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어떤 상흔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목회·신학
칼럼
편집부 기자
마가복음 14:66-72
김민수 목사ㅣ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

비스킷 반죽을 조개 모양으로 구운 작은 과자를 '마들렌'이라고 합니다. 이 과자와 관련된 용어가 하나 있는데 '마들렌 효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들렌이라는 과자의 맛 때문에 어떤 어릴 적 경험이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 과자뿐 아니라, 어떤 냄새를 통해서도 '마들렌 효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릴 적 경험이 떠오르는 것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았다'고 하는데 이것을 '프루스트 현상'이라고도 합니다. 마르셀 프루스트라는 소설가는 20세기 전반의 소설 중 최고의 것으로 일컬어지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책의 저자입니다. 여기서 따온 용어이지요. 마들렌 효과가 미각에 의한 것이라면, 프루스트 현상은 후각에 의한 것입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사건 혹은 경험을 통해서 '어떤 강력한 느낌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사진에서는 '푼크툼'이라고 하는데, 푼크툼(Punctum)은 라틴어로 뾰족한 도구에 의해 상처 난 흉터를 가리킵니다, 화살촉처럼 아주 작은 세부가 어느 부위를 찔러 상처를 입히는 아픔이지요. 아주 작은 것이 느닷없이 날아와 그것에 찔려 상처 입은 흔적이 푼크툼인 것입니다.

조금 생소한 몇몇 말들이 나왔습니다.

'마들렌 효과', '프루스트 현상', '푼크툼'이 그것인데 이 개념을 잘 알고 있으면 공부하시는 분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면 '찰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짧은 순간을 가리키는 말인데' 카메라의 셔터속도로 환산하면 대략 1/75초 정도 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사진을 찍은 분들은 잘 아는 내용이지만, 1/75초는 그다지 빠른 속도가 아닙니다. 보통 일반인들이 삼각대 없이 사진을 찍을 때 셔터속도가 1/150초 정도는 확보되어야 하고, 전문가들도 1/60초 이하는 삼각대 없이 사진을 찍기가 쉽지 않습니다.물방울 사진 같은 것을 찍을 때에는 최소한 1/600초, 총알을 정지시키려면 1/10000초 정도는 되어야 하니 1/75초는 그다지 빠른 것도 아닙니다.

'마들렌 효과, 프루스트 현상, 푼크툼, 찰라(1/75초)' 이런 용어에 대해 생각을 하면서 저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사건을 떠올렸습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더라."

베드로는 닭이 우는 소리를 이전에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부인하던 날 닭의 울음소리는 이전에 듣던 울음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닭의 울음소리를 듣는 찰나의 순간에 그에겐 마들렌 효과가 일어났고, 푸르스트 현상이 일어났으며, 그리하여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나 '푼크툼', 상흔이 그 마음에 새겨진 것입니다.

그 결과는 바로 베드로의 삶을 변화시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나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흩어졌고, 돌아가신 후 다시 이전의 삶의 터전으로 돌아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다시 그에게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하실 때에 주님임을 알아보고 호수로 뛰어들어갑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또다시 찰나에 마들렌 효과와 프루스트 현상을 일으켰으며 예수님을 부인했던 상흔에 푼크툼이 더해지면서 그를 진정한 '사람 낚는 어부'로 변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교회의 반석이 되었으며, 예수님을 전하다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기독교에서 푼크툼의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서의 못 박힌 손과 창에 찔린 옆구리입니다. 그리고 베드로나 사도바울 역시도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상흔을 품과 살아갔던 사람들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사도 바울이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하는 그 말씀이 그것이며, 베드로가 닭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때 떠올랐던 예수님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의 상흔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이 그 증거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예수 그리스도의 상흔은 어떻게 품을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사건 혹은 경험을 통해서 '어떤 강력한 느낌을 받는 것', 그것이 마들렌 효과나 프루스트 현상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런 경험은 아주 특별한 곳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신앙의 일상성입니다. 신앙은 아주 특별한 영적 행위지만, 이 영적 행위는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삶, 그 자체가 우리의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을 통해서 신앙의 신비를 발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이 일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고 살아가면 둔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살지만, 세상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소용돌이에서 잠시 벗어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는 것들 모두가 영성을 깨우쳐가는 방법이 됩니다. 그런 것들에 민감한 사람들이 깊은 신앙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보지 못했고 이야기만 들었습니다만,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Nature History'라는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고 합니다. 지구의 역사는 지금까지 우주 전체의 시간을 놓고 보면 14초 정도의 시간이며, 그중에서 인간의 역사는 1초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일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지구의 대표를 만나 협상을 하고자 한다면 누구를 만나겠는가 하는 질문을 합니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는 외계인들이 협상하고자 하는 대표는 '돌고래'가 아닐까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니면, '은행나무'일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인간과 협상해 봤자, 1초의 시간에 지구를 이렇게 초토화했는데 더는 희망도 없을 것이고, 오히려 인간보다는 돌고래나 은행나무가 훨씬 지구에 대해 깊은 이해를 하고 있을 것이며, 그래서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전해 들은 이야기라 100% 옳게 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인간이 지구의 대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와 닿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티끌과도 같은 존재라는 생각과 동시에 티끌 같은 존재인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그러니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입니다.

그러다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티끌 같은 존재니까 의미 없는 것이 아니라, 티끌 같은 존재라도 하나님께서 창조해 주셨으며, 그 존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으니, 내 삶 소중히 여기고 올바른 삶을 살아가야겠다. 창세기 18장 27절에 아브라함이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는 심정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겠다.

개역 개정판엔 '티끌'이라는 단어가 61번 나오는데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됩니다만, 아주 작은 티끌 같은 것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뤄가신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티끌 같은 존재이오나 주께 아뢰옵니다' 이것이 사순절기를 보내는 우리의 신앙고백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때 그 작은 티끌 같은 상흔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바꿔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상흔을 간직하고 사십니까?

글ㅣ김민수 목사(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교육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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