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학생들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 자신들의 입장을 담은 성명서를 발표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진실을 찾는 신학생들'이란 이름으로 발표된 성명서를 통해 신학생들은 "그토록 소중한 생명이 수백이나 차가운 바닷속으로 사라진 지금, 우리 신학생은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하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을 희생자와 그 가족 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며 "그리스도께서 그들과 함께하시리라 믿으며, 그 곁에서 목놓아 울 뿐"이라 했다.
더불어 "끔찍한 참사 앞에 모두가 죄인이라고 말하는 건 기만"이라고 말하고, "정작 누구의 책임도 묻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물어야 한다"며 "이윤추구에 눈이 멀어 최소한의 기업윤리마저 내팽개친 청해진해운, 너무나도 무책임했던 선장과 선원들, 불성실하고 불공정한 보도를 반복한 언론,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능력도 의지도 보여주지 못한 해경과 정부까지 한 점의 의혹도 남지 않도록 철저히 조사해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학생들은 "여전히 '미안하고 부끄럽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며 "자본의 힘을 제어하지 못하고 모두가 황금을 향한 무한경쟁에 빠진 나라, 많은 이를 비정규직으로 내몰아 최소한의 자긍심과 직업의식조차 갖지 못하게 한 나라,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이 도리어 당당한 나라, 국민의 생명보다 정권의 안위를 우선하는 자들이 권력을 잡은 나라 그런 나라를 만들었기에 죄인"이라 했다.
이어 신학생들은 "오늘 교회가 병들어 있다"고 말하고, "약자들의 수없이 많은 죽음이 한국 사회의 타락과 균열을 증언할 때, 교회는 과연 무엇을 했는가"라며 "오늘 한국교회는 길게 이어진 부끄러움의 행렬 맨 앞에 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교회의 눈과 귀가 되어 가난한 이를 찾고 억울한 울음을 들을 것이며, 손과 입이 되어 그들과 연대하고 정의를 말할 것"이라며 "우리는 그러한 회개를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라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 시작하려 한다"고 했다.
때문에 신학생들은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내 백성을 위로하라',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번 사건의 희생자들과 유가족, 그리고 함께 아파하는 이 땅의 생명들과 연대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참사의 근본 원인은 한국사회와 한국교회 전체에 있기 때문에, 이번 참사를 특정 이단 종파의 일탈적 행위로 제한하여 정부와 교회를 보호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신학생들은 "이번 참사를 계기로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이 땅의 약자들과 더 강하게 연대하길 호소한다"고 말하고, 특별히 신학자와 신학도에게 "현재 대한민국의 문제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의 책임을 성찰하는 자리를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고 요청했다. 더불어 "교파와 교단을 넘어 함께 논쟁하고 기도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대정부를 향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원한다"고 말하고, "내각은 책임을 통감하고 총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정부는 현 권력에 독립적 권한을 가진 특검을 실시해 엄중하고 공정한 수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국민의 안전에 관련된 부문에 대한 관리와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언론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는 일체의 간섭을 중단하라"고 했다. 더불어 "집회 결사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진실을 찾는 개신교 신학생 모임'(가칭)이 발표한 호소문 전문.
[호소문] 한국의 개신교 신학생에게 고함.
너희는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롬 12:15)
지난 주일은 부활절이었다. 하지만 우린 노래하지 못했다. 바다에 빠진 수백 명의 아이와 시민을 보며 발을 구른 우리는 이윽고 그들의 생명을 삼킨 것이 바다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청해진 해운은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대책도 준비하지 않았으며, 여객선의 책임자들은 무책임한 판단과 행동으로 일관했다. 언론은 불성실한 보도와 연이은 오보로 큰 혼란을 일으켰고, 몇몇 유명 인사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결여한 저열한 언사를 내뱉었다. 무엇보다 정부는 신속하게 실종자를 구조하고 그 가족을 보호하며 국민을 위로해야 했지만, 그 모든 일에 실패했다. 수백 송이의 꽃이 바다 밑으로 사라진 지 십여일. 그들은 바다가 삼킨 게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와 청해진 해운이 바다 밑에 가둔 것임을 우리는 알았다.
국가란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있다고 더는 말할 수 없다. 구조보다 구호 장비의 가격을 먼저 따지는 천박함이나 아직 단 한 명의 실종자도 구하지 못한 무능력보다는 오히려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희생자 가족을 불법적으로 막아선 경찰병력 때문이다. 살아 있을지 모르는 배 안의 국민을 보호해달라는 정당한 요청의 행진이었다. 사고 현장의 종합상황실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공권력이 이를 법적 근거 없이 물리적 힘으로 봉쇄하고 희생자 가족을 폭도로 대우한 2014년 4월 20일 새벽의 진도대교는 대한민국의 주권이 실질적으로 누구에게 있는지를 되묻게 한다. "대통령이 곧 국가"라는 한 보수논객의 망발은 역설적으로 현실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대한민국 정부는 만인이 벌이는 가없는 상호 투쟁을 막아 국민을 보호하기는커녕 도리어 온 국민을 "스스로 구원하라"는 자력구제의 늪으로 내몰고 있다. 그러한 현실 앞에서 우린 무기력한 분노로 "이것이 국가인가" 반문할 따름이다. 물론 그 물음은 대학사회와 시민사회의 침묵이 만든 진공을 날아 부메랑처럼 우리 가슴에 다시 박힐 뿐이다. SNS에서 토해내는 개인적 절규만 패잔병처럼 널려 있을 뿐 사회 전체에 울리는 성찰과 정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신뢰할만한 어른, 공정한 언론, 치열한 광장, 정의에 주린 젊은이가 우리에게 있는가?
그렇다면 묻는다. 교회는 어떤가?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며, 교회는 그 정의를 세상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오히려 오늘날 한국 교회에 지혜란 서양학자의 이론이요, 순수함이란 무지함이며, 순종이란 헌금을 많이 내는 것이고, 전통이란 교회를 세습하는 것이며, 믿음이란 세상을 등지는 것이고, 정의란 불신자를 정죄하는 것이라고 그저 자조할 뿐이지는 않은가? 누군가 오늘의 비참을 이해하기 위한 설명서와 폐허 위에 새로운 집을 짓기 위한 설계도를 신학에 요청할 때, 우리의 대답은 얼마나 궁색할 것인가. 오늘 우리는 정의의 언어를 잃어버린 백치의 상태로 평화를 만들지 못하는 불임의 시대를 살고 있다. 어찌하여 우리의 신학은 이다지도 가난하고 우리의 신앙은 이렇게도 무력하다는 말인가.
우리가 서로 만나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세월호 침몰 사건이 몰고 온 가공할 고통 속에서 2014년 현재의 한국 사회를 그리스도교 신학과 신앙의 눈으로 사유하고, 그 성찰의 결과를 교회와 사회 앞에 밝히려 한다. 나아가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자 신학을 공부하는 자로서 어떤 실천과 연대를 감당해야 할지 논의하려 한다. 우리, 진리를 찾아 헤매는 자들아. 교단과 학교를 묻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을 매개로 모여 우리에게 요청되는 정신의 노동과 실천적 책임을 기꺼이 감당하자.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며 우리의 땀과 피, 그리고 눈물을 병에 담아 그것으로 부활의 노래를 담을 악보를 그리자. 그때까지는 차라리 우리 노래하지 말자. 고통의 저 깊은 바닥에서 진리가 우리를 끌어안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는 그 날까지는.
진실을 찾는 개신교 신학생 모임(가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