이 붙고 가죽이 덮이더니 곧 살아나서 여호와의 큰 군대가 되더라는 말씀입니다. 에스겔은 이 환상을 통하여 여호와께서 살리시는 생명의 운동을 목격하였습니다.
이 뼈들이 말랐다는 것은 사실 인간적으로 아무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으로 보면 이스라엘은 아무 희망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무능에 하나님의 능력은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보아, 이 말라빠진 뼈들은 인간의 심령의 메마른 상태와 교회의 고갈된 비참한 현실을 상징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메마른 심령을 살려 주실 이는 여호와 하나님 뿐이십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도 우선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현실이 그대로 표출된 것 뿐입니다. 고도의 경제 제일주의와 성장 위주의 경영이 이러한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살고 난 다음의 문제입니다.
그곳에 어떤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 찌어다'(4), 그렇습니다. 마른 뼈들이 살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이 들어가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뼈들은 서로 들어맞고 서로 연락될 때에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인체의 뼈 수가 200여 개가 넘는데 그 뼈들은 두골, 척골, 흉골, 완골, 둔골, 경골, 퇴골, 족골, 등 으로 그야말로 그 위치와 기능이 다 각각 다릅니다.
사람이 온전하려면 모든 뼈들이 각각 제 위치에서 자기의 역할을 감당 할 수 있을 때, 건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흩어졌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분열되었다는 것이고, 중심을 잃어다는 말도 됩니다. 이번 세월호 참사도 선장이 무개중심을 잃은 데서 온 것입니다.
한국의 교희가 왜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습니까? 믿는 자들은 많지만 참으로 여호와의 말씀이 우리 속에 없는 연고입니다. 선지자 아모스의 외침을 들어 봅시다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 찌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고 물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근이라'(암8:11)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현재 어린이들은 자라면서 무엇을 보고 자랍니까? 출세, 성공, 앞서가라 좋은 직장, 모두가 육체 중심의 교육에 멈추어 있지 않습니까?
항아리에 물을 채우려고 애를 써도 채울 수 없는 원인을 알지 못하고 헛수고만 하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깊은 내면에는 하나님을 갈망하는 세계가 있습니다. 이 내면 세계의 욕구를 육의 것, 금전지식, 명예, 그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 받았던 영혼을 잃어 버렸습니다. 주인없는 하꼬방처럼 영혼 없는 육체만 남았습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린 고아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월호가 가라 않아도 구호장비만 있으면 염려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마음에 둔다면 염려가 없습니다. 어린애가 엄마의 품에 안기어 있으면 염려는 없습니다.
염려는 도움 받을 수 없다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기도하여도 무익하다는 어리석은 생각에서 염려가 생기는 것입니다.
죄가 있어 염려합니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을 쳐다보라고 하십니다. 과거를 뒤돌아보니 두렵습니까? 지금까지 살아 온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니 하나님의 은혜를 믿고 안심하십시오. 미래의 일이 염려 되십니까?
내일 일은 내일 염려 할 것이요 한날에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하셨습니다. 못 살겠다는 원인을 분석해 보면 영혼이 바보가 된 까닭입니다. 영혼이 주도권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육체는 악령에게 점령당했고 정신은 악령의 주도 아래서 머슴 노릇만 합니다.
인생은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하나님과 교제는 단절 되었습니다. 영혼 없는 인간들은 살길을 찾으려고 선악과 육체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쳐다보면서 살 길을 찾고 있습니다.
오늘의 세계는 60억이나 되는 손님을 태우고 항해하던 중 '유로굴라'라는 광풍을 만났으며 배는 구멍이 나서 물에 침몰되어 가는데 갑판 위에 선장과 선주는 자기 살 궁리만 하고 있는 현실은 세월호 뿐만 아니고 인생의 배도 침몰되기 직전에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영혼을 회복 하여야 합니다. 살이 붙었다더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랑이 움터오는 것을 말하고 가죽이 덥혔다는 것은 저항력이 강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데 기독교는 인내의 종교 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핍박이란 글자도 별로 필요 없습니다.
안일하게 그냥하면 됩니다. 세상이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지만 의인들은 핍박을 당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분부 하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인내하고 나가면 마침내 승리는 오게 되어 있습니다.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10), 생기가 없는 육체는 흉물일 뿐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인물이 잘 생기고 지식과 교양이 있고 명예와 지위가 있고 예의범절이 다 갖추어 있어도 그 속에 성령이 떠나 있고 영혼이 죽어 버린 사람이라면 자칫하면 자기만 살겠다고 선객들을 들을 남겨 두고 탈출하는 무서운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내 증인 되리라'(행1: 8절), 복음 운동은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힘으로도 못하고 능으로도 못하고 오직 성령으로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만 이 사회와 이 민족, 한국교회와 가정이 새로워 질 수 있습니다. 이제 한국 사회에 생명의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산 종교인 기독교의 생명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날 때 대한민국이 살 수 있습니다.
마른 뼈가 큰 군대가 되기까지는 먼저 자신이 마른 뼈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사회적 국가적 민족적으로 마른 뼈인 것을 고백하고 자신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절망에도 하나님은 이 나라 민족을 위대한 민족으로 다시 회복 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마른 뼈에 임한 기적이 나에게도(겔37:11-13),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그 백성이 어디에 거하고 있다고 하셨습니까? 그들의 영은 잠들어 있고 죽음의 무덤 속에 누워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거듭 나지 못한 상태로 옛 습관에 젖어 누워있는 상태인 명목상의 그리스도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무덤 문을 열고 나오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와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면 이러한 역사는 우리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 리가 계시를 보기를 원하십니다.
지금은 보잘 것 없고 부족한 우리들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현재는 마른 뼈처럼 보이는 내 모습에서 영적인 힘줄이 붙고 근육과 가죽이 생기고 생기가 철철 넘치는 변화된 미래의 나의 모습을 한국교회와 민족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비전을 볼 수 있는 저와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제공>, 글ㅣ이선규 목사(금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