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칼럼] 세월호 참사에서 보는것

이선규 목사ㅣ금천교회

차를 수리하러 정비소에 들렀던 어떤 사람이 정비소에 앞에 붙은 현수막을 보았다. 현수막은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는 언제나 신속·친절·저렴한 가격을 제공합니다. 단 고객께서는 이 세 가지 중 두 가지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이 분은 현수막을 보면서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뜻인가. 신속·친절·저렴한 가격 세 가지를 다 해 줄 수는 없고 그중에서 두 가지만을 선택하라고', 그러다가 그는 무릎을 탁 쳤다고 한다.

신속하고 친절하면 저렴한 서비스를 받을 수 없고, 친절하고 저렴하면 신속한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으며, 저렴하고 신속하면 친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없다.

그는 이 현수막이 세상사의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다 얻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들은 모든 것을 다 가지기를 애원한다.

또한, 이렇게 모든 것을 소유하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끊임없이 욕심을 부리곤 한다. 과연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세상일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조물주 하나님은 공평하시기에 우리에 꼭 필요한 것들을 나누어 주시기 때문이다. 가난한 가정에는 형제 우애를 가정의 평화, 그것도 아니면 천국을 주신다고 하시지 않으셨나?

프랑스의 사회학자 뒤르켐은 '인간이란 무한한 욕망을 지닌 존재'라고 했다. 인간은 동물과는 달리 생물학적 욕구가 충족됐다고 하여 만족하지 않는다.

하나를 가지면 더 가지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만족이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보다는 또 하나의 자극이 되기 때문이다.

옛 우리말에도 '말을 타면 종 부리고 싶다'라는 말도 있다. 이 만족할 줄 모르는 본성 때문에 그 통제는 사회라는 외적인 것에 의해서만 제한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른바 인재라고 정의하는 대형 사고가 사회 전반을 뒤흔들 때마다 어김없이 규제와 제도개선 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러나 제도를 아무리 만들어도 그것을 운영하는 인간의 의식이 바로 되지 못하면 유명무실할 따름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직후부터 나열되고 있는 부실한 안전 점검과 재난 관리 시스템 문제, 안전 불감증 등에 가려진 것은 바로 생명 경시 풍조가 만연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하다.

고도성장을 이루는 동안 사회 곳곳에는 생명경시 풍조가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성장만을 정신없이 쫓는 사이에 현대인들은 생명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생명의 어떤 가치를 지닌 것인지도 잊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이 이번 참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가치관의 전도는 자연스럽게 인간 생명을 물질 뒤에 줄 세우고 있다. 생명 경시 풍조의 원인을 거슬러 되짚어 보면 결국 개개인의 이기심들이 자리한다. 그 자리에서 올바른 목소리를 내고 인간이 추구해야할 보편적 가치를 지속해서 확산시키는 것이 바로 종교인의 역할이다.

'貪子輿貧者一樣寫'(탐자 여빈 자일양사)라는 말이 있다. 탐자와 빈자는 같은 모양이라는 뜻이다. 탐자는 이제(今) 밑에 볼견(見)을 쓰고 있다. 즉 주위를 보지 못하고 자기 눈에만 보여 달랑 가지려고 하는 것이 가난함이 된다는 의미이다.

성경에 '개들을 삼가라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느니라'(사56:10), 즉 개는 먹이를 두고 이웃이 없다는 말도 있다. 오직 자기만의 것이기에 먹을 때는 주인에게도 으르렁거린다. 그래서 탐자는 개와 같은 것이다. 그래서 성서에는 탐심은 우상 숭배라고 하였다.

이번 세월호의 참사는 여러 문제점들이 드러났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의 탐욕이 종교를 빌미로 총체적인 부실을 일구어낸 결과이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욕망을 규제하도록 성경을 기록해 가르쳤다. 스스로 욕망의 규범을 만들어 통제하지 못하면 직접 규제하시기도 하신다. 살인한 가인을 벌하셨고 퇴폐 문화의 바벨론 땅 소돔성을 불태웠다. 타민족을 억압한 바로 왕을 능멸하였고 인간 교만의 상징 바벨탑을 무너뜨렸다. 우상숭배자들과 더 취하려는 욕망의 포로들을 그대로 두지 않으셨듯, 이 하나님의 경고는 지금도 유효하다.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인(sign)을 보는 듯하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제공>

글ㅣ이선규 목사(금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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